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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pr 30. 2022

4월, 함께라서 더욱 찬란했던

2022년 4월의 월말 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4월에 읽은 책

•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 정세랑 외

- 20명의 여성 작가들이 나이와 국적, 시대를 뛰어넘어 본인만의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엮은 책. 만난 적도 교류도 없던 사람도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순간 어쩐지 좀 더 각별하고 애틋한 사이가 된 것만 같은, '언니'라는 호칭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래서 나도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재일코리안 언니에게 보내는 이랑의 편지, 10살로 돌아가 지금 40대의 자신에게 말하는 설정의 니키 리의 편지가 뭉클했고, 김혼비 작가의 축구 이야기는 역시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치트키였다.

"정확한 것이란 항상 상대적인 것이고, 그러나 정확한 것을 탐구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 자체가 정의롭다고 할가."
"오랫동안 나의 고통을 인정받지 못하다 보면 당사자조차 스스로의 고통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통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통은 이야기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사는 동안 목격자를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사람에게는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말해주어야 비로소 그 일이 있었다고 소화해낼 수 있는 이상한 마음이 있는 것 같거든요."


• <EBS 지식채널 × 1인용 인생 계획> - EBS 지식채널e

-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뭐든 혼자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 시대상을 잘 정리해놓은 책.


•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박민영

-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갖 혐오가 난무하며, 오히려 혐오 발언에 마이크를 쥐어주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걱정된다. 대부분 혐오는 정확한 팩트와 맥락은 모르면서 일부 삐뚤어진 의견과 편향된 언론에 선동되어 생산되고 있다. 그러니 모르면 공부하자. 나도 평소 관심 있던 이슈뿐만 아니라,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혐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혐오가 사회적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혐오는 약자에게 사회적 스트레스를 전가시킬 뿐이다. 혐오는 그 자체로 건설적인 논의를 봉쇄한다. 건설적인 논의는 서로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혐오 메커니즘은 평등한 관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태도의 문제도 있다. 혐오를 일삼는 사람은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혐오를 통해 일시적 스트레스 해소, 남을 놀리는 데 따른 일시적 쾌감과 재미를 추구할 뿐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이 더해지면 혐오가 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이영문


4월에 즐겨들은 K팝

• 아이브 싱글 'LOVE DIVE'

- '숨 참고 러브 다이브' 너무 완벽한 킬링 파트. '일레븐'에 이어 자기애라는 주제를 팀 정체성으로 갖고 가는 게 참신하고 그게 멤버들의 애티튜드랑도 잘 어울려서 좋다. 앞으로 신곡 나오면 무조건 당일에 바로 믿고 들어 보는 그룹으로 자리 잡은 듯.


• 온유 미니 2집 <DICE>

- 어쩜 14년이 지나도 유일무이한, 거부할 수 없는 확신의 내 취향 그이. 이번 앨범 발라드 안 하고 산뜻한 음악과 컨셉으로 나온 거 신의 한 수다. 최애곡은 'Sunshine'인데 눈 감고 들으면 가본 적도 없는 바하마 여행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특히 이수현과 듀엣으로 부른 영상은 극락 그 자체니 꼭 한번 들어보시길.


• 거북이 노래들

- 뜬금없이 옛날 거북이 노래에 꽂혔다. Come on, 사계, 빙고, 비행기, 나는, 왜 이래, 향기로운 추억 등. 신나는 멜로디에 둠칫거리다가도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멈칫하게 된다. 멋 부리지 않은 담백한 한국어 가사가 심장에 콕콕 박혀 아려온다. 새삼 터틀맨은 참 좋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거북이 같은 아티스트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미국 Peacock 드라마 <걸스 파이브 에바> (2022)

- '90년대 걸그룹의 역주행과 20년 만의 재결합'이라는 소재가 미국에서도 통한다는 게 새삼 신기. 4ever는 너무 짧으니 5eva, 2gether에 하나 더한 3gether가 더 좋다는 이 촌스러운 클리셰 어쩔 거야.. (좋다는 뜻) 적당한 B급 감성과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코미디물이다. 그 와중에 사라 바렐리스 언니는 연기도 잘해, 아니 코믹 연기하면서 노래가 쓸데없이 너무 고퀄이라 귀호강한다. 원년 멤버 애슐리가 죽었다는 설정이 다소 아쉬웠는데 시즌2에서 화려하게 부활(?)해주면 좋겠다. OT5!!!!!


•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2022)

- 어렸을 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써 본 적 있는 아시안 장녀라면, 심지어 그 시절 덕질이 유일한 해방구였다면, 뼛속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스토리. 초반에 엄마 캐릭터를 극혐했는데 보다 보니 어쩌면 진정 자유가 필요했던 건 메이보다 엄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참지 못하면 판다로 변신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마법이 메이 모녀에게는 그간 쌓였던 감정을 분출하고 해소할 수 있는 계기로 느껴졌다. 너무 빡세게 살지 말자, 참고만 살지 말자, 남에게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자. 내가 받아들인 이 영화의 3대 교훈.


•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에러> (2022)

- 예.. 결국 저도 봤고요. 너무 오글거릴 거 같아서 안 보려고 했는데 몇몇 대사 빼고는 대체로 볼만 했습니다. 아무쪼록 박서함 군의 빠른 제대와 시즌2 부탁드리겠습니다.


4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Mnet 예능 <퀸덤2> (2022)

- 프로그램 구성이 이전 시리즈와 너무 비슷하고, 참가팀들의 무대 컨셉이나 편곡 방향도 이전의 성공 방식을 답습해 점점 획일화되는 것 같은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매주 탈엠넷급 무대 선사하시는 효린sbn과 매주 본인만 모르는 씹덕포인트 생산하시는 태연sbn 계시기에 본방사수할 수밖에. 개인적으로는 이달소가 이번 계기로 꼭 잘 되는 걸 보고 싶어서 응원한다. 가슴이 웅장 해지는 국악 PTT 보고 가세요!


• 티빙 오리지널 예능 <서울체크인> (2022)

- 이효리가 서울 와서 친구들 만나고, 수다 떨고,  마시는  보는  웬만한 예능보다  배는  재미있다. 그는 예능감과 센스는 물론이고 기획력도 뛰어나다. 댄스가수 유랑단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 여성 연예대상 라인 (박나래),  DSP 리더들의 재회 (은지원) 같은 조합을 생각해내다니, 대중과 팬들의 니즈를 귀신같이  안다. 리얼리티를 꾸준히 계속하는데 여전히 새롭고  화제 되는  역시 타고난 연예인이다 싶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효리는 신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셀럽은 회의중> (2022)

- 올해 들어 가장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배꼽 잡고 웃은 1시간. 여성 코미디언들에게 이렇게 판 깔아주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 유튜브 사내뷰공업 (2022)

- 이 시대의 진정한 명예 인류학자. 아리 PD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학교 빌런 시리즈 보면 진짜 내 학창 시절에 저런 애들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알바생 시리즈 보면 오늘 내가 갔던 가게에 저분들 계셨던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소름 돋게 실감 날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 캐릭터별로 운영하는 인스타도 현실 고증 쩔고.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할지 매우 기대되는 채널.


•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여둘톡)> (2022)

- 좋아하는 걸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설렘이 묻어나고, 그걸 왜 좋아하는지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말솜씨에는 지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그걸 다 갖춘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팟캐스트. 불편한 구석 없이 산뜻하게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가 하나 더 생겨 기쁘다.


4월에 있었던 일들

- 부모님이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셔서 나와 동생도 잠깐 내려가 3박 4일 가족 여행을 했다. 제주에는 스무 번도 넘게 가봤지만, 엄마 아빠를 따라가면 혼자 또는 친구들과는 가지 않는 곳들을 가게 되는 점이 좋다. 특히 한라산에 올랐을 때 마주한 엄청난 광경을 잊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제주도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왜 몇 시간씩 사서 고생해서 등산이라는 걸 하는지 처음으로 이해가 갔다. 제주에서 매일 여행하듯 사는 두 분이 참 좋아 보였다. 엄마 아빠에게도 한 번쯤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족과 잠시 떨어져 독립 체험판을 경험해본 건 나에게도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혼자 지내는 동안 일상에서 받는 사소하고 성가신 스트레스가 아예 없어졌다. 내가 온전히 내 삶을 책임지며 살아간다는 그 감각이 참 좋았고, 역시 나는 혼자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혼자 지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운동이었다. 크로스핏 시작하고부터 내 삶에서 운동이 너무 중요해져서 운동에 방해되는 생활 패턴들은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크로스핏 박스를 통해 다른 운동을 체험해 볼 기회도 생겼는데, 이번 달에는 번지피지오라는 신기한 걸 해봤다. 앞으로 더 나이 들기 전에 최대한 다양한 운동을 있는 대로 다 경험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을 하나 꼽자면 풋살 리그 대회날이다. 풋살 하는 여성 수백 명이 모여 운동장을 가득 메운 것만 봐도 가슴이 벅찼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기쁨, 아쉬움 등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할 때 짜릿한 쾌감과 해방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비록 나는 한 골도 못 넣었고 팀도 순위권에 못 들었지만, 성적 같은 건 하나도 안 중요했다. 우리 팀이랑 좀 더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고, 트로피 대신 추억이라도 남기자며 단체 사진 수백 장 찍고, 같이 웃고 떠드는 그냥 그런 순간들이 아름다웠다. 꼭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다.


-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확진자 감소 추세로 접어들 무렵 어이없게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운동 말고는 다른 사람 접촉한 일이 없었는데 어디서 옮은 건지 너무 억울하다. 하필 부모님이 집에 오신 후에 걸려서 격리 기간 내내 방 안에만 갇혀있어야 되는 신세라 답답해 미칠 것 같다. 그래도 좋게 생각해보자. 그동안 너무 빡세게 살았으니까 이 참에 좀 게을러도 보고, 운동도 하지 말고, 좀 쉬어 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4월의 베스트 모먼트 (평소보다 많음 주의)

1. 양재천-장지천 틈새 벚꽃 구경

2. 가족들과 함께 한 한라산 등반

3. 친구들이 우리 동네 놀러 와서 맛있는 거 먹고 같이 산책했을 때

4. 친구랑 걷다가 우연히 너무 예쁜 길을 발견하고, 마음에 드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보낸 시간

5. 풋살 리그 대회날의 모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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