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핑계) 거리는 늘 있다.
변명(핑계)에 익숙해지다 보면, 변명하는 솜씨도 는다.
좀 더 그럴듯하고, 좀 더 능청스럽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하던 변명이, 시간이 지나면 자기 자신을 속이기 시작한다.
육아를 변명거리로 삼고 싶지 않았다.
육아가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핑곗거리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들 키우니라 못했지.' 하는 말,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생활에 지칠 때, 내 능력이 고만고만한 것만 같아 괴로울 때,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지 못했을 때, 나는 열정과 끈기로 도전하는 대신, 가장 쉬운 길을 택하곤 했다.
변명하는 것 말이다.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한 명도 아닌 둘이고, 친정이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따위의 것들 말이다.
입 밖에 꺼낸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을 뿐이다.
처음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던 게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진짜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열심히 하지 못하는 건,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변하지 않은 현실과, 변하지 않을 미래.
변명이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