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9.
“저 사람이 알파고야?”
아내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돌을 놓는, 구글 딥마인드의 수석연구원을 알파고로 알았다.
“왜 웃어?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나는 감정을 숨기는 일에 서투르다. 숨긴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음을 들키고 만다.
“저 사람 진짜 이름이 뭐야?”
아내의 추궁에 호기심이 일었다. ‘알파고 아바타’란 검색어를 입력하자 ‘아자 황’이라는 이름이 떴다.
“고씨가 아니라 황씨네? 황씨는 허풍이 심한데….”
아내가 말했다.
“그래? 무슨 근거라도 있어?”
“황우석 사건 몰라? 영롱이 어쩌고 할 때부터 수상하더라니….”
영롱이는 체세포 복제로 태어난 젖소였다. ‘젊게 오래 살라’는 뜻으로 영롱[Young-long]이란 이름이 붙었다.
“복제양 돌리는 돌리 파튼한테서 왔지, 아마.”
내가 가슴이 큰 여자 가수를 떠올리는 동안, 알파고는 4대 1로 이세돌 9단을 눌렀다. 이세돌은 딱 한 판을 이겼다. 4국에서 이세돌이 둔 백 78수를 두고 ‘바둑의 신’을 소환했지만, 알파고는 엉뚱한 자리에 돌을 놓는 장난을 칠 만큼 인간적이지는 않았다.
정작 속은 건 나였다. 아자 황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설계한 엔지니어이자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이중의 가면을 썼다. 알파고의 아바타가 되어 알파고 뒤로 숨었다. 그는 감정을 숨기는 데 능했다. 다섯 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찾지 않고 제 페이스를 유지했다.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의 페이스도 좋았다. 그는 타조처럼 잘 달렸다.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46분 3초 만에 완주했다.
마라톤은 취미로 만족했다. 앨런은 다른 승부를 즐겼고, 그 일은 제법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해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는 만능기계를 만들려 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땐 캠퍼스를 달리거나, 젊은 남자를 찾아 맨체스터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렸다.
전후의 영국사회는 호모섹슈얼에 관대하지 않았다. 앨런 튜링은 케임브리지의 스승이었던 비트겐슈타인에게 침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법원은 이 스스럼없는 동성애자에게 에스트로겐 주사를 처방했다.
호르몬은 많은 걸 바꿨다. 돌리 파튼까지는 아니어도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다. 앨런은 1년 만에 페이스를 잃었다.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베어 물고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덕분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는 시간은 조금 뒤로 밀렸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치 매치가 끝나고 여섯 달이 흘렀다. 북한은 5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풍계리에선 진도5에 이르는 지진파가 관측됐다. 이때만 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풍계리는 너무 멀었고, 경주는 적당히 멀었다.
추석을 앞두고 대구로 내려갔다. 9월 12일은 월요일이었다. 저녁상 앞에 모처럼 다섯 가족이 둘러앉았다. 일흔이 넘은 아버지 옆에서 다섯 살 아들이 숟가락질을 했다. 오붓한 밤이었다.
바로 그날 경주 지진을 겪었다. 대구에서 경주까지 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긴급재난문자를 받기 전에는 영문을 몰랐다. 이 저녁에 누가 못을 박으려고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내는 줄 알았다.
시간차를 두고 진도 5.8의 본진이 들이닥쳤다. 놀란 눈으로 천장을 살피던 아버지가 손자를 당겨 품에 안았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이 샌드페이퍼를 들고 아파트 외벽의 페인트를 벗기는 줄 알았다.
저녁상을 치우고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주차장은 차들로 빼곡했다.
인공지능은 체스나 바둑에서 인간을 앞서게 됐지만, 아직도 나만의 그린티 프라푸치노 레시피는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스타벅스는 사이렌오더에 AI를 도입하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딥러닝을 이어갔다.
알파고와 그린티 프라푸치노 사이에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구름 밖으로 달이 나왔다. 세상은 조금 밝아졌고, 내 머릿속도 조금 환해졌다. 그것은 ‘디테일’이나 ‘완성’의 문제라기보다 그린티 프라푸치노의 문제였다. 레시피는 틀리지 않았다. 애초에 완벽했다.
“궁극의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이미 맛본 거야. 맨 처음에 말이지.”
보도를 걸어 놀이터에 이르렀다. 기울기가 마이너스인 한계효용의 곡선을 꼭 닮은 미끄럼틀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한달음에 그 곡선을 뛰어 올랐다.
처음과 끝은 이어져 있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자 마음이 홀가분했다. 미끄럼틀 위에서 마주한 달이 한결 보름달 같았다.
9월 14일은 수요일이었다.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붙이고 나서 스타벅스를 찾았다. 눈에 드는 대로, 지금껏 마셔보지 않은 메뉴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난 자몽 허니 블랙티.”
“자몽 허니 블랙티?”
아내가 눈을 크게 뜨고 돌아봤다.
나는 자몽 맛도 알고, 꿀맛도 알고, 뜨거운 물로 우려낸 홍차 맛도 안다. 하지만 자몽 허니 블랙티의 맛은 또 모른다.
우리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인공지능의 미래도, 지하 단층의 구조도, 정권의 앞날도 알지 못한다. 내가 이것들에 무지하다고 해서 이것들의 사정이 나와 무관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느슨하고 팽팽한 끈으로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손자병법》의 모공편에 보면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란 말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손자는 ‘백전백승’이란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런 바람을 담아 덧쓴 말일 뿐이다.
적은 내 안에 있고, 나는 나를 조금은 잘 알아서 가끔 안심한다. 늘 위태롭지만은 않으니, 이젠 이기고 지는 일에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일에도 조바심을 덜었다.
나는 자몽 허니 블랙티의 맛도 잘 모르면서 그럭저럭 중년이 되었다. 이건 성공담일까, 실패담일까? 이쯤에서 사각 테이블이 달달달 떨었으면 싶은데, 애석하게도 스타벅스엔 진동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