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8.
우사인 볼트가 브라질 리우 올림픽 100미터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록은 9.81초. 볼트가 질주하는 영상을 보고 나니 달달한 커피가 당긴다. 그럴 땐 프라푸치노가 답이다.
스타벅스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이라면 나만의 프라푸치노 레시피를 하나쯤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블루베리 머핀과 바나나를 갈아 넣은 바닐라 프라푸치노 같은.
나는 프라푸치노의 세계에서만큼은 보수주의자다. 새로운 시도를 즐기지 않는다. 메뉴를 보지도 않고 그린티 프라푸치노로 간다.
“벤티 사이즈구요, 샷 추가한 그린티 프라푸치노에 초코 드리즐과 자바칩 추가하고, 자바칩은 반은 갈고 반은 통으로 뿌려주세요. 마지막엔 일반 휘핑 많이요.”
웬만한 직원들은 이렇게만 해도 잘 알아듣는다.
“슈렉 프라푸치노 벤티 말씀이시죠. 드시고 갈 건가요?”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건넨다.
슈렉, 돼지바, 오레오, 트윅스, 고디바….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는 가짓수가 많아 이런 별칭으로 불린다. 참고로 돼지바에는 딸기크림이 들어가고, 오레오에는 바닐라크림이 들어간다. 트윅스는 캐러멜 프라푸치노, 고디바는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베이스로 한다.
주문은 보통 사이렌오더로 한다. 프라푸치노만큼은 이쪽을 추천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주문을 제대로 했는지 걱정할 일도 없다.
시럽이나 파우더, 토핑의 종류나 양을 입맛대로 조절해서 ‘나만의 메뉴’에 등록해두고 불러오기를 하면 편하다. 잘 모를 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악마의 레시피’를 참조하면 된다. 누구나 그렇게 시작한다.
벤티 사이즈 한 잔이면 900킬로칼로리가 넘는다. 햄버거 두 개치 열량이다. 우사인 볼트, 아니 ‘악마’가 되려면 이 정도는 달려줘야 한다.
프라푸치노[Frappuccino]는 합성어다. 얼음이 든 밀크셰이크를 뜻하는 프라페[Frappe]에 카푸치노[Cappuccino]를 더했다. 커피가 든 음료를 믹서에 넣고 돌리면 카푸치노처럼 몽글몽글한 거품이 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실 이 음료는 스타벅스 오리지널이 아니다. 보스턴의 커피 체인인 커피 커넥션에서 처음 개발했다. 1993년 여름, 프라페의 인기는 대단했다. 미국 내 스타벅스 점장들이 본사에 건의를 할 정도였다. 떠나간 손님을 잡으려면 우리도 우리만의 프라페를 만들어야 한다고, 메뉴에 프라페를 꼭 넣어야 한다고.
하워드 슐츠는 탐탁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커피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 대신 휘핑크림을 올린 파르페 같았다. 스타벅스의 CEO는 이탈리아 비엔나의 오리지널 커피를 선호했다. 그중 에스프레소 투 샷을 넣고 우유거품을 살짝 덮은 ‘에스프레소 도피오 마키아토’를 가장 즐겼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기에는 회사가 너무 커버렸다. 경쟁자를 물리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투자였다. 스타벅스는 ‘프라푸치노’라는 이름의 상표권과 함께 커피 커넥션을 인수했다.
1995년에 출시한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는 MS의 윈도95만큼 유명해졌다. 휘핑크림 위에 초록색 빨대를 꽂은 음료는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브램 스토커의 볼썽사나운 ‘드라큘라’가 앤 라이스의 매력적인 ‘뱀파이어’로 거듭난 것 같았다.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는 차갑고 부드럽고 달달했다. 테이블에 두고 오래 먹을 수 있고, 먹고 나면 배가 불렀다.
사실 프라페의 기원은 그리스에 있다. 1957년 9월,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국제무역박람회에서 네스퀵을 홍보하던 세일즈맨의 아이디어에서 왔다. 그는 지갑을 들고 다니는 부모를 공략하는 법을 우연히 알아냈다.
네스카페와 설탕, 찬물을 셰이커에 넣고 힘껏 흔들었다. 코코아가 든 네스퀵 제조법을 인스턴트커피에 그대로 적용한 셈이다. 이렇게 탄생한 그리스식 냉커피는 큰 인기를 끌었다. 네스카페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녹색 빨대를 물고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힘껏 빤다. 말차의 쓴맛을 더한 부드러운 단맛의 유혹은 강렬하다. 더 큰 참회를 위해 더 큰 죄를 짓는 역설의 맛. 프라푸치노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다음엔 휘핑크림을 빼야지.’
‘다음엔 시럽을 하나만 넣어야지.’
후회와 양심은 오랜 약속을 소환한다. 다음엔 다음을 기약하고, 다다음엔 다다음을 기약하고…. 그런 기약으로 다이어트의 원죄를 되새김질한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 세례를 베풀기 전까지 유럽에서 커피는 호환마마[천연두]보다 무서운 ‘사탄의 음료’였다. 이런 금기는 빗장을 건 방에서 남몰래 커피를 즐기던 목자들 입에서 나왔을 확률이 크다.
사람은 음식을 삼키다 죽는 게 아니라 토하다 죽는다. 로마의 귀족들은 위가 꽉 차면 입속에 새의 깃털을 넣어 음식을 토했다. 그러고 나서 또 음식을 먹었다. 칼리굴라에 이어 로마를 통치한 클라우디우스 황제도 대단한 미식가였다. 그는 독이 묻은 희귀 버섯을 삼키고도 살아남았다. 설사만 했다. 하지만 독이 묻은 깃털을 피하진 못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프라푸치노의 세계에선 레시피가 디테일이다.
악마의 레시피를 완성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부단히 설계하고 부단히 실망해야 한다. 나는 별 쿠폰이 적립되는 대로 그린티 프라푸치노에 또 한 번 도전할 생각이다. 궁극의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위하여.
성공한 메뉴는 잦은 실패에도 살아남는다. 성공한 다이어트도, 성공한 암살도, 성공한 예언도 그러하다. 디테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성서에는 이본[異本]이 많고, 식당 간판에는 원조[元祖]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