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불쾌합니다.”
휴대폰 너머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전해졌다. 취재원이 이런 식으로 불만을 표출한 건 처음이었다. 처음 겪는 이 상황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발단은 전날 쓴 기사였다. 정부가 올해 도입한 특정 정책은 현장에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민간과 위원회를 꾸렸다.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개선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
민간 위원 중 일부가 문제를 제기했다. 위원회는 형식일 뿐 정부는 이미 답을 정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해당 위원들은 위원회 활동을 중단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었다.
이 내용을 기사로 썼다. 취재한 대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평소 자주 전화했던 정책 담당 팀장은 기사가 나간 다음날 곧바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위원들에게 활동 초기부터 의견 청취 차원으로 위원회를 꾸렸다고 설명했었다”며 “민간의 의견을 반영할지 여부는 나중에 검토할 사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님에게 내부 정보를 흘린 분이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한 건지는 알 것 같다”며 “기밀유지서약도 받았는데 왜 이런 식으로 내부 얘기가 나간 거냐”고 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휘둘린 것처럼 표현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불쾌하다”고 직접적으로 표현도 했으니 곧 8년 차가 되는 기자 생활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불편한 전화였다. “취재원은 밝힐 수 없다”, “내가 궁금한 건 위원회의 향후 활동 계획”이라고 말을 돌렸다. 그 이후 한동안은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이 일을 조금은 잊을 즈음에야 다시 전화했고 그땐 그도 아무 일 없었던 듯 통화했다.
내 기사가 그렇게 불쾌감을 드러낼 만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는 실무자이니 내 기사가 나간 이후 어디서 한소리를 들었을 수 있다. 혹은 내 기사가 정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단독]’을 붙이지 않은 기사도 영향력이 있다는 걸, 또 사회부의 기사는 산업부보다 훨씬 무겁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기사의 무게를 느낀 경험이 이 한 번 뿐이었다면 부담감을 크게 갖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기사의 파급력을 느꼈다. 어떤 이익단체는 내 기사가 진실을 호도한다며 반박하는 자료를 냈다. 주장과 주장이 서로 부딪히는 기사를 쓰고 난 뒤에는 늘 ‘댓글 전쟁’이 벌어져 있었다.
이런 파급력 때문에 과거에 기자를 꿈꿨었다. 누군가를 싸움 붙이거나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한걸음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길 원했다. 기자로서 잘못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일이 내 가치관과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사회부 기사는 내게 너무 무겁다. 절대적 정의는 없는 데다, 기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동시에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정의가 아니라 각자의 이해관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기사는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둔탁한 곳으로 때려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그러니 기자는, 특히 사회부 기자는 책임감을 갖고 기사를 쓰게 된다. 영향력이 있는 만큼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버텨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