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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10. 2021

무리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아서

혼자를 배우는 법

동네에서 사춘기 아이들을 지켜보면, 참 무리로 다니는 걸 좋아한다. 골목을 다 막고 걸어 다니기도 하고, 한 명이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무리가 우르르 같이 몰려나가기도 한다. 옆에 있는 친구들 행동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한다. 한 명이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떼창을 하고 있고, 한 친구가 흥이 나서 춤을 추면 모두가 흔들흔들 몸을 흐느적거린다. 의미 없는 장난이나 말투도 한두 명이 시작하면 모두가 어느새 비슷한 걸 하고 있다.

춤이나 노래처럼 좋은 것들을 같이 하면 흥이 두 배로 올라서 더 즐겁지만, 나쁜 행동과 말투를 모방하는 것을 볼 때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 무리 안에서 인기가 많고 영향력이 있는 친구가 무리 안의 다른 친구를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아이들이 따라 할 때, 상대방이 싫어할 만한 장난을 무리 속에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냥 모두가 잠시 생각이란 걸 멈추고, 저 무리 안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에 반사적으로만 행동하는 것만 같아 조금 슬퍼진다.


나도 무리로 다닐 때의 어떤 쾌감이 있다는 걸 안다. 나를 인정해주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느낌, 뭔가 더 신나고 흥분되고 세상이 내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전체가 주는 쾌락에만 고취되어 있다 보면, 진짜 내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생긴다. 자꾸 그 무리에서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만 신경 쓰다가,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거다. 나를 수단으로만 이용하려고 하는 친구들, 최소한 나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잠시 외로움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의 허기는 채울 수 없다.


한정된 공간과 경험 안에서 사는 청소년들이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참 운이 없을 때도 있다. 좋아하는 친구와는 다른 반이 되고, 같은 반에는 나와 맞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 같고, 의지할만한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참 좋겠는데 점점 외롭기만 하고… 그렇게 마음이 약해질 때 다가오는 무리의 매혹은 때론 블랙홀처럼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전부처럼 느껴졌던 무리 안에서의 무모함과 쾌락, 일체감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 부조리를 알아채고 의심의 곡괭이질을 하게 되면, 이제 친구 사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 눈을 가리고 있던 이상한 폭력은 더 이상 힘을 잃게 된다.


그런 시간이 왔을 때 맞게 되는 ‘홀로’는 어쩌면 새로운 방향 전환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친구들에게 휩쓸리고 연애하랴 나를 돌보지 못하고 끌려다녔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울 수 있다. 난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뭘 할 때 즐거운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가만히 멈춰 책을 보기도 하고, 새로운 운동도 해보고, 평소 먹고 싶던 요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거다. 친구들 무리에서 어울려 놀던 것만큼 자극적이진 않겠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경험을 하나씩 해보면서 아이들은 잊고 있었던 고유한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개성과 선호를 조금씩 찾아가게 된다.

어떤 친구와 놀 때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한지, 뭘 하고 있을 때 진짜 나다운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싫은지,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 멈춤의 시간이 아이들이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아주 사소하고 소박한 즐거움의 조각을 모아가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사실 딸이 처음에 대안학교에 다녔을 때, 많이 외로워했다. 일반학교처럼 많은 친구를 만날 수 없으니, 대안학교에 온 걸 후회하기도 했다. ‘너무 학교가 작아서 나와 맞는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고 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친구 만날 일이 줄어들고 시간이 남으니 앵두는 뭔가를 사부작사부작하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요가를 배우기도 했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골라온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집에서 다이어트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저렴한 오븐을 사서 빵을 만들기도 했다. (길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을 직접 만들어 먹고, 선택 수업으로 제빵을 배워서, 그런 것들에 더 관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꼭 미래의 직업이나 적성을 찾기 위해 뭔가를 배운 게 아니라, 그냥 지금의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던 활동들이 조금씩 삶에 균형을 만들어 주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지속되며 작은 성취감을 맛보게 해 주었고, 더 다양한 취향과 세계를 알 수 있게 도와줬다. 작은 문 하나를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조금 더 넓은 세계가 펼쳐졌고 더 큰 문이 보였다. 아이는 그전에 자신이 전부였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얼마나 좁은 세계였는지 저절로 체감하게 됐다.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한 시간을 건너가야 하지만, 아이들에겐 기본적으로 자기 회복력이 있다. 아이가 가장 약한 시기에 가족이 그래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돼 줄 수 있다면, 아이는 조금씩 내면의 힘을 키워서 결국에는 자신을 찾아가게 될 거다.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 사춘기는 내가 원하는 진짜 삶을 살기 위해 더 많이 헤매고 실패할 수 있는 실험실이 돼야 하지 않을까. 때론 혼자여도 괜찮다. 더 많은 경험과 실패를 품어줄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아이는 어느새 홀로 우뚝 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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