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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어디까지 바 봤니

by 무느무느

비과학적인 믿음이나 유사 과학에 대해 냉소적인 나. 사주에 대해서는 유난히 관대한 편이다. 아니 오히려 과몰입하는 편일지도 모르겠다.


스물몇 살 때 대학로에서 재미 삼아 사주 카페에 간 것이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때 카페 사장님이 한자를 휘갈겨가며 내 사주팔자 푸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마치 그 옛날 병원에서 의사가 알 수 없는 필체로 환자의 증상을 적어가며 진단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엄숙했다(무슨 말인지 이해하면 옛날 사람이다). 빈 종이에 한자가 빼곡히 적혀감에 따라 내 별 볼일 없는 인생은 낯선 이 앞에서 낱낱이 해체되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기다림이 끝나고 사장님이 입을 여는데, 이게 웬걸. 내가 어떤 시점에 어떤 사건들을 겪었는지 맞추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에도 사주를 보러 갈 때마다 공통적으로 내 그간 인생의 몇몇 큰 이벤트들을 읽어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미래에 벌어질 일도 사주 상에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 생겼고, 한 번씩 인생이 답답할 때면 종종 사주를 보러 가곤 했다.


인생은 여전히 답답하지만 사주를 보러 가지 않은지 꽤 되었다. 사실 보러 ‘가지’ 않은 것이지 안 본 것은 아니다. 친구가 용하다는 사주 앱을 추천해 주었는데 해설이 꽤나 그럴듯했다. 연초에 신년운세를 보러 가는 대신 그 앱을 다운로드했다. 가만히 둬도 될 텐데 한 번 보고 나면 다신 안 볼 것처럼 앱을 지웠다. 하지만 앞길이 막막해 잠이 안 오는 밤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만들어낸 긍정적인 예언의 말이라도 듣고 싶어 사주 앱을 다시 다운로드했다. 몇 해전 마지막으로 사주 앱을 봤을 땐 엄청난 예언의 메시지가 있었다. 40대가 되면 큰 재물운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일도 잘 풀리지만 이와 함께 내가 했던 투자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성공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로 인하여 재산이 수배에서 수십 배가 불어나는 일도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사회의 틀에 구속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며 활기차고 활력 있는 모습이 되며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나는 탄성을 내뱉었다. 아! 나는 잘될 거구나! 젊을 때 미리 고생해서 다행이다! 이미 내가 큰돈을 벌어준 것 마냥 남편에게도 자랑하고, 우습지만 엄마한테도 말했다. 나 잘될 거라고…. 그리고 이 예언의 말을 캡처해 두었다. 나중에 성지순례차 꺼내볼 그날을 기약하며.


얼마 전에 갑자기 그 문구가 생각났다. 몇 년 만 더 참으면 내 인생 잭팟이 터지는 시기가 온다는 이야기를 재확인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사주 앱을 다운로드했다. 이 앱은 메뉴가 아주 복잡하다. 광고를 곳곳에 넣으려는 수작일 거다. 오늘의 운세, 내일의 운세, 신년운세, 정통사주, 토정비결 등등 10개가 넘는 상위 메뉴가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세부항목으로 재물운, 애정운, 건강운과 같은 하위 메뉴가 여러 개 있다. 분명 이 경로로 가면 그 잭팟 터지는 문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주얼리 브랜드, 수입 대행 쇼핑몰을 홍보하는 여러 개의 광고를 봐가며 페이지를 넘겨봐도 그때 본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개발자들이 앱 업그레이드하면서 데이터를 고쳤을까? 그래도 내 사주가 바뀐 것도 아닌데 40대에 찾아오는 행운에 대한 언급은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부적처럼 들고 있던 스크린샷이 무의미한 jpeg 쓰레기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40대 은퇴의 꿈은 그렇게 모래에 쌓은 누각처럼 무너져 내렸다. 실상 쌓은 게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맞는 비유도 아니지마는.


이 사상누각 일화가 사주 과몰입의 정점이면 좋겠지만 부끄럽게도 출산 후에 정점을 갱신했다. 아가들 사주를 본 것이다. 제왕절개가 예정된 산모 중에는 사주나 점을 보고 미리 날짜를 받아서 출산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다닌 대학병원의 담당 교수님도 몇 주 차에 수술하기로 결정하고는 그 주에 원하는 날짜가 있으면 알려달라 하셨다. 한국 현대의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병원에서도 출산 택일을 배려해 주다니. 우리나라는 좀처럼 사주에 진심이다. 아무튼 난 출산 당시에는 사주에 초연해 택일을 하지 않았는데, 아가들 이름을 지어주는 과정에서 신생아도 사주를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되었다. 사주 상담을 통해 엄마인 나와 아가들의 관계성에 대해 조언을 받았지만, 개운하기는커녕 찝찝했다. 문제집을 풀다 뒤에 있는 해설집을 슬쩍 들쳐본 것처럼 어딘가 비겁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죄의식을 떨치려는 마음 때문인지 오히려 고집이 발동했다. 아가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내 의지로 세상에 나오게 된 아가들에 대한 미안함을 당신은 모르잖아요. 당신 생각보다 저 그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가들 사주는 다시 안 볼 것 같다. 그리고 아가들에게 사주 본 내용도 절대 비밀이다. 아가들 사주팔자에 대해 들은 내용 중에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최대한 잊어버려야겠다. 딸들 인생에 과몰입하느니, 믿고 있던 재물운도 물거품이 된 마당에 내 팔자나 진지하게 걱정해야겠다. 그리고 사주 명리학을 공부할 생각은 없으니 이 정도는 과몰입 끝판왕은 아니라고 선을 그어본다. 나중에 딸들이 나만큼 사주에 관심 없으면 그거나 섭섭해해야겠다. 좋은 수다거리 하나가 줄어드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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