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한여름의 꿈과 돌로미티

03.이탈리아 일주일 기행 Molveno - Lago di Carezza

by 벌꿀

60대 후반 부부와 이탈리아 붙박이 조카의 한여름 이탈리아 여행



03. 이탈리아 일주일 기행 Molveno - Lago di Carezza





발코니로 보는 아침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발코니 창을 열어 나와보니 아침보다 이른시간이다. 공기가 달라서 그런지 눈두덩이가 볼록하니 얼굴이 퉁퉁 부은게 느껴진다. 로마에서는 한여름에 얼굴 붓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밖을 보니 바다에 일출처럼 태양빛을 받은 돌산에 아침이 조용히 떠오르고 있는 것만 같다. 공기가 꽤나 찬데 산 위쪽은 구름이 잔뜩인게 흐리다.

부운 얼굴을 툭툭 쳐보며 침대로 다시 들어간다. 아직 시간이 이르니 한숨 더 자기로 한다.


_ABC5242.JPG 몰베노 숙소 발코니에서 본 아침




아침식사와 빵


호텔의 아침식사하는 공간은 북적거렸다. 어제는 우리가 밤늦게 도착해서 호텔에 손님이 이렇게나 많이 묵고 있는 줄 몰랐는데, 테이블이 모자라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이들과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다들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우리는 유일한 동양인이였다.


이모부부는 내가 식당으로 내려오고 나서 바로 같이 들어오셨다. 이모부는 체크아웃 하기전에 방 뷰를 자랑하고 싶다며 방안에서 두분 사진을 찍어 달라셨다. 호숫가가 보이는 뷰가 멋지게 맘에 드시나 보다.


아침은 이 지역에서 먹는 모닝빵 크기정도인 여러 종류의 담백한 빵들과 과일잼을 올린 타르트, 시리얼, 햄과 치즈, 계란, 과일이 풍성하게 놓여있다. 두분은 계란이 있다는 반가움에 '써니 사이드 업 에그 투 플리즈' 그리고 커피는 카푸치노를 요청하신다. 이모는 달달한 페이스트리류 하나없이 작은 바구니에 담백한 빵만 몇개 가져오셨다.


보통적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침은 단 페이스트리류 (크로와상같은)와 커피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로 알려져 있다. 카푸치노는 보통 아침에 소비를 하는데 로마에서는 카푸쵸 il cappuccio 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카푸치노에 코르네또를 살짝 담궜다 먹는다. 이렇게 비스킷이나 코르네또를 적셔먹는 것을 이탈리아 중부에서는 인주빠레 inzuppare 라고 부르는데, 로마에서는 정장입은 중년의 남성이 바에서 코르네또를 카푸치노에 적셔먹는 것이 흔하다. 반면 요즘 밀라노쪽 북부에서는 이렇게 먹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물론 부르는 단어도 다르다. 북부에서는 푸챠레 Pucciare 라고 하고 같은 의미지만 또 나폴리와 남부에서는 아반냐레 abbagnare 라고 표현한다. 아침식사는 이탈리아에서는 중요한 의식의 일부이니 여행할 적에 각 지역마다 다른 단어와 먹는 법을 참고해줘야한다.


집에서 먹을 경우에는 러스크라고 알려진 페테 비스코타테 Fette biscottate (러스크 모양 그대로 슬라이스와 두번구웠다는 말이다) 에 꿀이나 잼을 발라서 먹기도하고 쿠키류 비스코티 Biscotti 를 먹는다. 우유는 성인이 될 수록 소비가 적어진다. 로마나 나폴리, 피렌체, 밀라노 같이 보통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지역에서는 이렇게 아침을 소비하는데 사실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렇게 아침을 먹는 건 아니다.

오스트리아와 가까운 이 지역에서는 아침에 계란이나 햄, 치즈가 테이블에 있는 것이 흔하다. 그리고 담백한 빵이 항상 있다.


이 지역의 빵은 아무래도 오스트리아와 독일빵을 닮았다. 빠네 네로 (Pane nero 검은빵) 라고 부르는 호밀빵이 굉장히 일반적이다. 로마에서 호밀빵은 일부러 찾아서 먹는 빵이지 보통적으로 소비되는 정도는 아니다. 호밀빵 말고도 여러가지 곡물과 견과류, 향신료를 넣어 만든 빵들이 가득하다. 향이 특이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펜넬씨앗 Semi di finocchio, 큐민씨앗 Semi di cumino, 아니스씨앗 Semi di anice 을 넣은 빵들도 흔하다. 처음 먹었을 때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몇번 먹다보면 왜 먹는지 알 것같은 맛이다.

이모는 시원하면서 단 맛이 나는 향신료가 든 빵을 맛보더니 차라리 호밀빵을 먹겠다고 하신다. 나는 단 것 위주로 이것저것 한접시 양껏 가져와 먹었는데 이모부는 식사는 뒷전이시고 숙소의 목조 마감이 기가막히다며 나무가 많고 추운지역이라 그런지 정말 훌륭하고 꼼꼼하게 작업했다고 창틀과 가구들을 유심히 보신다.




몰베노 호수 둘러보기


기분좋게 배를 채운 후, 우리는 몰베노 Molveno 호숫가를 먼저 산책하기로 한다. 마을 뒷편으로 보이는 돌로미티 산쪽은 이모부를 설득해 이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호숫가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라 걸어서 가기로 한다. 몰베노 Molveno 는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주택보다는 호텔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아마도 여름과 겨울에만 운영하는 숙박업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침시간이라 호숫가의 해변은 한산했다. 산 그림자탓인지 물은 초록빛에 가까웠다. 부는 바람도 없이 체감기온이 높았는데 해가 쨍쨍하게 뜨겁다가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를 반복했다. 어디에서 내려오는걸까 색색의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빙글빙글 날고 있다. 언젠가 들었는데 이곳 호수의 물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수질이 맑은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나는 호수는 바다보다 매력을 덜 느끼는 타입이지만 이 지역의 호수들을 보고 있자면 내 선입견이 바뀌기에 충분하다. 호수 옆과 뒷편으로 거대하게 솟아 있는 돌로미티가 보인다. 몰베노 Molveno 에 있는 돌로미티는 자그마한 규모다.


돌로미티는 알프스에 속한 Dolomite 돌로미테 돌산을 부르는데, 이탈리아 북부의 프리울리 (Friuli Venezia Giulia) 주와 베네토 (Veneto) 주와 이모부부와 둘러볼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Trentino-Alto Adige/Südtirol) 주에 산군이 있다. 보통은 이탈리아에서 돌로미티에 간다고 하면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Trentino-Alto Adige/Südtirol) 주를 떠올린다고 보면된다.

돌로미티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의 알프스와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머나먼 대륙 판이 이동하던 그 시절에, 돌로미티는 두번 융기해서 올라온 산맥이다. 처음 바다밑에 있던 땅이 한번 융기해서 해수면 근처까지 올라왔다. 아직 물속에 있던 땅에는 오랜 시간동안 산호도 생기고 조개들도 가득했는데 해수면과 가까우니 산호들이 자랐다가 햇볕이 너무 가까우면 죽어 시체가 되어 쌓이고 또 자라고 쌓이고 하는 과정이 긴 시간동안 반복된다. 호주에 유명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Great Barrier Reef 같은 산호초 지대를 상상하면 된다. 그렇게 해수면 가까이 융기했던 지대는 산호들이 쌓여 모래섬처럼 평평해진다. 그러다가 한번더 융기해서 만들어진 곳이 지금의 돌로미티다.

그런데 판과 판이 만나 융기를 할 적에, 판들은 서로 섞일 수도 있고 돌로미티처럼 한쪽의 판이 다른 한쪽 판 밑으로 들어가 고스란히 들어 올리는 경우도 있다. 돌로미티는 후자에 해당해 산호초 모래섬의 평평한 부분이 고스란히 들어올려진 케이스다. 그래서 돌로미티의 산군들을 보면 뾰족한 산봉우리라기 보다는 바위를 중간에 댕강 잘라낸 것 마냥 위에는 평평해 보이는 돌산들이 많다.

반면 스위스와 프랑스 이탈리아 국경이 맞닿아 있는 쪽의 알프스는 판과 판이 만나 서로 섞이고 찌그러지며 함께 올라갔기 때문에 산봉우리가 좀더 뾰족뾰족한 것들이 많다. 마치 돌들이 파도처럼 쓸려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쨋거나 산호가루와 조개껍데기들로 가득한 산호초지대였던 돌로미티가 창백한 흰색처럼 보이는 것은 그 이유이다. 아침과 오후에 돌로미티가 색을 바꾸는 것도 바다의 산호와 조개껍데기에 햇빛이 반사돼 보이기 때문이다. 돌로미티 산맥은 전세계에서도 이탈리아 그리고 이 지역에만 있는 유일무일한 풍경이다.



1473268550102.jpg
1476290605333.jpg
서너해 전 날씨 좋을때 방문했던 Molveno 몰베노 호수




+ 케이블카


몰베노 Molveno 마을에서 산 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는 곳은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첫구간은 케이블카를 타고 그 다음구간은 리프트를 타는 구조였는데 올라가면서 아래로 보이는 호수의 모양이 가슴 뛰게 아름다웠다. 좋아하시는 이모를 보니 숙소 주인장 아들의 조언대로 케이블카를 타길 잘했다. 게다가 꽤나 높이 올라가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왔으면 아마 오늘 오후에 일정을 소화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날씨가 산위로 올라오니 흐리다. 검은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는데 그 와중에도 사이사이 햇살이 틈틈히 내리쬐긴 한다. 그래도 비가 쏟아지지는 않아 다행이다. 대신 산의 절반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는 하다. 높이 올라왔는데도 큼지막한 돌산이 앞으로 더 높이 솟아있다. 골짜기 사이사이로는 눈이 내린 것처럼 돌길들이 미끄러지고 있다.

호기심도 많고 활달한 이모부는 벤치에 앉아 금방 옆에 앉아 있는 외국인과 대화를 하신다. 날이 좋을때 보이는 이 곳의 절경을 알기에 나는 두분이 그 풍경을 못보시는게 너무 아쉽다. 그래도 이모는 전부 추억이라며 신나게 사진을 찍으신다. 이모부는 하이킹을 못하신게 여전히 아쉬우신 모양이라 내일 가는 지역에서 하이킹을 하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한다.


tempo.jpg


8월에 먹구름을 보는 경우는 소나기를 제외하고서 로마에서는 맞닥드리기 어려운 확률이다. 괜히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로 했겠는가 싶을 정도로 로마는 화창한 날이 많은 편이다. 산악지역은 역시 높이 올라올 수록 날씨가 변덕스러운가 보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다시 햇살이 강하게 비추며 날이 뜨겁다.





포도밭 위에서 점심식사


점심은 볼차노 (Bolzano/Bozen) 근처에 식당을 미리 예약해놨다. 몰베노 Molveno 에서 1시간좀 넘게 걸린다고 나온다. 산을 내려와 정오 조금 넘어 출발한다. 가는길에는 와이너리들이 곳곳에 있어 들르고 싶었지만 풍경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아쉽다.


도로는 예상외로 막혔다. 어딘지 앞쪽에 사고가 난것같다. 지루한 차 안에서는 오퍼스 Opus 의 Live is life 가 흘러나온다. 이모부는 오랜만에 듣는 거 같은데 하시며 한껏 흥을 올리신다. 볼차노 (Bolzano/Bozen) 로 빠져나가는 길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식당에 먼저 전화를 걸어 예약시간보다 늦을 것 같다고 말해야겠다. 어눌하게 들리지만 나긋나긋한 이탈리아어로 젊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주방은 2시반에 닫는단다. 시간상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아 혹시 먼저 주문을 해놔도 되겠냐고 묻자 괜찮다고 한다. 로마였다면 단골집이 아니고서야 선불을 내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하거나 2시까지 오지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답했을 것이다. 물론 그 편이 식당 입장에서는 합리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추천 메뉴들을 부탁해 대강 알아듣는 걸로 골랐다. 볼차노 시내가 바고 코앞이였지만 우선 약속해 놓은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을 찾아가는 길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복잡했다. 첫날 혼자 묵었던 숙소처럼 인터넷에서 사진만 보고 괜찮을 것 같아 별 생각없이 예약을 해놨는데,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한참 고불고불한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창 옆으로 보이는 풍경은 구름은 있지만 해가 반짝반짝 비춰서 아름다웠다.


20180818_153324.jpg 점심 식당을 찾아가는 길


식당을 찾아 올라가는 길은 온통 포도밭이였다. 경사가 진 곳은 햇볕을 고루고루 받으며 배수에도 용이해 포도가 잘 자랄 것이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품질의 와인 생산지다. 나는 이 지역의 화이트와인을 특히나 좋아한다. 산에 예술작품을 표현해 놓은 듯한 포도밭에 이모는 기분이 한 껏 좋아진다고 하신다. 식당은 포도밭을 지나고 사과밭이 옆에 이어져 있는 갈림길 근처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같아 보인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니 괜찮다며 아까 통화를 한 앞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분이 상냥하게 맞아주신다. 야외 테이블에는 아직 식사 중인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우리도 테라스 쪽으로 가 큰 나무 밑 그늘이 시원하게 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테라스 밑으로는 초록색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햇살을 받고 있다.


이모부는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돼지고기 족발처럼 생긴 것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주방이 곧 닫을 시간이라 어려울 것 같은데 혹시나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상냥한 여성분은 당연하다면서 자기가 셰프는 아니지만 해줄 수 있다기에 추가로 부탁했다. 전화로 미리 부탁했던 음식은 이 지역에서는 크뇌들 Knödel 이라고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카네데를리 Canederli 라고 부르는 음식과, 시금치와 리코타를 넣은 라비올리 (Schlutzkrapfen/Ravioli tirolesi), 크라우티 샐러드 (Insalata di crauti)와 핀페를리 (Finferli) 버섯이다. 그리고 추가로 주문한 돼지정강이요리 (Stinco di maiale).


이탈리아는 보통 어느 지역이던 일부러 로컬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다닐 수고가 덜 한 편이다. 어느 식당을 들어가던 그 지역에서 먹는 음식들로 메뉴가 구성이 되어 있다. 여전히 이탈리아는 지역별로 서로 다른 특색이 진하게 남아있다.


크뇌들 혹은 카네데를리, 카네들리 (Knödel/Canederli) 라고 들리는 이 음식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동유럽 지역에서 먹는 파스타같은 탄수화물 요리인데, 빵을 부셔서 우유와 밀가루 혹은 감자를 넣어 둥글게 모양을 빚은 큰 미트볼처럼 생긴 동그란 음식이다. 안에 과일 특히 자두를 넣어 먹는 디저트도 유명하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재료를 다른 것들로 만든 네가지 종류가 한접시에 나왔다. 아마도 녹색은 시금치를 넣은 것, 진한 자주색은 비트를 넣은 것, 흰색은 리코타를 넣은 것과 그리고 빵과 우유로만 만든 심플한 오리지널 버전인 것 같다.


맛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웠다. 안이 꽉차 있어 두분이 드시기에 식감이 무겁지 않을가 싶었는데 리코타를 넣은 것은 특히나 입에 넣으면 스르르 사라지는 맛이 일품이다. 치즈의 부드러운 지방맛이 그대로인게 포크로 크림을 자르듯이 부드럽게 잘라 입안에 넣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크라우티 (Crauti)는 양배추로 만든 김치와 비슷한 음식인데, 실제로 유학생들이 김치 생각이 날때 크라우티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기도 했다. 크라우티 샐러드 (Insalata di crauti) 는 생양배추를 살짝만 절여 아삭한 맛이 남아있는 정도로 샐러드처럼 나왔다. 클래식한 이 지역의 사이드메뉴다. 큐민씨를 뿌려 독특한 향이 올라오고 오일에 버무려 느끼할 수 있는 맛이지만 생야채는 언제나 식욕을 돋군다.


핀페를리 (Finferli) 버섯은 소금 간만 해서 볶은 것인데 다른것 없이 맛있다. 노란 황금색의 작은 느타리버섯처럼 생겼는데 로마에서는 보기드문 버섯이다. 아마도 좀더 추운 산속에서 자라는 모양이다. 버섯에서 나오는 풍미만으로도 감칠맛이 훌륭했다. 씹는 식감도 있어 쌀이나 폴렌타에 곁들여 먹는 상상도 해본다. 계란에 넣어도 맛있을 것 같다. 이모는 버섯이 제일 입맛에 맞다고 하신다. 다행히 간이 적당하신가 보다. 이모부의 돼지정강이요리 (Stinco di maiale)를 맛보시더니 맥주를 곁들여야 겠다며 입맛을 다시고 계신다.


나는 이집의 라비올리 (Schlutzkrapfen/Ravioli tirolesi) 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다른 이탈리아 지역에서 먹는 것과는 약간 다르게 우선 피가 얇아 보들보들하다. 그래서 그런지 속재료 맛이 훨씬 풍부하게 난다. 물만두처럼 연한게 부드럽다. 이런 라비올리라면 100개라도 그 자리에서 전부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모는 나이가 드니 한번에 많이 먹는게 힘들다며 음식들을 몇점 맛만 보신다.


반해버린 라비올리


식당 테이블이 놓여있는 테라스 앞쪽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폭 빠져들게 만든다. 찐한 푸른색의 포도 잎사귀들이 펼쳐져있고 그 뒤로 멀리 눈이 내린 것 같은 돌로미티의 병풍같은 모습이 펼쳐져있다. 이 식당의 셰프는 진작에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런 곳에서 매일 라비올리를 빚고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과 밭을 보면서 친구가 잠깐 들리면 같이 맥주를 마시는 삶이라니.

나는 언제나 이런 삶을 동경한다.

허나 이런 산악지역의 여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긴 지역에서 버틴다는 것은 생각외로 힘든일일 것이 분명하다.

오후를 향해가는 햇살이 뜨겁지만 좋은 날씨다.





카레짜 호수 산책


점심을 먹고서는 여유롭게 카레짜 호수 (Lago di Carezza) 에 들렸다 숙소에 가기로 한다. 돌로미티 지역은 지도상으로는 전부 가까워 보이는 거리이나, 구불구불한 산길이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꽤나 오래걸리는 편이다. 어제부터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서 두분이 피곤하시지 않을까 싶은데도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시니 다행이다.


카레짜 호수 반대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놓고 호수 한바퀴를 걷기로 한다.

호수는 크지 않으므로 40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둘레다. 호수의 물빛은 정말 요정이 사는 것 같이 투명하고 짙은 녹색과 하늘빛을 섞어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다. 그 곁으로 길죽한 침엽수가 둘러져 있고 뒷편으로는 기이한 암석의 높은 바위산이 우뚝하게 펼쳐져있다.

오전에는 구름이 가득했는데 오후가 되니 구름한점 없이 산의 병풍이 그대로 걸려있는게 보인다.


카레짜.jpg 날씨가 좋을때 보는 호수는 전혀 다른 세상같이 보인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특별하기로 유명한데 특히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Antonio Stradivari) 가 악기를 만들기 위해 이지역 나무들을 찾아 다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곳의 나무들은 혈관같은 역할을 하는 나무안의 물줄기가 곧고 끊임이 없어 악기를 만들면 그 물줄기의 공간을 타고 내는 음의 울림도 막힘이 없어 훨씬 더 풍부하고 빼어나다고 들었다.

여러모로 지금 이탈리아라고 부르는 이 땅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 참 많은 곳이다.


호수 둘레를 걷는 산책로 옆에는 군데군데 잘라낸 나무에 버섯모양을 조각해 놓은 것들이 보인다. 아기자기하게 귀엽다. 이모는 보이는 풍경이 캐나다 로키랑 비슷하다며 한해 전 결혼기념으로 다녀오신 캐나다 여행 에피소드를 풀어내신다. 꼭 그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이모는 웃으면서 세세하게 얘기해주는데 굴곡 가득한 세월을 같이하신 두분이 언제나 즐겁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00.jpg 물빛의 요정이 어딘가 있을 것 같다




호수를 마음껏 한바퀴 돌고서는 아직 해가 있을 때 오늘 묵을 숙소를 찾아 가기로 했다. 카레짜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가는길을 좀 헤매기는 했다. 그래도 덕분에 돌로미티 풍경도 보고 제대로된 드라이브 하는 기분이였다. 숙소는 꽤나 외져보이는 산속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모는 리조트 분위기가 난다며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 마신다. 나무숲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고요한 산속에 물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숙소는 어제 묵은 곳보다 훨씬 큰 규모로 일하는 직원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이곳도 어색한 이탈리아어로 설명을 해준다. 숙소 이름이 Rechenmachers Rosengarten 인데 이건 어떻게 읽는걸까.


리셉션 옆에는 꽤나 괜찮아보이는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어 저녁도 먹을 수 있었는데 아쉽지만 저녁을 다른 곳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수영장이 있다는 말에 이모를 부추길까 했지만 온천이 아니면 사양하실 게 분명하다. 우리는 방에서 잠시 쉬었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나도 침대에 누워 긴장을 풀어본다. 다행히 잘 다니고 있다. 그나저나 모레면 산악지역에서 평지쪽으로 내려가는 일정인데 한여름에 더위가 걱정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침대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투숙객이 많은데도 숙소는 조용했다. 눈을 떠보니 아직 해가 있다. 짧게 잠들었던 것 같다. 이모부는 숙소에 여기저기를 구경하시며 바깥 산책 중이셨다. 저녁식사 장소로 이제 이동하면 노을빛이 비추는 붉은 돌산을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해가 질쯤에 모습을 나타내는 돌로미티는 붉은 태양이 돌안에 있는 것처럼 노을이 물들어 타오르는 것이 절경이다. 이모는 나처럼 한숨 잘 쉬셨는지 먼저 저녁얘기를 꺼내신다.


저녁은 한 말가 Malga 의 식당을 예약해놓았다. 돌로미티 지역의 지도를 보면 무슨 말가 Malga 라고 적힌 단어가 여기저기 보이는데, 예전에는 동물을 치던 목동들이 여름에 잠시 쉬어가던 공간으로 거기서 우유나 치즈를 만들어서도 팔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목장을 같이 하거나 목장쉼터 겸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숙소를 겸하는 곳이 많다. 지도에서 말가 Malga 를 보면 먹을 것을 파는 곳이라고 보면된다.




드라이브와 저녁식당 찾아가는 길


_HAN6950.JPG


저녁 예약을 해둔 식당을 찾아가는 길은 연녹색 풀과 야생화가 자라고 있는 초원과 돌로미티 산군이 보이는 장엄하고 멋진 풍경이다. 인터넷이나 TV에서 흔하게 많이 보던 장면인데도 실제로 보면 이렇게나 가슴이 뛰는데, 예전 로마제국이나 중세시절 사람들은 이 돌산을 보고서는 어땠을지 상상이 안된다. 저 거대한 돌산을 보면서 뭐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몇번이나 차를 멈춰서 사진을 찍고 감탄했다. 해가 노을의 여운도 남겨놓지 않고 산 뒤로 금방 넘어가 버린다. 여름이지만 이 곳의 저녁은 다소 일찍 찾아오는 것 같다.


저녁식당은 작은 고개 마을에서 걸어서 들어가도 되고 차로 들어갈 수도 있는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차로 식당까지 가기로 하고 자갈 비포장길을 조심스레 따라간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 9시가 되가고 있다.

보통 이탈리아는 남쪽으로 갈수록 식사 시간이 늦어지고 북쪽으로 갈수록 일찍 먹는 편이다. 로마같은 경우에는 저녁때 친구들끼리 모이기로 하면 저녁 8시30분이라고 약속시간을 잡고 9시쯤에야 다들 모인다. 이 지역 사람들은 로마보다는 일찍 저녁을 먹을텐데 여름 휴가기간이라 그런지 식당들은 밤늦게까지 식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식당 안은 예상대로 손님들이 많았다. 다들 여행객일 것이다. 안에는 구워낸 음식향이 가득했는데 고소한 기름 향이 퍼지고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것 같고 식당 전체를 컨트롤 하시는 몸집이 제법 넉넉하신 중년의 여성분이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를 안내해주신다. 표정이 딱딱하여 화가 난 듯한 인상이지만 부드러운 말투로 메뉴판을 가져다 주셨다. 동생은 아닌 것 같고 시누이쯤 될 것 같은 키가 크고 얼굴과 이목구비가 뾰족뾰족하게 생긴 여성분이 재촉하며 메뉴를 물어본다. 바쁜 식당은 어딜가나 한번거쳐 지나가는 뜨내기 손님에게는 무심한가보다. 이모는 어제나 오늘이나 가는 곳마다 동양인은 우리뿐이라 신기해 하셨다. 두분은 여행을 굉장히 잘 다니시는데 이렇게 동양인 보기드문 곳도 없다고 운을 떼신다. 카레짜 호수에서 대형 일본 관광버스가 서너대 서 있긴 했으나 그것 말고는 아직 한국인은 못보셨으니 그럴만도 하다.


메뉴는 간단한 구성이였는데 나는 폴렌타와 구운 훈제치즈와 크라우티를 한접시에 내는 메인으로 먹는 것이 괜찮아 보였다. 이모는 폴렌타와 리코타치즈와 크라우티로 구성된 것을 고르셨고 이모부는 목장을 운영하는 집이라고 했더니 스테이크를 고를까 하다 혼자서 먹기에는 무리일 것이 분명하여 소고기 카르파쵸 (Carpaccio di manzo) 로 하기로 하셨다. 치즈와 고기 모두 이집 목장에서 직접 기르는데 다른 테이블을 보니 전부 큼지막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이모부는 옆에 앉은 커플이 한 사람씩 뼈가 커다랗고 두께가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것을 보시며 아쉬워 하시긴 하셨다.


우리가 받은 접시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아까 점심에 먹었던 것의 배도 넘어보이는 양이다. 폴렌타는 메밀가루도 섞여 있는 건지 거뭇거뭇한 색감이 섞여 있고 거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맛은 옥수수로 만든 것보다 더 담백하고 고소했다. 제대로 오랜시간 저어서 만든 폴렌타는 가루의 입자가 고와 그 부드러움이 촉촉하게 입안으로 넘어간다. 내가 주문한 훈제치즈는 손바닥보다 큰 사이즈에 네모난 모양으로 구워져 나왔다. 치즈는 짭잘하고 쫀득한 식감이 폴렌타와 곁들여 먹으니 조합이 좋았다. 다만 칼로 자를 때 마다 흘러나오는 엄청난 양의 기름을 보니 다소 칼로리가 걱정되기는 하다. 이모는 치즈를 맛보시더니 짠맛에 놀라신다. 확실히 로마에서 먹던 것보다 풍미가 차원이 다르게 강한데 짠맛도 강하다. 이모부는 치즈를 스테이크처럼 짤라서 식사로 먹는다는 식문화가 신기하신 모양이다. 잔뜩 기대하셨던 소고기 카르파쵸 (Carpaccio di manzo) 는 생각했던 육회가 아니라며 몇점 드시고 마신다. 얇은 생고기에 루꼴라와 숙성된 치즈를 뿌려놓았는데 아마 한국의 양념맛과 고기의 조합이 그리우신 모양이다. 고기 살점을 입에 넣으시더니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신다. 저녁 메뉴 선택은 실패였다. 그래도 다행히 폴렌타와 리코타치즈는 제법 드셨다. 크라우티도 짜지만 나쁘지는 않다는 평을 받았다. 이집 크라우티는 점심에 먹은 샐러드 형식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흔하게 보는 양배추를 소금에 푹 절인 형태라 훨씬 더 신맛과 향이 강하게 났다.


다른 테이블들에서는 우리가 주문했던 동일한 음식들을 싹싹 비우고 있었다. 음식은 먹는 사람이 완성하는 독특한 문화 중에 하나가 분명하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식사들은 언제나 나름 큰 용기와 에너지를 갖고 맞이할 필요가 있다. 낯선 곳에서 대면하는 것들은 알게 모르게 더 기대를 갖게되기 때문이다.


나는 두분보다 젊다는 기량을 발휘하여 내 접시를 쓱쓱 비워냈다. 폴렌타는 언제나 먹고나면 포만감이 크다. 혼자서 접시를 비우고 나니 주인장 중년여성이 나를 보며 만족해하는 표정이다. 네, 정말 열심히 먹었습니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주위가 무섭도록 캄캄하다. 산길에 우두커니 있는 이 식당만 불빛이 켜져있다. 높은 지대에 올라와 있지만 별들은 여전히 멀리있어 보인다. 두분은 시원한 밤공기에 기분좋게 잠이 깬다고 하신다. 나는 아무래도 두분이 저녁식사를 맛있게 드시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하다. 당분간 산악지대의 음식들에 입이 더 짧아지실까 걱정이다. 이모는 집 나오면 그런 것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아 하신다. 모두 겪어보는 것일 뿐이라며 별빛 가득한 하늘을 구경한다.





keyword
이전 03화#2 여행의 시작 가르다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