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 카페에 글을 올렸다. 새로운 베이비 시터를 구할 때까지 입주민 중에 단기로 일할 분을 찾아볼까 싶었다. 이모님이 안 계시고 며칠 밤을 제대로 못 자 마음이 암흑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도움이 절실했지만 시터 경험 없는 입주자가 일하러 온다고 해도 걱정이었다. 아기를 잘 못 볼까 하는 걱정은 둘째 치고, 몇 번 오다 못 나오겠다고 하진 않을까 하는 공포에 가까운 걱정이 컸다. 남의 집에서 아가를 돌보는 게 어디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보다 결코 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이모님을 만나는 것은 전생에 큰 공덕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하던데, 나의 운은 저번 이모님에서 끝났음을 직감했다.
글을 올리고 금방 채팅이 왔다. 바로 옆 9동에 사는 분이었다. 잠깐 집에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나이 또래로 보였다. 7살 아들, 4살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낮 시간 동안 아가들을 봐줄 수 있다고 하셨다. 시터 경험은 없다고 하셨지만, 연락이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출근을 부탁드렸다. 당분간 약간의 도움만 받자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이모뻘이 아니라 아가들에게 이모뻘이라 호칭은 선생님이라고 하기로 했다.
여전히 이모님과의 이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울적한 마음을 감추고 출근하신 선생님을 맞았다. 선생님은 첫날부터 아가들에게 읽어줄 책을 가지고 오셨다. 첫날은 촉감놀이를 할 수 있는 책을, 그다음엔 동물소리가 나오는 사운드 북이었다. 유명한 상어송을 비롯해 각종 동요가 있는 책도 들고 오셨다. 신기한 책들을 보니 아가들보다 내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장인의 도구 같았달까. 비싸 보이는 책들이라 혹시 아기들이 침이라도 묻힐까 걱정되었는데 선생님은 천천히 보라며 매번 책을 놓고 가셨다. 사실 선생님은 소리 나는 책이 없어도 아가들의 흥을 금방 돋우셨다. 애벌레 인형 하나로도 블록버스터급 이야기가 끊길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아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낭창한 목소리로 놀아주실 때에는 마치 구연동화를 보는 듯했다. 컴컴했던 엄마와 달리 상냥한 선생님이 놀아주자 아가들도 실컷 놀았는지 낮잠도 쿨쿨 잘 잤다. 시터 경험이 없다고 걱정했건만, 아차 선생님은 현직자시지. 깜박했다. 선생님도 아가들도 무탈하게 적응하는 것 같아 안도했지만, 베이비 시터 구인은 생각만큼 잘 되고 있지 않아 우울한 날들이었다.
선생님과 며칠을 보내고 어느 날, 한창 아기들 재우고 있는 저녁에 카톡이 왔다. "집에 계신가요? 외출 중 아니시면 김치볶음밥 가져다 드리려고요." 전날 점심으로 라면 먹는 걸 봐서 그러신가. 감사하면서도 얼렁뚱땅 사는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머쓱했다. 번거로우실 텐데 괜찮으시겠냐고 되물었는데 편의점 나가는 길에 다녀가겠다고 하신다. 잠시 뒤 다시 카톡 알람이 울린다. "배달 완료입니다." 메시지와 함께 사진이 와있었다. 사진 속에는 4살 라희가 우리 집 문 앞에서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 있었다. 라희는 선생님을 꼭 닮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에는 이쁜 리본핀을, 손목에는 알록달록한 팔찌를 차고 있었고, 분홍색 리본이 달린 청바지를 입고, 금색 젤리슈즈를 신고 있었다. 라희는 집 앞 편의점 나가는 데에도 이렇게 차려입는 멋쟁이였구나! 따뜻한 음식 선물을 라희가 직접 배달해 주다니 이런 영광이 있나! 선생님과 라희가 놓고 간 쇼핑봉투를 열어 보자 락앤락 통 위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뜨거운 밥 + 2~3 수저 넣고 비벼 드세요. *주의* 매움" 어른에게도 매움 주의를 알리는 친절한 경고문에 웃음이 났다. 라희만큼이나 선생님도 귀여우셨다.
선생님의 음식 선물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김치볶음밥 다음에는 전복죽, 뚝배기채로 주신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직접 만든 카레, 보쌈, 갈비찜, 김치찜….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항상 넉넉히 주시는 것을 보면 우리 줄 양을 감안해서 요리하시는 것 같았다. 장 볼 때 혹은 요리할 때 잠깐이나마 우리를 떠올렸을 선생님을 생각하니 난 속수무책으로 선생님이 좋아져 버렸다. 다정한 선생님을 처음부터 좋아했지만, 이모님에게 가졌던 애정과 같은 농도로 감정이 진해지고 있었다. 선생님네 식탁에 올라가는 음식이 우리 집 밥상에도 차려지기를 수차례. 어떻게 요리를 이렇게 잘하세요 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우리는 점점 서로의 일상에 대해서도 대화했다. 처음엔 둘 다 조심스러워서 말을 아끼고 있었기에, 내가 묻지 않아도 선생님이 먼저 해주시는 일상 이야기는 언제나 듣기 좋았다. 7살 주혁이도 아가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가지고 있는 사운드 북 중에서 소리가 제일 잘 나오는 책으로 골라서 선생님 손에 들려주었다고 한다. 주혁이와 라희가 입던 옷과 신발도 잔뜩 우리 집으로 왔다. 옷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가 냄새가 코에 닿으니 이 작은 옷을 입었을 아가 주혁, 아가 라희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음속 암흑행 열차가 마침내 브레이크를 걸고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수천 세대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는 사람이 한 명 없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두 집. 우리 옆집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9층 멍멍이와 견주분네였다. 인사라고 해도 눈을 맞추지 않은 목례일 뿐이다. 더 가까운 사이를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았는데, 9동 선생님과 주혁, 라희까지 알게 된 건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기적 같은, 전생의 내가 베풀어준 자비였다. 아니다. 전생의 내가 베풀긴, 선생님이 베풀어준 정 덕분이다. 이젠 주말에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면, 혹시 놀이터에 두 아이가 있을까 기웃기웃거린다. 선생님께 꼭 한 번 아이들하고 놀러 오라고 말씀드렸는데 계속 성사되지 못하다가, 너무 자주 말씀드려서 한 번만 더 말하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은 찰나에 두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두 아이가 김밥을 전해 주러 온 거다. 공원으로 소풍 나가려고 선생님이 직접 싼 김밥을 나눠먹으니 마음이 나들이 햇살을 받은 것처럼 뽀송해졌다. 이제 아파트 단지에서 인사할 수 있는 어린이가 생겼다, 야호! 목례 말고 격한 호들갑을 동반한 진짜 인사말이다.
새로운 베이비 시터는 고용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선생님과 계속 함께 하고 있다. 주혁이와 라희를 돌보면서 우리 집 쌍둥이 보기 힘들지 않냐고 여쭸는데, 우리 집 아가들은 아직 어려서 하나도 안 힘들다고 하신다. 아니 난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가들이 커서 걷고 뛰고 말하기 시작하면 도대체 육아는 얼마큼 힘들어지는 걸까. 두 아이를 돌보고, 우리 집 쌍둥이도 봐주시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먹을 맛있는 음식도 만드시니 선생님은 하루를 얼마나 촘촘히 살고 계시는지.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다. 선생님은 나에게 가히 영웅 같은 존재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영웅이 분명 있다. 그들의 사소한 베풂과 다정한 습관들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준다. 대부분 일반인 코스프레를 너무 잘해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가까이서 보면 감춰진 슈퍼 히어로 쫄쫄이 의상이 보인다. 우리 집엔 없는 것 같지만.
(아가들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