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4.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란 말이 유행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커피의 어떤 특별한 맛과 향을 수치화해서 기준을 정한 건 무역업자들이다. 그래야 값을 매겨 사고팔 수 있으니까.
세상에는 많고 많은 협회가 있고,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SCAA]도 그중 한곳이었다. 이 협회에 소속된 심사관들이 향미 테스트를 해서, 그 점수가 80점을 넘으면 스페셜티 커피에 들었다.
커피의 특별함을 구분 짓는 맛과 향은 산지에서 온다. 말린 자두의 단맛, 패션프루츠의 신맛, 다크초콜릿의 쌉쌀한 단맛, 레몬그라스나 편백나무의 향…. 사람들은 그 향미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커피 취향을 알아간다.
“떼루아가 커피 맛을 결정하죠.”
커피 농사꾼인 H가 말했다.
“떼루아요?”
“와인을 논할 때 흔히 하는 말이죠. 포도나무의 생육 조건이 포도나 와인 맛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고도, 연평균 기온, 일교차, 토양 같은. 커피콩도 마찬가지예요. 에티오피아 커피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죠.”
H는 에피오피아 이르가체페의 2200미터 고지대 마을에서 커피 농사를 지었다. 2011년도만 해도 이런 사람이 없었다. 커피 체리는 3년에서 5년마다 수확하기 때문에 연간 생산량은 60킬로그램짜리 서른 가마 정도였다.
농사는 커피 공부에 도움이 됐고, 벌이가 되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는 30년 된 코롤라를 몰고 에티오피아 곳곳을 돌며 맛좋은 체리를 찾아다녔다. 코롤라가 길에서 퍼지면 주민들이 당나귀를 몰고 와서 차를 끌었다.
“이르가체페에도 여러 지역이 있어요. 같은 지역이라도 흙이 다르면 커피 맛이 다르죠. 대표적인 예가 하포사[Hafursa]예요. 흙에 철과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흔히 마시는 이르가체페와 달리 산미도 적당하고 바디감도 안정돼 있죠. 미칠레[Michille] 쪽은 또 달라요. 2500미터 고지대라 산미가 뛰어나고 뒷맛도 깔끔하죠.”
H는 이르가체페 곳곳을 돌며 커피를 감별했다. 그렇게 해서 뽑은 최고의 커피가 아리차[Aricha], 하포사, 꽁가[Konga], 꼬께[Koke] 커피였다. 그는 농사꾼 이전에 장사꾼이었다. 영업을 잘했다.
문득 이 남자의 과거가 궁금했다. H는 무역회사에 들어가 골프채를 팔았다. 퇴사를 하고 의기양양하게 창업에 나섰다 쫄딱 망했다. 고물상을 뒤지며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다. 그러다 커피에 빠져 배낭을 메고 무작정 두바이로 날아갔다.
예멘의 모카항에서 소말리아 국적의 배를 얻어 타고 낙타와 양들 사이에 끼여 홍해를 건넜다. 아프리카, 유럽, 남미, 미국…. 그는 커피 공부를 위해 대륙을 떠돌았고, 콜롬비아에선 반군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방랑과 모험의 기질이 커피를 만나 깊이를 얻었다. 그는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 정착했다. 커피 감별사 자격증도 땄다.
“콩을 볶아서 마셔보기 전에는 몰라요. 아프리카 지역마다 커피 등급 결정 방식이 달라요. 케냐와 탄자니아는 스크린 사이즈[생두 크기]로 등급을 정하죠. 케냐 AA가 AB보다 크지만 커핑을 해보면 AB가 나을 때도 많거든요. 현지에선 값도 비슷하고. 같은 AA라도 산지의 고도가 높을수록 맛이 좋죠.”
고도는 커피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밤낮의 일교차가 큰 고산 지대 커피는 산미가 좋고 밀도가 조밀해 높은 등급을 받는다. 하지만 여기도 예외가 있다.
“저지대 커피로 유명한 지역이 두 곳이 있어요. 코나 커피로 유명한 하와이의 코나섬이랑, 에티오피아 하라르 지역의 서쪽이 여기에 들죠. 코나섬은 구름이 끼는 날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늘 재배가 돼요. 해류와 해풍의 영향이라 할 수 있죠. 커피는 산지마다 특성이 있어요. 그 미묘함이 커피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죠.”
파나마의 스페셜티 커피가 화제에 오른 건 그때다. 게이샤는 레몬의 산뜻한 신맛과 홍차를 연상시키는 뒷맛으로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일본의 게이샤와 발음이 같을 뿐, 원래 에티오피아의 지명이에요. 1931년에 에티오피아 아바야의 게샤[Gesha]라는 지역에서 발견된 품종인데, 이 아라비카 종이 케냐를 거쳐 파나마로 들어갔죠. ‘게샤’니 ‘게챠’니 하면서 헷갈리는 발음을 영어식으로 표기하면서 게이샤가 됐죠. 아바야에서 난 원두를 볶아서 마셔봤는데 게이샤랑 맛이 똑같더군요.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네요.”
그러니까 교토의 기온거리에서 만날 법한, 분 냄새 나는 여인을 꼭 닮은 이국적인 콩도 아프리카에서 왔다. 파나마와 코스타리카의 땅과 기후에 적응하면서 아프리카의 콩은 더 크고 길쭉해졌다.
인류의 기원도 그런 게 아닐까?
통돌이 로스터 앞에 쪼그려 앉아 파나마 게이샤를 굽는다. 파밧, 하며 콩이 튄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기를 굽던 원시의 기억을 휴대용 부스터가 일깨운다. 연장이 달라졌을 뿐, 불장난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