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을 빼앗기고 제보자와 연락을 끊었다

by 무민

산책하기 좋은 오후였다. 적당히 쌀쌀했고 햇빛도 포근해 편안했다. 발제한 기사는 얼추 써놓았으니, 이제 다음날 기삿거리를 찾으면 됐다.


기자의 하루는 발굴의 연속이다. 발굴의 압박은 꽤 크다. 아무 얘기나 기사가 되지는 않는다. 세상에 뼈가 될 만한 얘깃거리를 발골해야 한다. 좋은 날씨에 발걸음이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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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제보가 반가웠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상급학교 신입생 입학시험에 합격해 내년에 진학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폭력은 언제나 클릭이 많은 이슈다. 누가 봐도 ‘[단독]’ 기사가 될 만했다.


가해자를 입학시킨 학교와 피해자에게 연락해 입장을 들었고 사건에 관계된 다른 이들의 멘트도 받았다. 전문가의 제언 역시 챙겨뒀다. 취재는 다 했으니 다음날 기사만 쓰면 됐다. 이렇게 또 하루 기삿거리를, 특히 단독 기삿거리를 찾아 기분 좋은 긴장감이 심장을 찔렀다. 학교폭력 피해자 측에게서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묘한 ‘사회부뽕’이 차오르기도 했다.


다음날 기사가 나왔다. 내가 아닌 다른 매체에서다. 내가 취재한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제보자가 여러 언론사에 제보 내용을 돌린 듯했다. 사건을 어떻게든 공론화하고 알리고 싶은 제보자의 심경은 이해가 갔지만 단독 기사를 빼앗겼다는 허탈함이 마음을 압도했다.


제보자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더 있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제보 내용만으로는 일상적인 학교폭력 사례로 보였고 기사화할 만큼 중요도가 높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이미 다른 언론사가 취재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적당히 답장을 하다가 말았다. 제보자도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제보자의 절박함을 봤지만 내 기삿거리로는 절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흐지부지 끝난 건 마음에 걸렸다. 하루하루 기사를 때우기 바쁜 7년 차 기자이지만 사회부에 오고 나서 받은 첫 제보여서다. 이제 와 다시 “관심이 가네요”라며 제보자에게 연락을 하기도 민망했다. 내 의중이 어떻든 제보자는 기삿거리에만 혈안이 된 계산적인 기자라고 생각할 것처럼 느꼈다.


마음이 찔린 건 나 스스로도 계산적인 기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워서다. 칼바람 불던 여의도 한복판에서 비정규직 파업이 벌어져도 그들의 고통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사건을 기사화해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게 중요했다. 어떤 이익단체가 업무 환경이 너무 가혹하다고 전화로 호소해도, 어떤 멘트를 적절히 잘라 인용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뒀다. 사람 대신 사건 자체만 봤다.


사회부는 유독 사람에 관한 기사를 많이 쓴다. 사람의 고의나 부주의 혹은 제도의 문제가 사건을 일으키지만 책임을 지는 건 결국 사람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건 물론 화재 같은 사건이 발생해도 사람이 책임을 진다. 사회부는 그런 사건과 사람을 함께 다룬다. ‘시스템’ 중심의 산업부와는 사뭇 다르다. 산업부에선 숫자와 제도, 사업 전략이 먼저였다.


사회부에 온 지 다섯 달. 아직 적응이 덜 됐지만, 모든 사회부 기자가 나와 같은 고충을 겪는 걸까. 답장을 보내려다 포기한, 제보자의 메시지가 아직 생생하다. 사건을 봐야 하고 또 사건만 보려 하는 내 이기심과 사람 마음을 보지 않는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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