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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대디 Jul 25. 2020

유학과 외로움, 호주에 간 공고생 EP3

시드니 유학생활 그리고 외로움

외로움

한국에서 어떻게 보면 한창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나이에 호주에 와서 그런지 나의 마음속에는 늘 그리움과 외로움이 컸다. 특히 국제전화카드를 구입해서 친구들에게 전화할 때는  참 보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늘 그랬다. 내가 살고 있었던 이모 댁은 시드니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정도 와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들어와 있는 곳이라 친구를 만나려 해도 큰마음을 먹고 나와야 했다. 그래서인지 함께 유학을 온 승용이는 독립해서 시내 근처로 이사를 했고 나는 좀 더 고립된 생활을 이어갔다.

2001 12 그리고 한국

호주에 온 지 1년여 만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이때 방문한 한국은 마치 고향으로 탈출을 한 그런 느낌이었다. 3주간 일정이었지만 주로 친구들을 만나는데 할애를 했다. 그 안에서 친구의 소개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교제까지 이루어졌다. 호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싫었지만 어느 날 집안의 책장을 뒤지다가 어머니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나와 내 동생에 대한 결심 등이 담겨 있었다. 그 일기장을 보고 나서 결심을 한 것이 호주에서 내가 잘되어야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원래는 영어연수 정도만 마치고 한국에 와서 군대를 가는 것이었지만 이때부터 한 첫 번째 결심은 일단 대학을 가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영어연수 , 전문대


8-9개월간의 영어연수 후, 나는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한국인이 경영하는 IT학교 멀티미디어 전공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전공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스포츠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자가 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생이 기자가 되는 것은 좀 무리라는 판단에 방송, 미디어 쪽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인기리 방영했던 뉴 논스톱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정식 3년제 대학교는 좀 더 오랫동안 영어연수를 해야 해서 전문대를 입학했다. 그때까지 나는 컴퓨터에 컴자도 모르는 컴맹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학교에 한국인 형, 누나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학교는 일반 전문대 2년 과정을 방학 없이 1년 만에 졸업할 수 있는 곳이어서 빨리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이때 내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는데 너무 컴맹에다 소질까지 없어서 몇몇 선배들은 소질이 없는 거 같으니 젊을 때 다른 전공을 알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을 하기도 했고 아무래도 호주가 다문화 국가이고 당시에 여러 나라에서 유학생들이 많을 때라 어떤 한 누나는 한국사람 실력 없다고 망신시키지 말고 다른 전공을 빨리 알아보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 멀티미디어라는 공부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웹, 디자인, 영상 등을 다양하게 공부하는 것이라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서 내야 하는 것이 숙제였다. 그런데 내가 소질이 없어서인지 항상 뭔가 팀워크로 학교 과제를 해야 하면 좋은 팀원을 만나는 것이 어렵거나 나하고는 안 하려고 하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이런 고충과 노력 끝에 졸업을 할 수 있었고 편입학으로 시드니에서는 비행기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골드코스트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멀리 있는 대학을 가게 된 이유는 캠퍼스의 낭만을 좀 느끼고 싶었고 강제로 교회를 가는 것이 너무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시드니에서 알게 된 친구도 나랑 같은 대학을 같은 학기에 간다고 해서 서로 돈도 아낄 겸 함께 렌트해서 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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