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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재희 Mar 26. 2023

봄비가 내리던 날

토요일이었지만 이른 아침 밖으로 나왔다. 세탁소에 맡겨 놓은 정장을 찾아야 했다. 몇 개월 간 세탁을 안 해 꽤 지저분했던 옷이 불과 삼일 만에 새것처럼 깨끗해져 있었다. 세탁소 옆 카페에서 한 손에 정장을 들고,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탁소에 맡긴 옷처럼, 사람도 간단히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사람도 이따금 생채기가 나고, 마음에 얼룩이 지고, 또 갖가지 방법으로 오염이 되는데, 그런 것들을 간단히 잊고 말끔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서비스. 이런 게 있다면 좋은 일일까? 가능하다면 그런 세탁소를 이용하기나 할까? 좀 아픈 종류에 해당해도 기억이라는 건 소중하니까 아마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용한 공상을 하기에 적당한 아침은 아니었으니. 이 십년지기쯤 되는 친구의 결혼식은 좀 더 기쁜 마음으로 참석해도 될 일이었다.  


열일곱 살 때의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옆자리에 앉은, 매일 장난과 욕설이나 주고받던 친구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려고 의도한 적이 있었을까. 조퇴를 하려고 어떤 꾀병을 내놓을지 고민하던 기억이나, 두발 검사에 걸려 함께 단골 미용실에 가 억지로 머리카락을 깎으면서 분개했던 일 같은 것들은 저장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꽤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친구의 결혼식 같은 날이 되면 자연스레 떠 오른다. 내가 보기에 아직도 열일곱 소년 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녀석이 결혼을 한다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오랜 친구의 결혼식에 가면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기분이 어떻게 이상하다는 것인가. 글을 쓰는 입장에서 지양해야 할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랜 친구의 결혼식은 여전히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는 듯하다.


친구의 결혼식에 가는 것은 기쁜 일이다. 새로운 시작점에 선 친구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게 왠지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싫을 리 없다.  그리고 결혼식에는 오랜 친구들이 여럿 모인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반가운 것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 오랜 관계를 유지한 친구들 중에서도 더러는 우리가 언제 각별한 사이였던 적이 있기나 했냐는 듯 쉽게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나이가 들수록 섭섭함이 많아진다는 것은 어떤 일들은 돌이킬 기회가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낸 다음날 오후에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활기찬 토요일과 차분한 일요일은 궁합이 좋다. 최근에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것들, 떠나거나 죽어버린 사람들에 관한 추억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이런 책들은 왠지 위로가 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과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기 때문이 아니다. 소설을 읽는 일에는 반드시 어떤 공감이 있고, 그 공감은 어지러운 마음에 질서를 들여다 놓기도 한다. 책 한 권이 대단한 효과가 있어서 세탁소에 맡겨졌던 옷처럼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요즈음 일요일을 보내기에는 가장 괜찮은 방법이다.


어느덧 깜깜해진 창밖을 보고는 상실의 시대를 덮고 저녁 식사를 사러 나갔다가 소나기를 맞았다. 날씨가 많이 따듯해져서 차갑지도 않은 비를 맞는 것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지독한 겨울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우산 없이 봄비를 맞는 것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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