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병원 암 병동을 방문했다가 암 환우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 건강 관리법’ 강의를 한다는 원내 방송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병원을 막 떠나려던 참이었는데 발걸음을 돌려 강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강의장을 찾아가 보니 종양정신건강의학과에서 주최하는 강의였다. 종양정신건강의학 전문의라고 자신을 소개한 강사는 종양정신건강의학은 암을 앓고 있는 환자의 마음 건강을 고치는 학문이라고 하며, 암 환자와 가족들은 마음 건강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강사는 스트레스 관리의 필요성, 스트레스에 대한 자율신경계의 반응을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스트레스 강의라면 강의 도입부에서 뺄 수 없는 내용이다. 곧 본론이 시작될 것이다. 종양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제안하는 마음 건강 관리법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종양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만난 마음챙김
“혹시 마음챙김이란 말을 들어보신 분들이 계시나요?” 강사는 질문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운을 띄웠다. 약 20명의 참석자 중에서 나를 포함한 두 사람만이 손을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알아도 손을 잘 들지 않으니,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마음챙김을 들어봤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예상보다는 적은 수의 사람이 손을 들었다.
강사는 조용히 자신의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호흡을 해보자며 10분 정도의 명상을 체험하도록 안내했다. 명상을 통한 마음챙김, 종양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제안하는 마음건강 관리법이었다. ‘역시 마음챙김이구나’라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며칠 전에, 또 다른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마음챙김명상 세미나를 주최하여 참석했던 적이 있다. <실제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에서 적용하는 명상-마음챙김-긍정훈련>이라는 제목으로 10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효과성을 검증한 프로그램을 소개하지 않았던가. 미국의 저명한 의학자이자 과학자인 존 카밧진이 개발한 마음챙김 명상법이 우리나라 정신건강의학 현장에 스며드는 것을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현대의학이 인정하는 마음챙김, 마인드풀니스
‘마음챙김’은 현대 의학이 인정하는 마음건강 관리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학적 이론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검증 결과를 거친 치료법만을 인정하는 현대 의학에서 마음챙김은 존재 가치와 치료 효과성을 입증하고 있다. 몸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치료하는 몸 매개 마음 치료법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챙김은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를 번역한 말이다. 영어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마음(mind)이 꽉 참(full)을 뜻한다. 마음이 충분해지는 상태에 이르는 것, 마음챙김의 목표이다. 마음챙김은 현대인의 마음이 충분하지 않은 - 부족한 상태라는 것을 가정한다. 할 일도 많고 볼 것, 들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인의 관심은 주로 세상에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뒤처지지 않는지, 무엇을 해야 재미있고 즐거울까를 생각하다 보면,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특히, 마음은 직접 보이지도 않고 확인할 바가 없어서 오랫동안 챙기지 못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현대인은 여러 가지 마음의 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대표적인 현대인의 마음 병이다.
마인드풀니스 꽃밭에 피어 난 바디풀니스
존 카밧진의 마음챙김 기반의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은 다양한 외부 자극인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관리하지 못했던 현대인에게 명상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집중할 방법을 제안하였다. 명상은 이렇게 현대 의학이 인정하는 마음 관리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 MBSR이 개발된 이후, 마음챙김 기반의 다양한 마음관리 프로그램들이 명상의 형태로 개발되었다. 이렇게 마인드풀니스가 마음건강 영역에 꽃을 피우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개념으로 바디풀니스가 있다.
바디풀니스란 몸(body)이 가득함(full)을 뜻한다. 마인드풀니스를 마음챙김으로 번역하니, 바디풀니스는 몸챙김으로 번역하면 적당하다. 마인드풀니스와 바디풀니스가 모두 ‘매 순간의 무비판적 알아차림’을 추구한다. 그래서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쉽게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마인드풀니스와 바디풀니스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그래서 경계가 모호하다.
마인드풀니스와 바디풀니스
가장 뚜렷한 구분이라고 한다면, 바디풀니스는 마인드풀니스 이후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존 카밧진의 MBSR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이후, 마인드풀니스를 중심으로 생겨난 여러 가지 연구와 활동들 속에서 마음을 강조하는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공백을 채우게 된 흐름이자 운동이 바디풀니스라고 할 수 있다. 존 카밧진이 MBSR에서 ‘마인드풀니스’를 소개한 것이 1979년, 나로파 대학의 크리스틴 콜드웰이 ‘바디풀니스’ 개념을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 2014년이니 둘 사이에는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존재한다.
바디풀니스를 소개한 크리스틴 콜드웰은 바디풀니스를 ‘몸에는 열광하지만 근본적인 챙김의 대상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몸의 주체성을 마인드풀니스로 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며, 바디에 대한 온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바디풀니스 기반 소매틱 치료
바디풀니스는 자신에 대한 무비판적인 관심과 수용을 목표로 하는 마인드풀니스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마인드풀니스가 발전해 온 명상이라는 틀을 고수하지 않는다. 명상을 채택하지만 명상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이완시키는 명상의 목표보다 다양한 목표를 허용한다. 마인드풀니스가 스트레스 감소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정교한 솔루션으로 발전해 왔다면, 바디풀니스는 그보다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순수한 관심을 가지고, 내적 감각을 통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따라가면서 자연의 치유 리듬에 가까워지도록 돕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의 치유 리듬을 잃은 몸, 트라우마를 겪는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치료법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치료법을 소매틱 심리치료라고 한다.
바디풀니스를 주창한 크리스틴 콜드웰은 오는 7월 20일 개최되는 한국소매틱심리학회 창립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자로 소매틱 심리치료의 국제적 동향과 전망에 대해서 연설할 예정이다. 40여 년 전 소개된 존 카밧진의 MBSR의 마인드풀니스가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바디풀니스 기반의 소매틱 치료가 자연의 건강한 생명의 리듬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문이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인드풀니스 이후 피어난 바디풀니스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