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들은 이란성쌍둥이이다. 쌍둥이는 자궁 경부에 가까운, 그러니까 자궁에서 더 아래에 위치한 태아를 첫째라고 한다. 출산할 때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아가들의 태명은 딸기, 자두였는데 위치상 딸기가 아래 있어서 첫째가 될 운명이었다. 제왕절개 수술 시 하반신 마비를 하고 가슴 밑으로는 천으로 가리기 때문에 산모가 수술 장면은 보지 못한다. 수술 당일, 마취 후 차가운 조명 아래 누웠다. 아무런 느낌은 없지만 하반신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잔뜩 긴장되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초조하게 누워있는데 갑자기 수술실에 웃음이 터졌다. 교수님이 배를 가르고 아래 있는 딸기를 먼저 꺼내려하는데, 자두가 허공으로 발을 쑥 내밀었다고 한다. 자두는 뱃속에서부터 많이 꼼지락거리더니 오늘이 세상으로 나오는 날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발차기를 하고 있었나. 교수님이 “어머 얘 봐라” 하며 크게 웃었고 ‘저요!’하고 발 들고 있는 자두를 먼저 꺼냈다. 아가를 꺼내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는데 곧이어 들리는 응애응애 울음소리로 아 나왔구나 싶었다. 태동으로만 느끼던 아가들이었는데 공기를 가르는 울음소리를 들으니 뜨거운 눈물이 주체할 수없이 줄줄 났다. 그렇게 자두가 무느1아기, 딸기가 무느2아기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내 본명 뒤에 1, 2를 붙여 불렀다.)
쌍둥이는 태어난 월일시가 같기 때문에 주민등록등본에 분까지 기록된다. 둘은 1분 차이다. 1분 차이로 자두가 언니, 딸기가 동생이다. 쇼트트랙 경기에서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스케이트 날을 밀어 넣어 1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자두는 마지막 순간에 박진감 넘치게 언니 타이틀을 획득했다. 하지만 과연 자두가 언니 타이틀을 원했을 것인가? 여느 때처럼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어라 여기 왜 이렇게 넓어졌지?’ 하며 발이 그리로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 K-장녀 타이틀을 누가 자진해서 따려고 할까. 게다가 우리 아가들의 경우는 막판에 언니 동생 결정이 바뀌게 되었으니 일관성도 없다.
찾아보니 요즘엔 언니, 동생으로 서열을 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그러지 않기로 했다. 둘에게 서로를 친구라고 소개해 줬다. 한쪽이 언니로 과한 책임감을 느끼거나, 한쪽이 동생이 되어 언니 눈치를 보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특히 나이가 같다 보니 언니가 되는 쪽이 조금 더 억울하다. 동생에게 양보하기를 강요받거나 돌봄의 의무가 더 생긴다면, 언젠가 동생이 미운 맘이 드는 것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한참 동안은 둘 다 어린 아가들인데 서열로 인해 어떤 굴레에 갇히지 않았으면 했다. 언니 동생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각자에게 바라는 역할이 생기게 될까 봐 또한 조심스러웠다. 조금 더 제멋대로인 아이가 있을 거고, 주변을 살피고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아이도 있을 거다. 서열에 따라 특정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에 맞춰 조화로운 관계가 될 거라 믿는다. 그래도 살다 보면 제일 피곤한 게 혈연이다. 둘이 친하게만 지내면 좋겠다.
이름은 더 고민이 많았다. 돌림자를 넣을지 말지 매일같이 생각이 바뀌었다. 고심 끝에 돌림자 없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뱃속 아가들이 여아 쌍둥이인 걸 안 순간부터 든 걱정이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같다 보니 아가들이 서로 비교하고 의식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상처 입을 일이 생기면 어쩌지. 집에서는 엄마 아빠가 조심한다고 해도, 학교나 또래집단에서는 쌍둥이라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말들이 있을 수 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꼭 붙어 있던 사이지만 크면서는 상대로 인해 정의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느끼며 성장해 주길 바랐다. 이름이 얼마나 영향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둘은 성씨만 공유하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우리 가족의 경우이고 내가 조심성이 많다 보니 내린 결정들이다. 가족 내에서 어떤 호칭을 쓰든, 이름에 돌림자가 있든 없든, 쌍둥이들은 사랑으로 자라나고 각자의 이야기를 쓰게 될 거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아가들. 그 모든 탄생을 진심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