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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Nov 29. 2021

공주는 심각해서 싫어!

 공주는 좋지만 공주라 불리는 건 싫다는 딸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집에서 온 가족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남편과 아이는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레고를 가지고 그들만의 추억과 조립물을 차근차근 완성해갔다.


사이좋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남편과 나의 연애 시절부터 남편을 알고 있던 친구는 우리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내게 물었었다.

"남편이 딸 바보가 되면 기분이 어때? 조금 섭섭하지 않아? 나보다 아이를 더 챙기고 그러면 나는 왠지 섭섭할 것 같아."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니, 전혀. 가장 기쁘고 좋을 때가 그 모습을 지켜볼 때야. 그때가 가장 행복해."

여기서 '그 모습'이란 남편과 아이가 알콩달콩할 때의 모습이다.

물론, 남편이 아이를 볼 때(육아할 때) 내 몸이 편해서 그런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사이좋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마음에 꽉꽉 차오른다.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생명과 모두를 아우르는 가정의 울타리는 그런 의미에서 더없이 소중하고 각별하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와중, 평화로움에 찬물을 끼얹은 건 남편이 아이를 "공주님"이라고 불러서였다.

나와 남편은 가끔 기분이 좋거나 혹은 별생각 없이 아이를 부를 때 "공주님~!"이라고 부를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공주님이라고 부르지 마!"라며 의사표현을 했다. 사실 이전에는 크게 이유를 따져 묻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아이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다. 디즈니 프린세스나 시크릿 쥬쥬를 좋아하는 아이의 취향을 고려하자면, 공주님이라고 불러주는 걸 굉장히 좋아할 것 같은데 왜 싫어할까 쉬이 납득되지 않았다.


"공주라고 부르는 게 왜 싫어?"


딸은 곧바로 대답했다. "공주라고 부르는 건 싫어. 똥강아지라고 부르는 게 좋아."


"채아는 공주를 좋아하잖아. 시크릿 쥬쥬도 좋아하고, 디즈니 프린세스도 좋아하고. 근데 공주라고 부르는 건 싫은 거야?"


딸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음. 공주는 싫어. 공주는 너무 심각해."


"공주가 심각하다고? 왜? 뭐가 심각한데?"


딸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공주는 마녀로 변신하기도 하고, 엄마가 일찍 죽기도 하고, 목소리를 잃기도 하고, 오랫동안 혼자 있기도 하고 너무 심각해! 그래서 싫은 거야. 그냥 똥강아지라고 불러주는 게 좋아!"


아. 딸의 대답을 듣고 보니 쉬이 납득이 된다.

아이는 예쁘고 아름답지만 불행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공주보단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똥강아지로 불리는 게 훨씬 좋았던 거다.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인생을 배울 때가 있다. 


어쩌면 인생은,

화려한 드레스에 뾰족구두를 신고 반짝이는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은 공주보다,

자유로이 너른 땅을 뛰놀며 신이 날 때마다 세차게 꼬리를 흔들어대는 똥강아지가 훨씬 행복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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