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의 수능 독과점, 상상을 초월한다
<수학평가 정상화 컨퍼런스>에서 가장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수학 문제집 '포카칩'의 저자 문호진 선생이었다. 아래 내용은 그 토론문 ‘킬러문항의 탄생과 대치동의 수능 독과점화’요약을 중심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21만 자연계열 수험생의 상위권 대다수는 의대를 지망한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상위권 6개 대학 정원이 2006년 383명이었던데 반해 2022의 선발인원은 161명에 불과하다. 최상위권의 경쟁이 거의 3배가 된 셈이다. 결국 이들 성적을 변별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는 무의미해도 행정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이들 사이에 너무 많은 동점자가 발생하면 합격자 판별이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몇 백 명을 변별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이 킬러문항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 교사 모두 킬러문항의 존재이유에 동의하고 오늘도 이를 훈련시키고 있다.
문호진 선생은 이 킬러문항이 대치동 학원의 현장강의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수학에 흥미가 있고, 수능을 치른 지 오래되지 않은 대학생들이 수능에 가까운 문항을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교육 업계는 현장 실시 모의고사를 비즈니스로 발전시켰다. 수학 30번 수준 문제의 경우 한 문제당 50~100만원을 주고 사들이는데, 2019년 한 해 동안 62억9천만원을 출제자들에게 지불했다니, 수능을 거의 재현하다시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수능일까지 거의 반복해서 풀면서 시간과 정신력을 관리할 수도 있게 됐다.
과거 학생들, 또는 대치동 지역 외의 학생들이 일타강사의 인강을 찾아듣고 공부하던 방식과 달리 대치동 학생들은 수능에 최대한 근접한 모의고사로 대비해주는 커리큘럼의 혜택을 누림에 따라 교육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강남의 학원들은 상위권 대학을 매점매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학원의 최상위권 의대 정시 합격율은 25%, 40%에 달한다.
본인 스스로 킬러문항의 제작자였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현재 의사가 된 토론자가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우리나라 공교육의 수학평가를 혁신하자고 모인 컨퍼런스에까지 나온 이유 말이다. 지역과 경제적 배경의 특혜를 입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 격차가 너무나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평범한 학생들에게 이 상황은 너무나 불리하다. 문제는 아무도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만 하면 정시 확대 찬성 비율이 80%를 넘는다. 강남의 학원가에서 고도의 훈련을 거쳐서 수능 고득점자, 의대 합격자가 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이를 바꾸지 않으면 이미 문제은행이 바닥난 수능을 기형적으로 훈련한 고득점자들이 의사 또는 우리사회의 엘리트로 배출될 것이다.
며칠 전, 강민정의원실이 서울대에서 받은 ‘2020~2022학년도 서울대 입학생 수시·정시·시도별 합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입학생 3명 중 2명이 수도권 출신이다. 이 자료가 보여주는 현실은 문호진 선생님의 문제제기기와 궤를 같이 한다. 날이 갈수록 불평등으로 치닫고 있는 교육제도, 우리는 계속 이렇게 손을 놓고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