01. 이탈리아 일주일 기행 Roma - San Fermo
60대 후반 부부와 이탈리아 붙박이 조카의 한여름 이탈리아 여행
01. 이탈리아 일주일 기행 Roma - San Fermo
로마는 7월만 되어도 다들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답답한 로마 교통체증도 슬슬 사라지고 식당들도 잠시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외국인들은 로마로 놀러오는 시즌이지만 로마인들은 이제 바다로 산으로 놀러갈 시간이다. 8월이 되면 로마는 뭔가 허전해 보이는 빈공간이 된다.
(만약 로마에서 운전을 하려면 8월에 하시라. 심지어 주차 문제도 8월에는 걱정이 덜하다)
밀라노로 들어오시는 이모부부를 마중하러 나는 로마에서 두분 도착 하루전에 미리 올라가 있기로 했다. 하루 일정이 혼자서 더해진 겸이라 밀라노 근처 어디가 좋을까 지도를 보다, 더우니까 하룻밤은 베르가모 근처 산쪽이 어떨까 싶었다. 지도를 구경하다보니 밀라노에서 점점 멀어지긴 했으나 이세오 호수 (Lago d'Iseo) 근교에 산 페르모 (San Fermo) 언덕 마을 근처로 숙소를 정했다. 두분은 점심때쯤 도착하시니 아침에 출발하면 공항으로 갈 시간도 충분하리라.
구글맵에 정해놓은 숙소를 목적지로 찾으니 로마에서 6시간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초행길이니 헤매는 시간을 좀더 보태야 하겠지만 그래도 전부 고속도로니 크게 문제는 없을것이다.
산 페르모 (San Fermo)는 성인 이름으로만 들어봤지 마을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사실 이탈리아에 십여년 동안 지내면서도 다른 지역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는건 없다. 보통은 그렇다더라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기 마련이다. 베르가모 지역은 지금은 밀라노로 대표되는 롬바르디아 (Lombardia) 주에 속해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베네치아 지배하에 있던 이유로 도시 곳곳에 베네치아의 흔적이 남아있는 독특한 곳이다. 산 페르모 (San Fermo)는 행정상으로는 베르가모에 속해 있는데 지도로 보기에도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아마도 롬바르디아 도시에 사는 이들의 여름별장들이 듬성듬성 있는 곳처럼 보인다.
출발
하루에 6시간이 넘는 긴 운전길이지만 새벽일찍 일어나서 출발할 이유는 없다. 넉넉히 7시간으로 잡아 정오 전에만 출발하면 저녁에는 숙소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쉬면된다.
안정된 집을 두고 제 발로 나간다는 긴장 탓인지, 한여름에 로마의 더위 때문인지, 오전부터 얼굴과 목이 붉어지게 땀이난다.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다시 집의 창문과 가스밸브 냉장고문을 한번 더 확인하고 문을 잠근다. 집열쇠도 잃어버리면 안되니 잘 챙긴다. 드디어 나서는구나.
고속도로는 혹시나 막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교통체증은 없었다. 로마에서 오르비에토를 지나 피렌체 근처에 가면 휴게소에서 쉬어갈 참이다. 사실 로마에서 피렌체까지는 그래도 운전해서 갈만한 거리다. 물론 피렌체 시내가 목적이라면 기차를 타는게 훨씬 현명하다. 밀라노를 하루만에 운전해서 가는게 무모한 짓이지 생각하면서 차안에서 흐르는 오지 오스번 Ozzy Osbourne 의 Dreamer 를 흥얼흥얼 따라불러본다. 차타면 듣던 매번 반복되는 음악이 꼭 어딘가로 떠날때는 그 느낌이 또 남다르게 의미가 부여되곤 한다.
거의 3시간을 고속도로로 달리니 피렌체 근처다. 휴게소로 들어가 아침에 못 마신 커피로 운전의 지루함을 달래야한다. 이탈리아 휴게소들은 크게 재미는 없다. 휴게소 커피는 일반 바Bar *(커피집을 바 Bar 라고 부른다) 에서 마시는 것보다 항상 맛없다는게 내 고정관념이다. 코르네또 Cornetto *이탈리아 크로와상 (이탈리아 중남부는 코르네또, 이탈리아 북부는 브리오쉬 라고부른다)도 딱히 감흥은 없는 맛이다.
그래도 나는 항상 여행의 시작일에 고속도로를 타면 중간에 휴게소를 들려 맛없는 에스프레소와 코르네또를 먹는다. 여행을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랄까. 뭐 그렇다.
여전한 별 볼일 없는 맛의 커피를 마시고 쉬는 것도 잠시다. 갈길이 머니 부지런히 가야한다. 고속도로가 편하긴 하지만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지루하기 짝이없다. 그래도 절반정도 왔으니 남은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볼로냐로 넘어가는 구간은 의외로 아름다운 곳이다. 대게 볼로냐를 떠올리면 언덕도 없는 넓은 평야지역으로 알려진 피아누라 파다나 (Pianura Padana) 풍경이 먼저 생각나지만 볼로냐 밑쪽까지 이어져있는 아펜니니 산맥 (Appennini) 지역은 높은 산 속에 아기자기한 마을들이 가득한 곳이다. 이 지역은 잘 알려져있는 아펜니노 토스코 에밀리아노 (Appennino Tosco-Emiliano) 라고 하는 토스카나 주와 에밀리아 주 사이에 걸쳐있는 산맥에 속해 있는 곳이다. 그러니 산세가 좋고 한여름에도 푸르름이 가득하다.
물론 볼로냐를 지나고 부터는 사방 어디에도 산이 안보이고 끝이 없는 평야가 펼쳐진다.
어쨋든 피렌체에서 볼로냐로 넘어가는 구간은 고속도로에서도 여기저기 구릉이 보이고 이리저리 이어지는 산세가 참 아름답다. 높은 산속에 있는 허물어진 성들에 진한 녹색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 여름 분위기를 더한다. 산자락들과 구릉 사이사이에 마을들이 이어져 있다. 다음번엔 이쪽 지역을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운전하느라 보지못하는 풍경을 아쉬운채로 넘어간다. 피렌체에서 볼로냐는 의외로 금방이다. 북부로 올라올 수록 도시들의 간격이 좁아진다.
볼로냐와 모데나를 지나 베로나가 코앞이다. 베로나 근교에서 리소토를 먹고 갈까 하다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숙소로 곧장 가기로 한다. 베로나는 내가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잠시 머물던 곳이라 항상 로마보다 더 정이간다. 그때 처음 먹었던 리소토의 강렬한 맛이 생각나 베로나에 올 때마다 생각나는 추억이 되었다. 아마 어마어마한 버터양에서 오는 맛이였으리라. 이탈리아는 유럽국가 중에서도 쌀재배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다. 땅이 평평하고 위쪽 알프스산에서 물이 풍부하게 내려와서 쌀재배를 이쪽에서 한다고 들었다. 베로나가 속한 베네토 주와 롬바르디아 주, 피에몬테 주에서 주로 재배한다. 그래서 북부 사람들의 쌀 소비량은 남부에 비해 항상 월등히 많다.
베로나는 며칠 후 이모부부와 여행 일정 중에 들르기로 했으니 다시 돌아와야 한다.
브레샤 (Brescia)와 베르가모 (Bergamo) 사이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우선 오늘 묵을 숙소 연락처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건 활기찬 목소리의 여성분이신데 좀더 가면 도착할 거 같다고 하니 숙소 아랫쪽에 작은 광장에 있는 바Bar 로 오면 숙소를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주신다니 로마에서는 보기드문 친절이다.
고속도로를 나오니 전형적인 이탈리아 북부 교외지역의 풍경이다. 건물들은 2-3층을 넘지않고 살구나무가 심어져 있는 주택들과 작은 기계점들이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다. 도로는 한가롭다. 햇살은 여기도 뜨겁긴 마찬가지다. 주변의 자연풍경이 한국에서 익숙하게 보던 것만 같다. 사방이 나무가 빽빽하게 산이 보이고 골짜기들 사이로 마을과 길이 나있다. 도시 사람들의 여름 별장이 분명한 잘 꾸며놓은 집들도 많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산 전체가 밤나무로 무성하다. 밤농장인 걸까, 이 지역도 밤이 유명한 곳인가보다. 이탈리아는 여기저기 밤이 많이 자란다.
산길을 따라가는 도로는 점점 좁아지며 한 차선의 오르막길이 된다. 숙소를 사진으로만 보고 예약했는데, 이렇게 산 위로 많이 올라가다니. 좁다란 산길이 가파라진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차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다.
올라가는 길에 아드라라 산 로꼬 (Adrara San Rocco)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산과 골짜기가 빙 둘러쌓인 작은 터에 집들이 자그맣게 무리를 짓고 있는 것 같다. 밤나무만 가득하고 포도밭은 없는걸 보니 여기는 정말 밤나무 마을인가보다. 이탈리아 마을들은 사그라 Sagra 라고 부르는 지역이나 마을의 특산물을 기념하는 축제를 여는데 여기는 가을에 분명 밤축제 (Sagra delle Castagne) 를 할 것이다.
산길은 점점 더 가파르게 올라간다. 도로 옆 난간을 넘어로 보니 벌써 산 중턱 넘게 올라온거 같은데 구글 지도에는 아직 좀더 올라가야 한단다. 보이는 풍경이 좋기는 한데 운전대를 잡고 있자니 무서워서 땀이 난다. 아직 내려오는 차량이 없어서 다행이다. 대신에 사이클리스트들이 꽤나 있다.
같이 동행하는 그룹도 없이 혼자서 이런 산악지대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제 몸의 모든 동력을 끌어올려 페달을 밟는 일이 멋져보인다.
이제 산위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숙소 근처에 다 온거같다. 성당같은 건물도 보이고 주차장이 넓게 있다. 여기가 숙소 주인장이 말한 작은 광장인가보다. 커피집으로 오라고했는데 성당 옆에 유일하게 있는 이집을 말하나보다. 우선 차를 세워놓고 광장 앞 풍경을 보는데 묘한 곳이다. 공기가 뿌옇게 끼어있고 큰 동산이 서있는데, 토스카나의 구릉 언덕이 높은 지대에 올라와 있는 것만 같다. 차로 올라온 산길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다.
커피집 쪽으로 걸어가 그 앞으로 내다 보이는 뷰를 한번 더 본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같다. 공중에 떠있어서 아무도 이곳의 존재를 모르는 신화 속에나 나오는 그런 곳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커피집에 들어가니 숙소 주인장이 금새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전화로 들었던 밝은 목소리다. 짙은 색의 눈동자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에 늘씬한 체형을 가진 지중해의 건강한 여성 분위기가 물씬 난다.
남동생이 이 커피집을 운영하고 자기는 숙소를 담당한다고 한다. 아침식사는 여기로 와서 하면 된다고 설명하며 이제 숙소를 안내해주겠다고 자기 차를 따라 오라고 한다.
숙소는 작은 광장에서 차로 좀더 올라가서 위치해 있었는데, 가는길에 있는 집들이 주변의 산과 어울려 참 예쁘다. 솜씨 좋게 잘 가꿔놨다.
주인장 말로는 숙소를 연지 얼마 안됐다고 한다. 나는 꽤나 오픈 초반기의 게스트인 것이다. 원래는 할머니가 소유하던 집을 B&B로 개조했다고 한다. 숙소는 굉장히 큰 이층건물에 차고도 여러개 딸려 있었다. 반은 B&B로 반은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건물을 나눈 모양새였다. 테라스같은 정원도 있고 텃밭도 있고 산세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멋진곳이다. 정말 오길 잘했다. 내일 아침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숙소 내부는 진한 갈색톤이 편안하고 고품스러운 느낌을 준다. 다른 손님으로는 독일인 커플이 일주일째 묵고있다고 한다. 부엌과 거실은 공용이고 방은 따로 나눠져있다. 내 방은 들어가보니 천장이 굉장히 낮은데 마치 다락방 같다. 아마 지붕 바로 밑쪽의 공간을 개조해서 게스트룸으로 만든 것 같다.
주인장은 나에게 이것저것 다정하게 얘기해준다. 내가 여기는 처음이라고 하니 여기저기 가볼만한 곳도 소개해준다. 모레는 근처 마을에서 축제도 한다는데 아쉽다. 식당을 몇군데 추천해달라고 하니 아까 동생이 운영하는 커피집 옆에 있는 레스토랑은 자기 삼촌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다시 차타고 내려가기 귀찮으면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피자집도 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열쇠드릴때 봐요'
차에서 캐리어를 꺼내 짐을 옮기고 나니 벌써 해가 낮아졌다. 여기까지 로마에서 하루만에 온게 믿기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떠나야하지만 다시한번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곳에서 한 계절을 나는것도 좋을 것 같다. 산 위에서 한동안 지내며 산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소식을 들으면서 지내다보면 계절이 금방 바뀌지 않을까.
산위에서 먹는 피자
내일 아침에 다시 떠나야하니 짐도 풀지 않는다. 저녁은 숙소 주변 산책 겸 주인장이 말한 피자집으로 정했다. 이 지역 로컬음식은 아니지만 산 정상에서 먹는 피자라니 의외의 경험이 될 것 같은 설렘이다. 게다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니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숙소로 들어가는 갈림길 도로에서 다른 길을 따라 십여분 걸어 올라간다. 높은 곳에서 보는 양옆의 풍경이 좋다. 멀리 산 밑으로는 붉은 지붕들이 빼곡한 도시가 보인다. 깜깜해지면 지붕들 대신에 도시의 불들이 반짝반짝 켜질 것이다.
산길 도로가 끝나는 곳에 위치해 있는 피자집은 넓은 공터 주차공간과 연못이 딸려있다. 여름 산장같은 느낌도 난다. 다들 어디에서 나타난건지, 야외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이들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밑에 마을에서 여기까지 올라온걸까. 시원한 산바람이 참 오랜만이다.
실내로 들어가자 테이크아웃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과 앉아서 식사하는 사람들로 내부도 분주했다. 안은 화덕과 사람들의 열기로 꽤나 더웠다. 벽 한켠에 걸린 커다란 TV에서는 재방송인지 하고있는건지 모를 축구채널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실내에서 먹기로 한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몸집이 왜소한 청년이 자리를 안내해주고 메뉴를 가져다 주었다. 이탈리아 피자집들의 메뉴는 거의 비슷한데 이집 메뉴 중에 로마에서는 보지못한 특이해보이는 피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스파라거스와 계란을 올린 피자라니. 뭔가 아무도 주문하지 않을 것 같은 메뉴다. 나는 낯선곳에서는 도전의식이 생기는 편이다. 이걸로 고르자.
맥주는 종류가 많지 않았는데 평소 마시던 수도사가 맥주를 들고있는 그림의 밀맥주를 부탁한다.
주문을 하고나니 갑자기 허기가 진다. 앞에 있는 그리시니 봉지를 뜯어 또각또각 먹는다. 그리시니는 가늘고 긴 연필모양의 딱딱한 빵 종류인데, 보통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 식당에 가면 그리시니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로마에서는 굉장히 드문 경우다. 오랜만에 먹는 그리시니는 담백하고 바삭하다. 또각또각 부러지는 소리와 식감 때문인지 더 식욕을 자극한다.
피자집의 서비스는 느렸는데 가족이 운영을 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상 삼촌들은 피자를 만들고 딸은 계산대에서 캐시어를 담당하고 주인장인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티비로 축구경기를 보면서 여름밤을 보내는고 있는 듯 하다.
앞에 있던 그리시니를 몽땅 다 먹고날 때쯤 피자를 가져다 주었다. 보통 맥주는 피자 먹기 전에 가져다 줄텐데 아예 잊어버린 것 같다. '저기 맥주도 있었어요'
피자는 의외로 로마식처럼 얇았다. 원래 이탈리아에서는 지역마다 피자 도우의 두께가 천차만별이다. 로마식이 한국에서 화덕피자라고 알려져있는 얇은 도우다. 이탈리아에서 도우의 두께는 높다 (Alta) 와 낮다 (Bassa) 라고 표현한다. 두껍다와 얇다라는 말이 있지만 어째서인지 피자도우 만큼은 높고 낮음 으로 표현하는게 일반적이다.
이탈리아 북부, 생전 처음 들어본 산 꼭대기 마을에서 로마식 피자를 먹게되다니, 삶은 참 알 수 없다. 이런 감정도 오랜만이다.
피자의 계란은 계란후라이처럼 피자 가운데에 노른자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익어서 나왔는데 의외로 먹을만한 조합이였다. 도우에 계란이 무거울 것 같았는데 맛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봄철이 지나 냉동이였겠지만 아스파라거스도 맛이 달고 좋았다. 다만 도우는 짠맛이 강했다. 이들의 소금사랑은 나는 여전히 익숙해지기가 어렵다. 이탈리아의 빵들은 중부지역의 소금을 넣지 않은 빵, 빠네 샤포 Pane sciapo 라고 부르는데 이걸 제외하고는 내 입맛에는 대부분 짜다. 그렇다고 빠네 샤포 Pane sciapo 가 내 취향은 아니다. 소금이 없으면 병원음식처럼 싱겁다.
피자한판에 맥주까지 마시고 배가 두둑하다. 피자집 안은 여전히 테이크아웃 해가는 사람들이 있어 화덕에 피자가 끊임없이 들어가고 있다.
배불리 먹고 나오니 밖은 깜깜하게 가로등만 듬성듬성 도로를 따라 불이 켜져 있다. 공기가 아까보다 더 차가워졌다. 별이 총총히 있을까 하고 위를 봤으나 구름이 덮고 있는건지 잘 보이지는 않는다. 무수하게 쏟아지고 있을텐데.
식당 공터를 절반쯤 지나가는데 오, 라디오 아마토리 Radio Amatori 들이다. 아마추어 무선을 하고있는 중년남성 두사람이 있다. 나는 해보지 않았지만 이탈리아는 여전히 아마추어 무선 통신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이 산 위에서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걸까 이 분들은. 얼굴도 모르는 낯선이들일까.
이렇게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은 모두 부럽다. 모두 표정이 좋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사는 것 같아보인다. 모두 다 행복해보인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여행을 꿈꾸고 유랑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나도 잠시나마 주변의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그 순간을 경험하고 그 속에 섞이고 싶어한다. 운이 좋게 오늘 여름밤이 그래보인다. 역시나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