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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왜 하필 파리?

프랑스 파리를 선택한 이유

파리 앓이

한 번의 여행으로 만족할 수 없는 도시



결혼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9박 10일 일정으로 파리 여행을 계획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다른 유럽 도시들 죄다 놔두고 왜 하필 쇼핑 빼면 특별할 게 없는 파리에 가냐고 의아해했었다. 대자연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명품이나 브랜드 쇼핑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아는 지인들의 우려 섞인 물음이었다. 

아이들 없이 우리만 가는 여행이었고 자연을 만끽하며 편히 쉬는 여행보다 세계적으로 로맨틱하고 아름답다고 인정받는 대도시 파리를 구석구석 탐색하며 파리지앵들의 에너지와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이 나라 저 나라 찍고 다니며 남는 건 사진밖에 없는 유럽투어보다 전 세계가 열광하고 환상을 품는 도시의 실체가 무엇인지 잠시나마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내 생에 다시 파리를 올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아직 못 가본 나라들이 허다하니 여행의 기회가 생긴다면 응당 다른 도시를 선택할 게 분명했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파리를 최대한 누려야겠단 마음가짐이었다. 보통 유럽 패키지여행으로 파리를 3일 정도 찍고 간다는데 10일이면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기 충분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9박 10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중간중간 파리를 벗어나 기차를 타고 베르사유Versailles도 다녀오고, 차를 렌트 해 몽 생 미셸Mont-Saint-Michel(수도원), 에트르타Étretat(코끼리 절벽), 옹플레르Honfleur(항구 도시)를 다녀와서인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파리 동서남북을 싸돌아다녔지만 9박 10일이란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동선상 잠시 스치며 머물렀던 뤽상부르Jardin du Luxembourg 공원도, 관광 명소들로 이동하기 위해 거쳐갔던 센강도, 몇 번 눈에 담지 못한 에펠탑도, 파리의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중 오르세 미술관만 겨우 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너무 아쉬웠다. 유모차를 끌며 바쁘게 걷던 스타일리시한 슈트 차림의 남성들, 공원 풀밭에서 반나체로 엎드려 태닝을 즐기거나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할머니들, 캐주얼한 레스토랑에서 다정히 브런치를 즐기는 노부부들, 공원에서 여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가족들, 길을 묻기 위해 말을 건넬 때마다 친절하게 응답해 주며 핸드폰까지 선뜻 빌려주던 여러 파리 시민과 더불어 예쁜 파리 하늘과 골목에 대한 강렬했던 인상이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잊히지 않았다.

바로 그 여행에서 느꼈던 부족함 때문에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을 거라 확신했던 파리에 우리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온 식구가 와서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파리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다. 이제는 뤽상부르 공원이 틈만 나면 가는 메인 산책 장소가 되었음은 물론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 몽수리 공원 Parc Montsouris, 라 빌레트Parc de la Villette는 뤽상부르에 이어 우리 가족이 가장 즐겨 가는 피크닉 장소가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햇살이 좋다 싶으면 우리 부부는 초콜릿 쿠키와 보온병에 커피를 잔뜩 담아 센강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센강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햇살 아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은 우리만의 낭만적인 사치다. 특급 호텔 라운지 못지않은 뷰와 자연광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 오후, 저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에펠탑의 진풍경을 매일매일 보며 다니고 있다. 2019년으로 해가 바뀌는 그 시각에는 희망차게 반짝이는 에펠탑을 앞에 두고 사람들의 활기찬 함성과 폭죽 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햇살에 반사돼 보석처럼 빛나는 센강과 오밀조밀 질서 있게 정돈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배경으로 파란 하늘 아래 우두커니 홀로 치솟아 있는 에펠탑은 언제 봐도 매혹적이다.



다양성의 도시



두 번째로 우리가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다양성’이다.

아이들 학교만 봐도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학생들이 있다. 여느 세계의 대도시들처럼 파리에도 수많은 이민자와 관광객 그리고 출장자가 머무는 곳이니 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나라의 요리도 찾을 수 있다.

나와 생김새가 다르고, 낯선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가 생소할지라도 얼마든지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걸 파리 생활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개인의 고유성을 지닌 존귀한 존재라는 당연하지만 때로는 놓쳤던 사실을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실감한다. 아랍 사람은 이럴 거야, 아프리카 사람은 이럴 거야, 미국 사람은 이럴 거야, 프랑스 사람은 이럴 거야라고 무의식 중에 쌓아뒀던 몹쓸 편견이 그 개인과의 만남을 통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며 내 안에 편협성과 마주하게 된다. 

루마니아 혈통의 프랑스 태생이었던 친구를 튀니지에서 이민 온 친구가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겉모습이 프랑스인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당연하다는 듯 "너도 아프리카에서 왔니?"라고 무식한 질문을 했더랬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루마니아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그녀 앞에 나는 미안함으로 당혹스러워했고 그런 나에게 그녀는 어디 태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그 사람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부차적인 정보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튀니지에서 온 친구가 튀니지 출신임을 알려줬음에도 인도 사람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그리고 "Tunisia"라는 나라가 생소하다는 이유로 그 친구와 두 번째 만남에서 나도 모르게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했지 하며 묻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었다. 그때가 파리에 처음 와서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났을 때였고, 낯선 문화, 언어, 장소에 적응하며 아이들까지 돌봐야 해 정신이 나가 있던 시기라는 게 나의 유일한 변명이다. 그러고 나서야 튀니지가 북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아랍어를 사용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이 친구들의 넉넉함으로 그 사건이 우리 관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않았지만,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최우선의 관심이기에 먼저 국적을 묻거나 확인하기에 급급했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돼주었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된 나라다. 사람을 겉모습과 출신국으로 선입견을 품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천박한 사고라는 인식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서인지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게 차별을 하는 행위를 프랑스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는 거 같았다. 오히려 상대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경향을 보였다. 짝지가 운동하는 헬스장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비쥬bisous(볼을 맞대고 뽀뽀소리를 내는 프랑스식 인사)가 어색한 짝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먼저 목례로 인사를 했더니 그들도 예의를 갖춰 목례로 함께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헬스장을 가면 매일 모든 사람과 인사하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려 운동하기도 전에 지친다는 짝지의 투정에 폭소를 내뿜은 적이 있다.

파리로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파리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겪었던 인종 차별에 대해 더러 들었지만, 무딘 성격 때문인지 나는 아직 인종 차별이라 할 것을 딱히 경험해 보지 못했다. 오히려 친절과 배려를 더 많이 경험했다. 하지만 어디서나 웃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사람을 대했고 무언가 불공정한 상황같이 느껴지면 정중하게 따졌다. 그럴 때 내가 여기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합리적이었다. 정말 간혹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어느 도시에나 있기 마련이니.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를 점검하고 확장해 나가는 공부를 몸소 부딪치며 하는 중이다.



평등의 가치를 아는 도시 


세 번째로 우리가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프랑스 특유의 사회주의적인 정치, 사회 시스템 때문이다.

이번 ‘노란 조끼 시위 Yellow Vest, Gilets Jaunes 때도 보았지만, 시민들이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 권리를 위해 언제든 연대하고 투쟁하며 국민의 대다수가 이를 지지한다. 마크롱 정권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친대기업 성향을 띠니 시민들은 단합하여 정부 정책을 규탄하고 고집스러운 정부에 맞서 혁명에 나선다. 그래서인지 재정적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복지가 탄탄하다. 때로는 학교와 지하철에서 파업을 자주 하다 보니 불편함도 있지만 우리 같은 노동자들의 더욱 나은 혜택을 위한 몸부림이라 생각하니 절로 응원이 나온다.

이런 복지 시스템 덕택에 우리 가족은 실질적으로 혜택을 보았다. 학기가 시작하고 학교를 등록하는 바람에 아이들 급식 등급을 사전에 받지 못해 10등급을 받게 됐다.

프랑스는 부모 소득별로 상이한 급식비를 낸다. 한 달 소득이 5천 유로 이상일 경우 제일 높은 10등급을 적용받아 급식 한 끼에 7유로(약 9,000원)를 지불해야 한다. 반면 제일 낮은 1등급은 소득이 234유로 이하인 상황에 해당하며 급식 한 끼가 0.13유로(약 150원) 정도다. 필요한 서류를 관련 부서에 제출하니 10등급에서 3등급으로 적용받을 수 있었다. 3등급은 급식 한 끼에 1.62유로(약 2,100원)다.

여기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가 대기업 경유 회사에 다니는 프랑스 남편에게 물었다고 한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대가로 소득이 높은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건데 왜 무직이거나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 비해 우리가 급식비를 훨씬 더 많이 내야 하냐고 이건 불공평한 시스템 아니냐고 말이다. 그 남편 왈 “그건 불공평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건데. 그럼, 당신은 낮은 등급 받기 위해 좋은 직장을 안 다니는 게 나? 난 좋은 직장에서 일하며 돈도 많이 벌고 세금도 더 내고 높은 등급 받는 편이 훨씬 좋은데.”라는 답변을 듣고 복지에 대한 시각 자체가 아예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존중받는 도시



네 번째로 우리가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개인주의가 분명한 사회 분위기가 좋아서다.

성숙한 공동체 의식도 없으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비방하기를 즐겨하는 사회에서는 내 존재로서 자유롭게 꿈을 좇아 살기란 참 어렵다. 학교, 전공, 직장, 퇴사, 결혼 같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마치 가족, 친척, 이웃, 친구를 심사 위원으로 두고 공개 오디션을 치르는 기분이기도 했다. 경쟁이 만연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늘 비교 속에 자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는 [모멸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주의는 여러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매긴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한국에는 그런 의미에서의 개인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남에 대한 신경을 너무 곤두세운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뉘는데, 한편으로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서 참견하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다. 다른 한편으로 자기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너무 예민하다.

한국의 근대화는 선진 산업사회를 재빨리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긴박하게 추진되었다. 그러다 보니 합리적 개인화를 수반하지 못한 채 집단 에너지를 동원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공동체는 빠르게 해체되었지만, 대안적인 공동체나 자발적인 결사체의 형성은 지극히 미미했다. 결국 개인의 독립도 사회적 유대도 모두 엉성한 채 외형적인 경제 규모만 커졌다. (p141-142)


또한, 2016년에 북 DB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찬호 교수는 개인주의와 개별화를 명확히 구별하였고, 개인주의가 제대로 섰을 때 공동체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개인주의'는 '나는 나'이지만 관계는 맺는 것이고, 개별화는 단절된 상태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주의를 자기 것만 찾는 거라고 잘못 해석한다. 그게 아니라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개인주의이지 나밖에 모르는 건 이기주의다. 자기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편안하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걱정을 빙자한 주변의 끊임없는 참견에서 벗어나 내가 주체로 선 경험을 제대로 한번 하고 싶었다. 완전한 개인주의도 완전한 공동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그사이 어디쯤에서 상처를 주고 또는 받았던 내가 진정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한국에 있을 때도 독일의 '마더센터'를 모델로 공동육아 시스템을 통해 여성끼리 연대함으로써 여성으로 사는 삶과 엄마로서의 삶의 균형을 되찾아 보고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에도 유익한 일을 해보려고 사회적 기업을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의료 사회적 복지협동조합에서 만난 6명의 엄마와 의기투합하여 출자금을 모아 공간을 대여하고, 돌봄 선생님도 고용하며 마을 사람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나름 공동체에 대한 개념도,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도, 노동과 환경의 소중함도 아는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었지만 돈이 엮이고 관계가 얽히니 초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1년 동안 많은 돈과 마음과 에너지를 쏟아붓고는 인생 공부를 한 격이 돼 버렸다. 그만큼 성숙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도전에 후회는 없다. 좀 더 지혜롭게 대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아도 그 시간을 통해 책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깨달음과 교훈을 얻었으니 말이다.

파리에는 한국에서처럼 외모를 평가하거나 검열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우리는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고, 오히려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 보고 있다. 짝지는 머리와 수염을 잔뜩 기르고 새빨간 코트를 입고 다닌다. 나는 오히려 민낯으로 다니는 횟수가 늘었다. 어쩌다 귀찮아서 민낯으로 다니게 되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처럼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지 몰고 가는 사람들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어디서든 스킨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른 앞에서 손을 잡는 행위조차도 예의에 어긋나기에 스킨십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늘 조심스러웠다. 반면 파리에서는 어디에 있든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 가는 대로 키스와 포옹을 하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부모의 스킨십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참견도 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이지만 매너와 에티켓은 과할 정도로 잘 지킨다. "Pardon", "Excuse-moi", "Merci"와 같은 "실례합니다"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다. 그 대상이 4살짜리 아일지라도 살짝 부딪쳤을 뿐임에도 어른에게 하듯 "Pardon"이라고 정중하게 사과한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행위는 몸에 배어있는 듯 보였다.

상점에 갈 때도 잘 가라는 인사 끝에 "Bonn journée"(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를 꼭 주고받는다.



철학과 예술을 교육하는 도시 



다섯 번째로 파리에 온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이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 못지않게 '철학'을 중요시하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중등 과정 졸업시험에서 출제된 철학 논술 시험문제에 어떤 주제가 나왔는지가 그다음 날 신문에 대서특필할 정도로 이슈가 된다. 철학 문제는 단순히 암기해서 서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어렸을 적부터 여러 책을 읽고 경험하며 자신만의 논리와 주장이 있고 근거가 있어야만 답변을 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


유교 사상이 문화 속에 녹아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나 직장이나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구조 탓에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개진하기 힘든 위계가 있는 수직적인 분위기다. 그랬다간 미운털이 박혀 왕따가 되기 십상이고 괘씸죄에 걸려 여러 기회를 놓치고 만다. 나만의 생각을 잃어가고 주류 패러다임에 휩쓸려 점점 '왜', '어떻게'라는 질문은 사라진다. 한 인격체가 자신만의 생각이 없다는 것만큼 참담하고 슬픈 일이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그 누구에게나 그 어떤 현상에나 겸손함 속에 당당히 "왜"라고 질문하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바란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많다. 승마, 펜싱, 바이올린, 체스, 테니스 등 뭐가 됐든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시도해 볼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 일주일에 한 번만 배우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재밌게 배울 수 있다. 첫째 아이는 일 년에 30유로를 내고 축구 클럽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 축구를 배우고 있다. 프랑스어가 좀 더 늘면 아이가 원하는 악기 하나와 펜싱을 배울 예정이다.


럽 여행이 자유로운 도시



여섯 번째로 프랑스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유럽연합(EU)에 속했기 때문에 귀찮은 검문 없이 다른 유럽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심지어 중동 지역도 한국에서 가는 것보다 용이하다. 지난 9월 방학 때는 아이들과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가는 비용의 반값으로 2주 동안 홍해와 사해와 지중해 여행을 하고 왔다. 이번 2월 바캉스 때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가기로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자체 안식년을 갖기로 계획했고 현재 실행 중이다. 서울에서는 빠른 속도에 발맞추어 살며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일에 매진했다면, 파리에서는 걷기 좋은 도시이니만큼 산책을 통해 사유하며 행동보다 생각을 많이 하는 느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삶 자체가 단순해졌다.

회사에서 육아휴직 기간에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월급과 적금을 깬 금액으로 살아야 하기에 생활비를 타이트하게 책정한 만큼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것들로 살아가는 검소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더 넓은 집과 더 좋은 차를 구매하거나 재산을 늘리기 위해 투자하거나 투기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그게 행복의 절대적 기준이자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공과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경험과 공부에 그동안 힘들게 모아둔 돈을 소진하는 중이다. 값비싼 브랜드 아파트와 자동차가 그리고 욕망에 이끌리는 삶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이 여정의 끝에 다시 한국 사회로 돌아가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으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괜히 돈만 낭비하는 거 아닌가 두려움과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다른 길을 직접 가봐야만 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익숙함을 벗어난 쉼과 여유가 있는 이 안식년이 몸과 영혼과 마음과 지성에 창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기가 되기를,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시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2018년 겨울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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