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 - 신림 - 제주 - 논현 - 압구정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연희 프로토콜
만약 내가 연희동 주민이라면 재택근무 날마다 여기로 출근할 것 같다. 테이블 구분 및 거리두기 확실하고, 좌석 의자 높낮이 적당하고, 테이블마다 개별 스탠드가 비치되어 있어 각자 조절할 수 있고, 커피까지 맛있으니 거의 뭐 최상의 작업 환경 아닐까. 그래서 카페라기보다는 집중 업무 공간과 미팅용 공용 공간이 같이 있는 공유 오피스 같다는 인상도 받았는데, 오히려 좋다.
따뜻한 계절이 되면 통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수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져 한층 더 싱그러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내년 봄쯤에 할 일 잔뜩 들고 다시 한번 가야 할 곳.
2. 연희 푸어링아웃
조용한 연희동 골목길에서 인센스 향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아지트 느낌의 카페다. 살짝 반지하층이기도 하고 짙은 우드 색을 많이 활용해서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톤 다운된 분위기다. 그 분위기 덕에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존재감도 한층 돋보이고, 음악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커피 바 옆에 비치된 종이에 신청곡을 써내면 틀어주기도 한단다.
콜드 브루에 오렌지 주스가 어우러진 시그니처 메뉴 노드 커피와 직접 만든 얼그레이 잼이 들어간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어느 카페를 가나 다 똑같은 인기 메뉴를 파는 요즘 시대에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색 있는 커피와 디저트가 있어 좋았다. 맛, 분위기, 음악 등 이곳만의 고유한 즐길거리가 있어 좋았다.
3. 연희 스웨이커피스테이션
여기는 혹시 런던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우선 초록색 문이 이 카페의 주요 포토 스팟인데, 12월 말에 방문하니 감각적인 크리스마스 장식과 어우러져 너무 예뻤다. 마차 모양의 테이블과 의자, 여행 가방 모양의 테이블 등 유럽 빈티지 풍의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내부 공간 자체는 크지 않지만 길쭉한 홀처럼 되어 있어 답답하지는 않았고, 주문한 음료를 직접 서빙해주시고 다 마신 잔도 두고 가면 돼서 번잡함도 없었다. 연희동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만큼 평일에도 피크 타임에는 약간의 웨이팅이 있는 점은 참고할 것.
4. 신림 폼앤노말
옛날 미국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간판과 인테리어 컨셉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1층 커피 바와 좌석 공간이 제대로 레트로 느낌 나서 예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을 못 찍었다. 주말 오후에 갔더니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디저트 메뉴도 쿠키 한 종류 제외하고 솔드아웃이라고 해서 아쉬웠는데, 딱 하나 남았다는 바닐라 피칸 쿠키가 꽤 맛있어서 놀랐다. 공간도 예쁘고 맛도 좋았지만 여유 있게 즐기지 못한 게 크게 아쉬웠다. 이왕이면 주말 방문은 피하는 게 좋겠다.
5. 제주 용담 고도정
앞마당과 뒷 정원이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란 집. 주택을 개조한 집이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얼마 전까지 오리탕집으로 운영되던 식당 건물을 식당 자녀들이 카페로 만든 거라고 한다. 연못에 붉은 잉어가 있는 게 이해되던. 그런 푸근하고 고즈넉한 바이브가 이 집의 매력인 것 같다. 관광객보다는 젊은 제주 로컬들이 많이 찾을 듯한 카페. 커피와 디저트 메뉴도 훌륭했다.
6. 제주 내도 내도음악상가
여기는 카페라기보다는 음악 감상 바(bar)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너무 좋았으니 함께 기록해둔다. 통유리창으로 바다를 내다보는 구조로 되어 있고, 음악이 크게 울려 퍼져 공간 전체를 꽉 메우는 듯한 압도감이 특징이다. 완전 서쪽은 아니라서 노을을 전면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니 분위기가 한층 더 살았다. 해질 무렵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흘러나올 때 괜히 눈물이 찔끔 날 뻔.
원래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하이볼이 괜히 달게 느껴져 홀짝홀짝 잘 넘어가더라. 물론 논알콜 메뉴와 안주거리도 준비되어 있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오후 5시 오픈 전에 미리 줄 서서 들어가야 한다는 점 참고.
7. 제주 구좌 꼬스뗀뇨
아마도 요즘 제주도에서 가장 핫한 대형 신상 카페. costeño는 스페인어로 해안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해안가에 있어 바다 뷰를 100%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구좌읍 바다 자체도 너무 예쁘지만, 야자수 나무와 코코넛 열매 등을 활용하여 이국적인 해안가 느낌을 낸 조경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인상적이다. 하와이에 가본 적은 없지만 하와이에 와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1층 본관, 2층 루프탑, 3층 루프탑에 별관까지, 수백 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초대형 카페라서 사람이 많아도 너무 붐비거나 정신없지 않았고, 각자의 커피와 바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더 유명해지기 전에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8. 제주 송당 안도르
입구에 '무끈모루'라는 유명한 포토 스팟이 있다. 여기서 웨딩 촬영도 많이 하고 이미 인스타에는 인생 사진 찍어야 하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고.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빽빽한 숲과 오름을 배경으로, 울창한 나무가 멋진 테두리를 이루는 광경에 반해 나처럼 인물 사진 욕심 없는 사람도 찍고 싶어 졌을 정도.
카페 내부는 우선 매우 깔끔하고, 충분히 거리두기가 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인테리어 곳곳에 이모티콘 심벌이 사용되어 적당한 귀여움도 갖췄고, 베이커리 카페로 빵 라인업도 짱짱하다. 제주도에서 비 오는 날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카페 아닐까.
9. 논현 (강남구청) 카페델꼬또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아주 작은 에스프레소바. 밖은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서울 풍경 그 자체인데 신기하게 이 안에서만큼은 커피 한잔 마시러 유럽에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세상과 단절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나서 좋았다. 바리스타님도 너무 친절하셔서 3500원 짜리 에스프레소 한 잔에 고급 서비스를 받고 온 기분.
진저나 애플 크럼블이 들어간 메뉴가 궁금했지만 도전 정신이 부족해 초코 파우더가 뿌려진 메뉴를 골랐고 맛있게 먹었다. 다른 평범한 에스프레소바에 비해 특이한 메뉴도 많고, 아메리카노 등 일반 커피 메뉴도 있고, 심지어 생맥주 등 주류 메뉴도 있으니 훨씬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을 것 같다.
10. 신사 (압구정로데오) 슈페리어루프앤드
땅콩이 무한리필되는 특이한 컨셉의 카페. 땅콩을 당신의 시시하고 하찮은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집어 까먹고 바닥에 버리라고 한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땅콩 껍질을 보니 미국 파이브 가이즈가 생각나기도 했다. 땅콩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괜히 몇 개 집어 먹었고 껍질을 그냥 버릴 때 묘하게 짜릿하기도 했다. 땅콩이 들어간 커피/디저트 메뉴도 있으니 땅콩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 것 같다.
디저트 메뉴로 군고구마를 파는 게 신기했는데, 고구마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랑 이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다. 서울에서 겨울 간식으로 최고의 조합을 즐길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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