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되진 않을 걸?
우리나라의 겨울은 견디기 쉽지 않다. 난 고등학교때 청운동의 한 주택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집이 오래돼서 겨울엔 외벽을 타고 바람이 송송 들어오곤 했다. 삭풍이 유난한 날이면 바람 때문에 선득한 추위를 느끼고 이불 속으로 고개를 쏙 집어 넣은 채 잠이 들던 기억이 난다.
요즘 집들은 그때에 비해 단열이 매우 잘 되어 있다. 그럼에도 추위를 잘 느끼는 사람이나 난방비가 걱정인 집엔 알록달록한 전기장판이 마치 조선시대에 부모가 잠자리 들기 전 이부자리를 미리 몸으로 덥혀놨던 효자마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디자인도 촌스럽고 전기도 많이 먹지만, 얼었던 몸을 이끌고 이불속에 들어갔을 때 전신을 감싸는 전기장판의 온기는 매트리스 위에서도 온돌의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구한말 한국을 방문한 독일의 지그프리트 겐테는 당시 한국의 온돌 문화를 어느나라에서도 터득하지 못한 독창적인 기술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외부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온돌은 낯설면서도 독특한 생활방식이다. 문제는 온돌이 너무 독창적이다보니 다른 나라의 생활 양식과는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서구권에선 난방을 위해 공기를 가열시키지 방바닥을 덥히진 않는다. 그래서 매트리스에 전기장판을 까는 모습은 그들에겐 매우 생경하다.
이런 생활의 차이는 제품에도 고스란히 들어가서 유럽에서 만들어진 메모리폼 매트리스엔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 없다. 애초에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 그렇게 만든것이지만 국내 소비자들 입장에선 퍽 답답한 모양이다. 종종 성수동에 위치한 쇼룸에서 고객을 맞을때면 템퍼 매트리스를 보고 왔는데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니 말이다.
300~500만 원 가까이 하는 고급 매트리스가 전기장판조차 사용할 수 없다니, 메모리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이상할 것이다. 나도 처음 메모리폼이라는 걸 알았을 땐 단순히 누웠을때의 느낌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직접 침대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폼을 공부하다보니 사용감이 비슷해도 내용물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메모리폼 매트리스가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가장 위쪽에 위치한 폼의 구조가 일반 폼과 달라야 한다. 업계에선 이걸 통기폼 또는 오픈셀 구조라고 부른다. 통기폼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메모리폼 위에 전기장판을 사용해도 되는지 여부가 갈린다. 내가 상담하는 고객들에겐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샘플을 쥐어주곤 한다. 직접 만져본 고객들은 그제서야 템퍼 매트리스가 왜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 없는지 이해한다.
한 번은 전화로 한 시간 동안 상담을 한 고객이 있었다. 그 고객은 지방에 거주하기 때문에 쇼룸 방문이 힘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매우 꼼꼼하게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프레임은 꼭 써야 하냐, 라돈은 안나오냐, 폼은 무슨 소재로 만들었냐, 커버는 어떤 천을 썼냐, 품질 보증은 몇년이냐 등 매트리스는 아무래도 오래 사용하는 제품이고 가격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수준이다보니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선 많은 질문에 대한 미안함과 경험하지 못한 제품에 대한 망설임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 많은 질문들 중에서 가장 신경써서 답변했던 건 통기폼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아들이 수입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사용하다가 여름에 등 전체가 땀띠로 범벅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이 분명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던 고객의 음성에선 아들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여름에 덥지 않은지 알고 싶다면 전기장판 사용가능 여부를 판매자에게 반드시 물어보라. 둘은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