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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Mar 19. 2020

채식은 맛있다

고기는 맛이 없다

채식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소 긍정적으로 반응하던 사람들도 끝내 이렇게 말한다. 

'그래, 육식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고,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건 알겠어. 

그런데 난 고기를 끊을 수 없어. 이 맛있는 걸 안 먹고 어떻게 살아. 취지는 알겠지만, 나는 실천하기 힘들겠다.'

사람들은 대개 채식을 금욕과 동일시한다. 채식주의자를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채식 초기에는 고기가 당기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고기를 끊은 지 한 6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니까

'고기를 먹고 싶다.'에서,

'아, 저 맛없는 걸 그동안 내가 어떻게 먹었지?'로 어느 순간 바뀌었다. 

지금은 누가 줘도 못 먹는다. 맛이 없어서, 더 정확히는 비리고 냄새가 나서. 

채식을 하고 나서 어느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감자탕을 먹게 된 일이 있었다. 

감자탕. 감자탕은 육식하던 나로 말하자면 가장 사랑하던 음식 중에 하나였다. 퇴근 후 뼈다귀 해장국에 소주 한잔, 캬아,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사우나 같은 소울 푸드였으며, 어느 집 뼈다귀 해장국을 먹어도 나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맛있게 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채식을 몇 달 유지하긴 했지만 감자탕은 워낙 좋아하던 음식이고, 자리를 피하기 힘든 데다 한 번쯤 먹어도 되겠지 하고 수저를 들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감자탕집에서 신나게 뼈다귀를 퍼먹었다. 

그런데 기대감과는 다르게 뭔가 맛이 이상했다. '어라, 즐겼던 맛이랑 좀 다른데, 냄새와 기름기가 심하네.' 먹고 나서도 속이 울렁거리며 불편하더니 두 시간 만에 전부 깡그리 게워냈다. 도저히 소화를 시킬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고기가 그렇게 냄새가 심한 재료인지 몰랐다. 비위가 그리 약한 편도 아니었고, 간혹 편식을 해도 웬만해서 음식을 완전히 가린 적은 없었다. 고기의 종류도 개의치 않았었고. 지금은 고기가 들어간 국물 근처에 코만 갖다 대도 반응이 온다. 고기 특유의 비린내, 잡냄새, 기름 냄새, 그건 어떻게 양념을 잘해도 숨길 수 없더라. 매일 고기를 먹고 있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고기의 불쾌한 냄새를 잡기 위해 상당히 많은 향신료와 채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그 냄새들이 완전히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제는 확실히 깨달았다. 고기는 동물성 단백질이 주는 씹는 식감과, 동물성 지방이 주는 고소한 맛으로 먹는 것이다. 하지만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고려하더라도 나로서는 육류가 풍기는 냄새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채식은 금욕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진실되게 마주하는 작업에 가깝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고 즐겼던 것은 사실 습관이었다. 진짜로 그것이 맛있었을까? 물론 그때는 고기가 정말 맛있다고 느꼈고, 고깃집에 가서 불판에 익어가는 고기를 보면서 행복하다고 여겼고, 채식주의자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고기 없이는 절대 못 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평생을 타성적으로 싸고 있던 육식이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나니까, 육식이 혀끝에서 속여왔던 비밀들이 보였다. 정말로 맛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진실로 맛있는 것들인가?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고기를 싫어할 수 있는 건가? 진짜로 원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나의 혀는 무엇을 맛있다고 느끼는 걸까?

다들 맛있다고 먹으니까, 혹은 그냥 쭉 먹어왔으니까, 그게 나의 욕망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은 가짜였다. 아무것도 맛보지 않은 순백의 혀가 음식을 하나씩 맛보고 탐구하며 원하는 음식을 고른다면 고기가 선택받을 확률은 낮다고 생각한다. 


나는 채식이 훨씬 맛있다. 

윤리적이고 환경적인 다른 이유들은 다 제쳐두고라도, 순수하게 미각적 측면에서 채식이 더 맛있다. 

나는 금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어서, 내 욕망에 따라 채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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