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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Aug 09. 2021

가려움

긁지 않기.

아주 잠시 동안 방심한 대가가 크다. 모기들에게 뷔페 대접을 해주고 만 것이다.


여름철 소나기가 여러 차례 지나가고 습한 기운이 퍼지면서 곳곳에 곰팡이가 퍼지고 있다. 자전거도 자주 타고 다녔지만 기름칠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체인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녹이 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다. 급하게 윤활유를 칠하고 녹을 닦아내니 진득한 갈색 오물이 사방으로 번진다. 무엇이든 미리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뒷북을 치면 일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진다. 이 더운 여름에도 나의 든든한 발이 되어주는 자전거에 너무 무신경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기름칠을 하고 닦아내다 보니 몸이 갑작스레 근질거린다.


모기다. 웽웽거리는 특유의 소리도 없이 주변을 날아다니는 기척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나도 모르게 동네잔치가 벌어졌었나 보다. 아주 맛집이 되어버린 것인지 갑자기 온몸이 동시 다발적으로 근질거린다. 급히 주변을 살펴봐도 모기가 날아다니는 낌새는 없다. 진짜 귀신 곡할 노릇으로 약삭빠르고 치밀한 놈 또는 놈들에게 당한 모양이다. 몸이 사방으로 근질거리니 어쩔 수 없이 일을 마무리하고 하고 급하게 퇴각한다. 몸이 가려움 때문에 사방으로 꼬인다.


돌아와 손만 씻고 선풍기를 튼 상태로 잠시 앉아 있으니 모기에 물린 자국들이 서서히 표가 나기 시작한다. 큼직큼직하게 부풀어 오른 물린 자국들은 요즘 모기가 유난히 독하다는 증표일 것이다. 하나, 둘, 셋… 일곱. 그 짧은 시간에 참 많이도 물렸다. 올여름 들어서 가장 거창한 헌혈을 모기에게 해버린 꼴이다. 갑자기 몸속까지 가려움이 퍼지는 듯 괴롭다. 긁으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지만 아주 잠시의 시간 동안 퍼지는 이 가려움이 사람을 참 미치게 만든다. 예전에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을 사둔 기억이 있어 급하게 찾아보지만 역시 무언가를 급하게 찾으면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앉아서 오늘의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얼마 동안에 이제 가려움은 많이 가라앉았다. 긁지 않고 미칠 것 같던 상황이 지나간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데 모기에 물린 것 같은 가려움이 요즘엔 나의 내면에도 있는 것 같다. 뭔가 근질거리고 미칠 것 같은 부분이 내 안에 있는데 그걸 콕 집어내는 것이 어렵다. 그냥 얼마간 참아내면 내면의 근질거리는 가려움도 결국에는 멈출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내면의 근지러움은 그냥 참아내면 알아서 낫게 되는 병은 아닌 것 같다. 감정들이 서로 복잡하게 엉켜있어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내면의 근지러움은 내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무의식의 신호이니 말이다.


요즘 내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은 시간과 삶의 우선순위이다. 시간은 정말 잘 써야 하는 소중한 자원임에도 나의 시간은 나에게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삶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고 그 순위에 맞게 가장 중요한 것에 소중한 시간을 먼저 써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활용법임에도 나는 그렇게 시간을 사용하지 못한다. 요즘의 나를 보면서 그런 걸 더욱 절감하고 있다. 나는 시간을 그냥 삶의 관성에 따라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시간에 쫓기고 무언가를 꽤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하면서도 만족감은 항상 부족하다. 시간을 쓰는 방법을 잘못 배웠고 그 잘못된 활용법에 너무 깊이 중독되어 있다.


자극을 쫓아다니면 안 된다. 가려움을 긁어서 해소하려고 하면 점점 더 가려워지는 것처럼 이것저것 쓸데없는 자극을 쫓아서 일상을 꾸려나가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멈추는 것이 쉽지 않다. 멈추면 바로 ‘불안’이 엄습한다. 뭔가 괜히 불안해서 아무거나 찾고, 읽고, 골몰하게 되지만 방향성이 설정되지 않은 활동은 아주 잠시의 안도감을 선사할 뿐 결국에는 더 큰 불안을 야기시킨다. 항상 ‘불안’을 다루는 것은 어렵다. 나의 불안은 너무 크고 너무 유연해서 자기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해도 나는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삶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인식하고 가장 소중한 것에 시간을 능동적으로 소비하자. 글로 쓰면 참 간단한 문제인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을 다루는 것은 앞으로도 짧은 시간 안에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소중한 삶의 우선순위를 깊게 생각하는 것도 절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나는 그것을 깊게 생각하려 할 때마다 그 생각 자체에서 자꾸 도망치려는 나의 무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건 아마 지난날의 내가 자꾸 세상과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를 바꾸려고 애쓰면서 내적으로 정말 원하는 것들은 항상 무시하며 지내온 나의 삶의 궤적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하게 알지만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는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것에서 파생된 여러 근질거리는 갈등이 내 속에서 계속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지러운 서랍 속 물건을 정리하듯 밖으로 쏟아내어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의 정리법에 그런 쉬운 요령은 없다. 글을 쓰면서 자꾸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 정성을 들이는 수밖에 현재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듯하다. 글을 쓰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쉴 수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쓴다. 하지만 이 글쓰기가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활동이며 그나마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활동이기 때문에 여기에 시간을 쓰는 것은 제대로 시간을 쓰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 나이를 먹고 아직 삶의 우선순위가 제대로 정립이 안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얼굴이 빨개질 만큼 부끄럽지만 그래서 더욱 드러내 놓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나는 깊이 생각하고 제대로 연습해야 한다. 부끄럽다고 걷는 법도 배우지 않고 갑자기 뛸 수는 없다.


이제 모기에 물려서 몸이 근지러운 것은 괜찮아졌다. 그런데 마음이 근질근질 가려운 것은 언제쯤 괜찮아질까? 아마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내가 제대로 된 삶의 방향성을 설정하여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을 때 그때에야 이 속이 부글거리는 것이 좀 잠잠해질 테지… 그냥 지금은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 이 근질거리는 맘속의 가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변화를 모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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