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의식인 줄 알았는데 냉소였다

by 무민

토론회가 시작하기 20분 전에 미리 갔는데도 현장은 이미 인파로 북적였다. 어림잡아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했고 의자가 없어 서있겠다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서울 고등학생 학원의 교습 시간 연장을 논의하는 이 토론회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다.


서울 고등학생 학원의 교습 시간이 논란이 된 건 약 10년 만이다. 현재는 밤 10시까지만 학원 수업을 할 수 있다. 이 제한을 완화해 ‘수업 금지선’을 밤 12시로 늦추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토론자가 아닌 방청객들도 적극 손들어 학원 교습 시간 연장에 찬성하거나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가 아닌 이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온 이들로 보였다. 그들은 학생들의 학습권과 학생들이 편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권리, 학원 운영자·강사들이 범법자로 전락할 위험을 말했다.


사회부연재7편인가.png 이미지=챗GPT


그럴싸하다고 느끼면서도 속으로는 저울질했다. 학원 수업을 2시간 더 늘릴 경우 증가하는 학원 수입과, 학원이 지불해야 할 강사비를 저울에 올렸다. 7년 차 기자여서 그런 건지 사회부 기자여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사교육이더라도 교육자로서, 또 한 개인으로서 사명감이나 우려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실익계산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현실적 시각일 테다. 누군가에게는 비판을 위한 비판일 거다. 혹은 지나치게 아니꼽게 보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언론사에 몸담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기자는 매일 논란과 부조리를 찾는다. 그게 언론의 역할이다. 사람이 사람이나 동물을 해하고 또 타인의 것을 훔치는, 그런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사건이 기사로 쓰인다. 행복한 주인공이 나오는 좋은 소식은 중요도가 떨어진다.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좋지 않은 사례를 찾아내 알린다. 사회부는 그 핵심적 역할을 맡는다.


사회부 기자의 고충은 여기서 시작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닌지라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기 쉽다. 사건 밑바탕에 깔린 원초적 욕구와 적나라한 인간의 민낯은 사람에 대한 기대를 깨트린다. 사회부 기자의 의욕은 그런 배신감에 꺾이곤 한다.


세상이 선의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다만 전에는 사회의 작동 원리에 선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런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언론사라고 다르지 않다. 준비하고 있는 기획기사도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안에선 유관기관에서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협찬 계산을 하고 있다. 산업부가 아닌 사회부도 그러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사회부에서는 냉소감이 자란다. 타인을 평가하는 기자들의 습관, 항상 일이 넘치는 사회부 특성과 만나 강한 시너지도 난다. 모든 이면에 사리사욕과 계산이 깔려있을 거라는 의심, 세상을 향해 던지는 욕, 만성 짜증… 누군가는 ‘비판의식’이라고 포장하지만, 기자로서 비뚤어진 자아상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런 내 모습을 좋게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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