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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pr 13. 2019

크고 작은 하루 3일째, 햇빛과 물건들

나는 남의 화단 구경이 어찌나 재밌는지

해가 있는 독일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나야 아직까지 울코트를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지만, 확실히 봄이 되니 길가의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자기 여기 있다며 반짝이는 것 같다. 작년 독일에서 처음 맞이한 봄, 핸드폰을 보며 길을 가다가 무심코 싱그러운 꽃내음을 맡고 깜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었는데, 한국서는 해보지 못한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오후에 수아와 중고 물품 가게를 가면서 구글 지도를 보다가 또 한 번 그랬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건만, 멀리서 날아온 라일락 향이 차암 달았다.

바이마르 서쪽에 있는 Sozialkaufhaus는 아주 멋진 보물창고다.

수아가 오면 꼭 데려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던 Sozialkaufhaus. 버스편도 안 좋고 시내에서 서쪽으로 제법 걸어가야 해서 자주 드나들기는 힘든 위치지만 언제나 오가는 수고를 잊게 하는 보물들을 한 아름 안고 올 수 있다. 작은 티스푼부터 세탁기와 소파까지, 누군가의 집에서 쓰이던 생활용품들이 이 창고 공간에서 새 주인을 기다린다. 종류와 상태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20센트에서 5유로 안팎이면 웬만한 물건들은 구매할 수 있다. 가게 입구에는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품목들을 진열해두는 장도 있다. 나는 특히 수아가 각양각색의 유리잔, 머그컵, 맥주잔, 와인잔 따위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고르도록 숙제를 내고 싶었다. 누군가의 집에서 또 다른 누군가와의 시간을 덥히던 잔들이 다시 이 친구의 집으로 향할 거라 생각하니 그보다 더 괜찮은 기념품이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독일인들은 쓰지 않는 물건을 상자에 담아 현관문 앞에 곧잘 둔다. 물건은 폐기시켜야 할 상태에 있지 않고 대부분 멀쩡하다. 그러면 거리낌 없이 서로가 서로의 상자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간다. 나는 독일에서 흔히 보는 풍경 중 이 상황을 단연 가장 좋아한다. 오빠, 아빠, 이모에게 물려 입은 옷, 동묘 앞 시장, 교회에 있던 아나바다 컨테이너가 그랬듯 나한텐 필요 없는 물건이 누군가의 마음에 쏙 들 수 있다는 가치 전환, 또 그런 기쁨을 나를 포함한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묘한 기대감을 좋아한다. 특히 이 경우 따로 공간을 확보해 장을 열지 않아도(아, 물론 동네에선 플리마켓이나 차고 세일은 물론 자주 열린다) 보이지 않는 물물교환이 상시로 이루어진다는 게 포인트. 레트로 또는 공유문화 따위에 관심 있는 특정 부류가 아니라 시민들 다 같이 물건을 돌려쓰는 것에 거부감이 덜하다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편, 내가 구제 옷을 사 오면 엄마는 누가 입었던 건 줄 알고 그런 걸 입느냐고 질색하셨었다. 수아는 어떠려나. 사실, 이 창고 가게가 위치한 바이마르 서쪽Weimar west은 시리아 등지에서 넘어온 난민과 저소득층이 모여사는 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아마 물건들은 어디선가 줍거나 대거 가져왔을 테고 이를 여기서 선별해서 파는 것이겠지. 이해한 바로는 이곳에서 나는 수익을 해당 공동체에서 생활 기금으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있는데, 수아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소심하게 가게를 나온 후에야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물건은 그냥 물건인데. 사람은 거기에 가치를 부여한다.


나는 프라이팬과 프렌치프레스, 수아는 장식용 시계와 컵, 촛대를 사고 같이 공짜 잔들을 몇 개 집어왔다. 가격이 부담 없는 만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스타일의 물건들 속에 모처럼 취향껏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짜릿했다. 돌아오는 길, 수아의 프라이탁 가방은 간신히 뚜껑이 덮인 최대 용량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바이마르의 제일 가는 케익집 Koriat

우리는 달다구니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바이마르에 와서 코리아트Koriat를 안 갔다면 현지의 매력을 하나 놓친 것이다. 성당 Herze Jesu Kirche 맞은편에 위치한 이 작은 케이크집은 신선한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조각 케이크와 파이를 자랑한다. 저번에 당근케이크를 먹고 그 촉촉함과 풍미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아는 애플파이를 시켰고, 우리는 가게 앞 길가에 놓인 스툴에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만끽했다. 그늘에 있으면 스산하기 짝이 없는데, 햇빛이 닿는 곳은 이렇게나 따듯하다.


광합성 중

햇빛 에너지에 힘 입어 나는 수아에게 결국 나의 방황을 털어놓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님 독일에 남아보려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다. ...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가는 선택은, 장기적 관점에서 튼튼히 홀로서기할 수 있는 토대를 어쩌면 손쉽게 날려버리는 수는 아닐까? 그런데 독일이나 유럽 국가에 남아서, 더 나은 업무조건과 생활조건에서 살면, 근데 그게 정말 다인가? 나는 목적이 필요한 것 같아.

그는 말했다. 어, 의외로 난 목적 같은 것은 신경 안 써요, 내가 재미있고 힘 있게 잘 살아가는 게 다른 이들에게도 힘을 줄 거야. 그러니 내가 재미있을 수 있고 잘 지낼 수 있는 곳에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더 나은 조건에 있을 수 있는 것, 좋은 거 아니야?


이곳에 와서도 열심히 일하는 수아에게 주어지는 3분의 기대와 평온: 에어 매트리스 침대

집에 돌아왔고 또 밤이다. 우린 또 새벽에 일어나겠지. 와중에 삶은 또 왜 이리 바쁘고 분주한 것인지 나는 요즘 내일 아침이 찾아오는 게 무섭다. “수아는 아침 좋아해요?” “아니요. 엄청 안 좋아해요.” 말은 그래도 또 오전에 열심히 일하겠지. 내일 우리는 오후에 베를린에 가는 버스를 탈 것이다.


에디터 쏭은 리서치왕 지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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