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9.
메마른 여름을 나는 동안 메르스는 잠잠해졌다. 사스 때는 사향고양이가 소환되더니, 메르스 때는 낙타가 입방아에 올랐다. 중동에 다녀온 적이 없는, 서울대공원의 낙타 두 마리가 내실로 격리되었다 풀려났는 소식이 들린다.
뉴스에서 번호로 불리던 의심 환자들이 하나둘 음성 판정을 받고 일상에 복귀했다. 그즈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딱히 전할 말이 없었다. 국민연금을 내지 않으니 화를 내기도 뭐했다.
빨간색 폭스바겐 골프 한 대가 꿀렁 하며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열린 창으로 선글라스를 쓴 운전자가 보였다. 삼십대 여자가 입에 물고 있던 끈으로 긴 머리를 질끈 묶었다.
디젤 게이트로 폭스바겐의 차주들은 어깨가 쳐졌다. 한데 이 여자는 달랐다. 크림색 오프숄더 티셔츠 위로 드러난 어깨가 필라테스 강사처럼 반듯했다.
북풍을 타고 폭스바겐의 가솔린 향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나는 자하문로의 6차선 대로를 천천히 가로질러 스타벅스 경복궁역점으로 들었다.
한 손에 문고본 책을 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책은 가벼울수록 좋았다. 미니 클러치백 크기면 딱이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보다는 《필경사 바틀비》가 나았다. 박태원의 《천변풍경》보다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나았다. 나는 단거리 주자로 트랙에 서서 작은 책을 펼쳤다.
시인 이상이 20년을 살았다는 백부의 집이 여기서 가까웠다. 큰길 건너 통인동 골목에 있는 ‘이상의 집’을 돌아보고 온 길이었다. 내 손에 이상의 책이 들려 있는 것이 하나 이상하지가 않았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은 이런 연애시도 곧잘 썼다. 본심으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어했지만, 큰길에 벽돌 하나 내려놓듯 슬쩍 <이런 時>를 남겼다. 다만, 내 손에 든 책에는 시가 없었다. 수필과 소설만 빼곡했다.
커피를 받아두고 책을 펴 든다. <날개>와 <권태>와 <동해>는 건너뛰고 <실화[失花]>를 또 본다. 사후에 유고의 형태로 잡지에 소개된 글이다. 소설도 수필도 일기만 같아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이 짧은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이상은 새벽 기차를 타고 훌쩍 도쿄로 떠나기 전, 친구가 좋아하는 배를 사 들고 김유정을 찾았다.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김유정이 이상의 안부를 물었다.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상이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나이는 김유정이 두 살 위지만, 서로를 ‘형’이라 부르며 깍듯이 존대했다. 둘은 구인회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어려운 형편에 폐결핵을 앓으며 브로맨스를 나누었다.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마침 쉬운 경우더군요.”
이상이 말했다. 폐결핵 요양 차 떠난 배천온천에서 만나 동거를 시작한 기생[금홍]에게 버림을 받았고, 넉 달 전에 결혼한 부인[변동림]에게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유정의 처지는 오래 비참했다. 명월관 기생이었던 박녹주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로 끝없이 매달렸지만, 여인은 매몰찬 거절로 냉대했다.
유정과 이상은 동반 자살을 모의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상은 도쿄로 훌쩍 떠나 간다의 하숙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거나, 진보초나 신주쿠의 거리를 이방인으로 전전했다. 그러다 불령선인으로 잡혀 쥐꼬리로 남은 건강을 해쳤다.
두 친구는 그해[1937년]에 같은 병으로 죽었다. 끝내 미코박테리움이 이겼다. 결핵은 무서운 병이었다. 프란츠 카프카도, 조지 오웰도 이 병으로 갔다.
재산도 비밀도 하나 없는, 가난한 시인의 이야기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나는 단거리 주자가 되어 결승선을 허리로 끊는다. 정작 두려운 일은 그리 무서운 병을 그리도 무서워할 때 일어난다.
강배전 커피로 목을 축이고 마지막 책장을 넘긴다. 쌉쌀한 커피의 뒷맛이 유난히 달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은, 가상한 하루가 또 이렇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