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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장 Oct 16. 2019

베르나르 베르베르 씨, 여기 좀 봐주실래요

2010. 09.

프리랜서 기자로 이 회사, 저 회사 일을 받아서 하다 잡지사에 취업이란 걸 했다. 회사는 신사동 언덕에 있었다. 

일이 몸에 익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마감의 고비를 한 번 넘자 출퇴근의 일상에 바이오리듬이 생겼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기획 회의를 하고, 취재 스케줄을 잡고, 점심때가 되면 뭘 먹을지 궁리하고, 마감이 다가오면 야근을 했다. 

빳빳한 명함을 새로 받았다. 공식 직함은 여성지 화제팀 객원기자. 객원가수, 객원교수 할 때 그 객[客]이었다. 말이 좋아 ‘손님’이지, 비정규직을 점잖게 부르는 말이었다. 나는 자발적 비정규 고용인으로 정규의 일상을 살았다. 그럼에도 제법 이 일을 즐겼는데, 월말에 받아든 두툼한 잡지를 베고 누우면 잠이 잘 왔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여성지는 수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셀럽의 사생활을 궁금해했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거나 은행 대합실에서 제 순서를 기다리며 폰 화면 대신 잡지를 넘기곤 했다. 디스패치가 뜨기 전이었다. 비와 김태희의 열애설이 터진 건 3년 뒤의 일이다.  

    

          


편집장이나 팀장은 X, Y축에 수치화한 그래프의 굴곡으로 인생의 기복을 가늠하는 일에 능했다. 그들은 곡선의 기울기로 기사의 경중을 쟀다. 기자들은 그 기울기가 아주 가파르거나, 0으로 수렴되는 변곡점일 때 녹음기를 켜고 인터뷰이 앞에 앉는 걸 즐겼다.

화제의 인물을 쫓는 일은 주로 정규직이 맡았다. 객원기자에겐 명함을 돌리며 인맥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다. ‘빨대’라 부르는 고급 정보원도 없었고, 증권가 지라시에 정보를 흘리는 방송가 사람들과도 친하지 않았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온다는데 한번 가봐.” 

팀장이 좌표를 건넸다. 객원기자는 주로 이런 취재를 했다. 

행사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2010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은 프랑스였다. 《개미》와 《뇌》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저자와의 대화’ 시간에 초대됐다. 그는 한손에 아이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으며 등장했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을 반반 섞은 미소를 입가에 물고서. 

단독 인터뷰 따윈 없었다. 청중이 질문을 하면 작가가 대답하는 식으로 행사가 흘러갔다. 통역사가 가장 바빴다. 

“최근에 번역된 《파라다이스》란 소설집 중에선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남이 한 질문이지만, 기사에선 내가 한 질문처럼 풀었다. 나는 이런 일에 제법 능했다. 

“<꽃 섹스>란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인간이 어떻게 꽃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죠. 알 수 없는 이유로 인류가 불임이 돼요. 섹스는 남지만 출산은 없는. 자연은 인간이 그대로 멸종하도록 방치할까, 아니면 새로운 생식의 시나리오를 제공할까? 이런 진화의 전략을 담고 있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 1권

   

베르베르는 ‘개미’와 ‘천사’의 어디쯤에서 인간을 탐구하고 있었다. 그 내면의 좌표를 알 순 없지만, 그가 서 있는 자리는 확실히 알았다. 나는 작가의 주변이 느슨해진 틈을 타 이렇게 말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씨, 여기 좀 봐주실래요?”

베르베르 씨가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을 반반 섞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옆에 있던 사진사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났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런 일에 제법 능했다. 팀장이 좌표를 건넸다. 이번에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쓴 미치 앨봄이었다. 출판사 초대로 이뤄진 이벤트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기자 간담회란 걸 했다. 

한국 방문이 처음은 아니었다. 미치 앨봄은 작가 이전에 스포츠 전문 기자이자 방송인이었다. 그는 1988년에 프리랜서 리포터로 방한해 서울올림픽을 취재했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은 해병대를 나와 연극배우가 됐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후프[hoop]라는 단어에 막혀 포기했다.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미치 앨봄 씨, 여기 좀 봐주실래요?”

    

             


신사동의 직장인들은 식후 커피를 즐겼다. 당시만 해도 신사동에는 커피빈과 스타벅스와 카페베네가 있었다. 직장인들은 떼로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었고, 나는 여기자들 틈에 끼어 커피빈을 자주 들락거렸다. 

커피빈이 가장 가까웠다. 카페베네는 신호를 기다렸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고, 스타벅스는 신사역까지 멀리 내려가야 했다. 

“선배, 집에서 커피 볶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L이 물었다. 이십대 여기자들 사이에 나는 ‘선배’로 통했다. 

“볶는다보다는 굽는다에 가깝지. 직화구이 같은.” 

“직화구이요? 마른 오징어처럼 바로 굽는단 소리?”

“그렇지. 가스 불에 바로 구우니까.”

L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반건조 오징어를 좋아했다. 직화구이는 아니었다. 달군 돌 위에서 구웠다. 그 이야기를 하다 커피로 돌아왔다.

“커피 원두 중에 뭐 특별한 거 없어요?” 

나는 사향고양이의 대장에서 나온, 소화가 덜된 체리에 대해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먹은 후였고, L의 손에는 그란데 사이즈의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게이샤 커피라고 몰라?”

“게이샤요? 기모노 입은 일본 기생?”

어쩌다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도 들어서 아는 이름이었다. 교토의 기온거리에서 만날 법한, 분 냄새 나는 여인을 꼭 닮은 이국적인 콩이 남아메리카의 어느 산중에 자라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게이샤. 

나는 정작 커피 맛이 아니라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닐까? 성형외과 전단에 실린 애프터[After] 사진 같은. 

나는 적응을 잘했다. 누가 뱉은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줄 알았다. 이건 재능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 일을 제법 즐겼다.  

이를 닦고 야근을 준비한다. 오늘도 L의 모니터 옆에는 그란데 사이즈의 흰 종이컵이 놓여 있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가 반쯤 남아 있는, 립스틱 위에 살짝 잇자국이 나 있는.

그 이미지는 한 달 전에 주인이 떠나면서 순백의 생기를 잃어버린 앙드레김 의상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상 칸막이를 따라 가로로 달리는 형광등이 이날따라 유난히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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