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은 마음의 반영이다. 자꾸 어깨가 움츠러드는 가명씨는 마음도 자꾸 움추러든다. 아버지 앞에서 특히 그렇지만, 아버지처럼 자신에게 지시하고 요구하는 사람 앞에 가면 필요 이상으로 쭈굴쭈굴하게 구겨진다.
가명씨는 이미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몸도 마음도 쭈굴쭈굴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두려움에 맞서서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고 자기가 해야 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한다. 머리로는 다 안다. 몸이 문제다. 예전에 가명씨를 상담한 상담사는 '자기주장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기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라고' 해 주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상사가 부르면 잘못한 것도 없이 몸이 와들와들 떨린다. 자라가 껍데기에 머리를 쏙 집어넣는 것처럼 목이 없는 사람처럼 귀가 어깨가 달라붙는다.
이렇게 몸이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되는 것을 '부동성'의 상태에 들어갔다고 한다. 외부의 스트레스에 신경계가 반응하는 경우의 수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싸우기 상태
둘째, 도망가기 상태
셋째, 부동성 상태
마음을 연습할 때는 자신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일단 아는 것이 필요하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주로 사용하게 되는 신경계 반응 상태를 아는 데에도 몇 회기가 소요된다. 앞에 두 가지 상태는 교감신경계 활성화와 관련이 있고, 마지막 부동성 상태는 부교감신경계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익숙하게 일어난다는 말이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초절전 모드 상태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상태를 부동성 상태라고 한다. 가명씨가 부동성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상사 앞에서 자기의 의견을 말해보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 이외의 전략이 필요하다. 가명씨의 마음 연습에는 부동성 탈출 전략이 꼭 필요하다.
부동성(immobility)이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성질을 뜻한다. 우울증 환자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서 대표적으로 관찰된다. 부동성이 커지면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표정 근육에까지 영향을 미쳐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기 어려워진다.
가명씨에게 하루 일과가 어떠냐고 물었다. 팬데믹 기간에 실직한 후 어렵게 구한 직장을 일 개월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둔 후에는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지낸다고 한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영상을 번갈아 보다 보면 시간이 간다고 한다. 나는 가명씨에게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다.
처방: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집 밖으로 나가 산책로에서 삼십 분 이상 걷거나 뛰기
빨리 좋아져서 재취업을 하고 싶다는 가명씨는 일주일 후에 진행된 회기에서 무려 세 번이나 산책을 다녀왔다고 했다. 뛰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아서 걷기만 했다고 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걸으니 걸을만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기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큰 발전이었다.
"산책로에서 경험한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사람들의 시선이요. 젊은 사람이 이 시간에 직장에 안 가고 산책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짧은 대화에서 가명씨를 자꾸 긴장하게 만드는 외부의 자극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시선 외에도 무엇이 있었는지를 찾아보았다. 나무 그늘, 바람 소리,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등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말하면서 이 세상이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만 있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들도 함께 있다는 것을 몸을 통해서 느껴 보는 연습을 했다. 자꾸 얼어붙는 가명씨의 신경계가 긴장을 풀어낼 수 있는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산책로에서 보고 느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목과 어깨의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가명씨는 환하게 밝게 웃기 시작했다. 얼굴 근육의 긴장이 풀어진 것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멋지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을 만큼 멋진 미소였다. 우선은 이렇게 부동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