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델리 찬드니촉
인도 사람들은 아침에 짜이를 마시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 하루에 보통 수십 잔을 마실 만큼 짜이 사랑이 대단하다. 인도의 길거리, 골목길 어디에서나 짜이를 파는 곳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하루에 세잔의 짜이를 마셨다. 아침 먹기 전에 한 잔, 그리고 점심 먹고 나서 한 잔, 마지막으로 저녁 먹고 나서 한 잔, 그렇게 세잔은 기본으로 마신 것 같다.
짜이 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찬드니촉에서 짜이를 팔던 소년을 만난 일이다. 찬드니촉은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같이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또 인근에 무굴제국시대의 붉은 성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코스처럼 찾아오는 곳이다.
이 날도 아침부터 짜이를 마시려고 몰려온 인도 사람들 틈에서 짜이를 만드는 소년을 만났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소년의 손은 상당히 능숙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딱 봐도 어린 나이인데 이렇게 큰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뭔가 비범해 보였다. 나도 그 모습을 담으려고 덩달아 바빠졌다. 조금 더 좋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순간 소년의 눈과 마주쳤다. 소년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주변 소음에 파묻힌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사진을 담는 것에만 몰두한 내 잘못일 것이다. 소년이 "No"라고 하는 소리를 나중에서야 알아들었으니 말이다. 순간 깜짝 놀라고 당혹스러웠다. 보통의 인도 사람들은 사진을 참 좋아해서 너도나도 담아달라고 했었는데 처음으로 싫다고 표현한 인도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내가 5루피(약 100원) 짜리 짜이를 파는 소년을 우습게 여긴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소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내가 비록 5루피짜리 짜이를 팔고 있지만, 내 자존심까지 팔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소년은 짜이를 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보통의 인도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했을 것이다. 나는 인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잘못된 착각이었나 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소년의 가슴에 상처를 입힌 것 같아 미안함이 내 가슴속에 계속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