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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로즈 Nov 21. 2023

짜이를 팔던 소년

올드 델리 찬드니촉

찬드니촉 2010


 인도 사람들은 아침에 짜이를 마시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 하루에 보통 수십 잔을 마실 만큼 짜이 사랑이 대단하다. 인도의 길거리, 골목길 어디에서나 짜이를 파는 곳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하루에 세잔의 짜이를 마셨다. 아침 먹기 전에 한 잔, 그리고 점심 먹고 나서 한 잔, 마지막으로 저녁 먹고 나서 한 잔, 그렇게 세잔은 기본으로 마신 것 같다.


 짜이 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찬드니촉에서 짜이를 팔던 소년을 만난 일이다. 찬드니촉은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같이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또 인근에 무굴제국시대의 붉은 성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코스처럼 찾아오는 곳이다.  


 이 날도 아침부터 짜이를 마시려고 몰려온 인도 사람들 틈에서 짜이를 만드는 소년을 만났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소년의 손은 상당히 능숙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딱 봐도 어린 나이인데 이렇게 큰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뭔가 비범해 보였다. 나도 그 모습을 담으려고 덩달아 바빠졌다. 조금 더 좋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순간 소년의 눈과 마주쳤다. 소년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주변 소음에 파묻힌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사진을 담는 것에만 몰두한 내 잘못일 것이다. 소년이 "No"라고 하는 소리를 나중에서야 알아들었으니 말이다. 순간 깜짝 놀라고 당혹스러웠다. 보통의 인도 사람들은 사진을 참 좋아해서 너도나도 담아달라고 했었는데 처음으로 싫다고 표현한 인도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내가 5루피(약 100원) 짜리 짜이를 파는 소년을 우습게 여긴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소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내가 비록 5루피짜리 짜이를 팔고 있지만, 내 자존심까지 팔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소년은 짜이를 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보통의 인도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했을 것이다. 나는 인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잘못된 착각이었나 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소년의 가슴에 상처를 입힌 것 같아 미안함이 내 가슴속에 계속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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