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7.
망고하우스, 스플래시 오키나와, 블루씰 같은 이국적인 간판을 지나, 스타벅스로 든다. 귀국을 하루 앞두고 오키나와 고쿠사이도리[국제거리]를 찾은 길이다.
아이스 라테를 앞에 두고 한쪽 벽에 걸린 시애틀 스타벅스 1호점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기시감이 든다. 여기가 런던 같고, 서울 같다.
카페 안쪽엔 혼자인 사람이 많다. 빨대가 꽂힌 음료를 테이블에 하나씩 두고 저마다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나는 스타벅스라는 공통분모 위에 올라앉은 분자가 되어, 그 익숙한 열중에 동참한다.
여행 첫날, 렌터카를 몰고 키세비치로 가는 길에 요미탄 도자기 마을에 들렀더랬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대고 뙤약볕에 달아오른 길을 걸어 오름가마와 공방을 돌았다. 오키나와의 도공들이 빚은 도자기는 우리네 분청사기를 꼭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규슈의 사쓰마번에서 넘어온 조선의 도공들이 이 땅에 그 기법을 전했다.
분청사기에는 긁고 칠하고 찍고 그리는 자유분방함이 있다. 철화기법으로 그린 고려시대의 대담한 물고기 무늬를 이곳 오키나와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도 감상용이 아닌 생활도자기로.
그 기억을 안고 쓰보야 도자기 거리를 찾아 나선다. 야자수 그늘을 지나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 아케이드가 있는 시장통으로 든다. 해산물을 파는 마시키 공설시장 쪽으로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열대 과일과 전통 공예품과 반팔 티셔츠를 파는 숍을 지나 중앙 통로를 가로지른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큰길을 건너 동쪽으로 더 갔어야 한다는 건 지나고 안 일이다. 길을 잘못 들어도 조바심이 일지 않는다. 몸이 적도에 가까울수록 구름은 낮게 흐르고, 마음은 다음을 기약하는 일에 너그럽다.
미로 같은 길은 헤이와도리[평화거리]로 이어진다. 그 길 안쪽에는 문을 닫은 상점이 많다. 액세서리가 진열된 가판은 자판기와 다를 게 없다. 찾는 이 없는 매대를 버려두고 두 노인은 장기에 푹 빠져 있다.
승부에 열중하느라 시장통에서 길을 잃은 이방인은 안중에도 없다. 야구모자를 쓴 어르신이 앞머리가 훤한 백발의 어르신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 백발의 노인이 노란 부채를 겨드랑이에 꽂고 장기판 쪽으로 허리를 숙인다.
그 뒤에 서서 판세를 읽고 싶어진다. 노인이 놓친 수가 훈수꾼 눈에는 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안고서.
하나가사 식당 앞에 이르자 슬그머니 활기가 돈다. 잠시 앉아서 쉴 요량으로 킨조[KinJo]라는 간판을 단 노천카페에서 고야주스를 주문한다. 청자의 푸른빛이 도는 주스를 받아놓고 주위를 둘러본다. 평화[平和]니 국제[國際]니 하는 전쟁의 잔상은 시장의 활기와 어수선함에 묻혀 사라지고 없다.
헤이와도리의 아케이드를 빠져나가자 미쓰코시 백화점이 있는 고쿠사이도리가 나온다. 백화점 왼쪽에 스타벅스가 있다. 그러니까 길쭉하게 늘어진 시장 골목을 빙 돌아 원점에 이른 셈이다.
시선을 머리 두 개쯤 높이 두면 신통한 수가 눈에 들까? 얽히고설킨 미로의 설계를 불현듯 깨칠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스타벅스에서 출발한 동선을 선으로 잇자 아래로 축 늘어진 타원이 그려진다. 딴에는 그 모양이 목이 긴 술병 같다.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 담겨 있는, 분청사기 술병.
고흐는 스물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림에 입문했다.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란 화가의 내면을 지배한 색감은 황토와 고동이었다. 그는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화폭에 담으며 습작을 이어갔고, 동생 테오가 생활하는 파리로 들어가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밝은 물감을 쓰기 시작했다.
파리의 로댕미술관에서 본 <탕기 영감의 초상>은 2년 전에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흐는 일본의 채색 목판화[우키요에]를 모작하면서 그 단순한 형태와 대담한 구성을 받아들였다.
1888년에 그린 <씨 뿌리는 사람>에는 고흐의 이런 시도가 잘 담겨 있었다. 나는 아를의 누런 태양을 배경으로 밀레의 농부와 안도 히로시게의 나무가 어둡게 빛나는, 습작 같은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몸으로 그린 도자기에는 고흐의 이 그림이 담겼으면 했다. 청자의 화려함이나 백자의 담백함과는 거리가 먼, 분청사기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물때의 얼룩처럼 묻어나는 여정의 기록.
몸이 적도에 가까울수록 마음은 태연해서 무심할 일들이 늘어만 간다. 쓰보야 도자기 거리를 찾아가는 일도 그러하다.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이 도자기보다 도자기를 감싼 목판화 포장지에 열광했듯, 내 눈은 이미 다른 것을 향해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