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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석 Nov 13. 2018

술 못 마셔도 행복하게

독일 드레스덴에서 혼술 홀짝홀짝


   독일 드레스덴에서의 일이다. 난 하필 일요일에 드레스덴에 갔다. 독일 몇 달 살아 놓고도 일요일엔 독일을 여행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별 생각도 없이 어겨버린 것이다. 그렇게 큰 도시도 아닌데 일요일에 가니 얼마나 허전했겠나. 몇몇 식당 말고는 문 연 가개가 거의 없었다. 썰렁썰렁하게 건축물 몇 개 구경한 게 전부였다. 일요일 여행을 피하라는 건 이렇게 죄다 휴무이기 때문에 좀 심심할 수 있어서다. 뭐 진짜 그러면 안된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내게 드레스덴은 저 햄버거로 기억된다. 중심부 쪽에 있는 햄버거 전문점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독일에서 먹은 버거 중 최고였다! 아니 진짜 인생 버거. 그리고 주문을 아이패드로 받는다. 독일 답지 않은 첨단 주문방식에 놀랐었다. 저기 갔을 때도 난 혼자였다. 혼자 기분 좀 내고 베를린에서 쌓인 피로도 풀 겸 술 한 잔을 시키기로 맘먹었다. 나같이 술 거의 못 하는 사람이 스스로 술을 시킨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개다가 난 돈이 없었기 때문에 술을 시키면 버거와 찰떡궁합인 콜라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독일 식당들은 기본 물도 안 준다. 술을 시키면 버거를 먹는 동안 내가 마실 수 있는 액체는 술뿐인 거다! 거의 어쩌면 자살행위. 그런데 저 날은 아무래도 기분을 내고 싶었다. 

    그런데 또 저 이름도 기억 안나는 술맛이 기가 막혔다. 칵테일 종류였던 것 같기도 하고 홈메이드 어쩌고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난 반쯤 마시고 벌써 취했었다. 그래 봐야 도수가 12도쯤 됐을까. 어찌 보면 참 경제적이지 않는가. 몇 모금 마시고도 몇 잔이나 마신 양 즐거워버리는 내 간땡이란. 술을 마시기 전까지만 해도 난 돈 없는 빈곤한 이 여행에 살짝 우울했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저 액체가 몸에 들어오니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혼술 했던 거 치고는 정말 기분 최고였다. 막 세상이 여유로워 보이고. 그래서 후식으로 치즈케이크를 시켰다. 보통 한 끼에 절대 15유로 이상 먹지 않았는데 20유로어치를 먹어버렸다. 내겐 너무 사치였지만 기분이 좋아서 그냥 시켰다! 아! 그리고 그 케이크도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 

   20유로가 카드로 긁힐 땐 내 맘이 살짝 긁히는 듯했지만 뭐 어때. 호스텔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드레스덴에 오기 전 이틀간 베를린에서 7만보를 걸었었다. 터질 것 같던 종아리도 잠시 멀쩡해졌다. 일요일이라 적막할 지경이었던 드레스덴 거리를 혼자 실실대며 걸었다. 드문드문 문을 연 펍에서 월드컵 중계 소리가 들리니 더 흥겨웠다. 덴마크의 경기였던가. 허허허 아무나 이겨라 이러면서 나폴나폴 걸었다. 기분이 좋았다. 지금 회상해봐도 그 때는 기분 좋았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이 정도면 드레스덴 여행 제대로 한 거 아닐까. ahahahaha

* 지금 찾아보니 Burgerlich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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