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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Jun 26. 2024

한 마리의 바위게가 되는 길

꿈과 낭만의 QWER 입덕기 #4

팬심을 뜨겁게 유지시켜 주는 팬카페 활동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게 처음이다 보니, 팬카페 활동을 하는 것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애초에 온라인에서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과 공통의 관심사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것은 나에게 오직 입시나 취업 관련 정보를 얻는 실용적인 목적의 공간이었다. 질문이 아닌 이상 게시물을 직접 올릴 일도 없었으며, 필요한 정보만 눈팅으로 쏙쏙 빼가는 식으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활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팬카페라는 공간은 달랐다.



팬카페는 애초에 정보 공유가 목적인 곳이 아니다. 공통의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 대상에 대한 찬사를 나누고, 이들에 관한 컨텐츠를 공유하고, 다시 이들에 대해 감상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물론 스밍하는 법을 알려주고 독려하거나, 초보 팬들을 위한 매너나 팁을 전수하는 등의 정보성 컨텐츠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이 더 좋은 음원 성적을 내거나, 더 많은 인정을 받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팬카페라는 건 결국, 너무나 당연하게도, 초보 팬부터 고수 팬끼리 모여서 함께 덕질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해 하루종일 떠들어도 시간이 모자란데, 주변에는 이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너도 나도 QWER 얘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새로고침을 누르면 계속해서 새로운 짤, 내가 못 본 컨텐츠,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보게 된다. 활활 타오르는 팬심에 끊임없이 장작을 넣어준다.


이렇게 매일 천 여개의 글이 올라온다


다양한 형태의 팬카페 활동



팬카페에 가입한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었지만, 팬들마다 활동하는 방식도 각양각색임을 느낀다.


1) 멤버들의 방송 소식, 깜짝 라이브 소식, 인스타 공채*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알려주시는 분들

* 인스타그램에 있는 '공지 채널'로, 아티스트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팬들은 이모티콘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공지 성격의 DM이다.


이렇게 생겼다. 자기가 제일 꾸준하면서 바위게가 꾸준하다고 숭배하는 시요밍


2) 놓치기 쉬운 인스타 라이브나 위버스를 재밌게 편집하거나, 오프라인 공연을 녹화해 주시는 분들


3) 유튜브나 라이브, 기존 컨텐츠에서 멤버들의 귀엽고 예쁜 순간을 짤로 만들어 공유해 주시는 분들


4) 음원 성적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스밍 방법, 총공 방법 등을 안내하고 독려해 주시는 분들


5) 만화, 리믹스, AI 컨텐츠 제작 등 자기가 가진 역량으로 재밌는 팬메이드 컨텐츠를 만드시는 분들


6) 사비로 멤버들을 위한 선물이나 팬카페 회원을 위한 나눔 이벤트를 기획해서 주최하시는 분들


7) 신규 회원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고 소통하시는 분들


위에 언급한 분들은 나 같은 초보 팬한테는 굉장히 감사한 분들이다. 하루하루 덕질하는 법을 알아가는 입장에서는 볼 컨텐츠도 많은데 무엇부터 봐야 할지, 어떻게 응원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QWER의 방송을 알려주고, 편집해서 보여주고, 음원 성적 올리는 전략을 알려주고, 나 대신 선물 이벤트를 진행한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누구도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금전적인 보상은 당연히 없고,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온전히 자신의 자유시간과 에너지에서 나온다. 명예라도 챙길 수 있는가 하면, '회원의 네임드화 금지'가 일반적인 팬카페 규칙이기 때문에 이것도 어렵다. 정말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다. QWER이 좋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QWER이 더 잘되게 응원하고 싶으니까 내 돈과 시간, 에너지를 써가면서 응원을 보내는 거다.


그래서... 뭐, 누가 알아는 줌?


아예 밖에서 봤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그런다고 걔네들이 알아줄 것 같아?', '걔는 죽었다 깨나도 너 모를걸?'. 팬이 돼본 적 없는 사람이 팬한테 하는 흔한 공격이다. 알아주지도 않는 상대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에 대해 낭비라고 여기고 한심하게 보기도 한다. 근데 그건 팬의 마음을 아예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사실 이전까지 내가 딱 그랬다. 근데 이제는 알게 됐다.


바로 위에 설명했듯이, 덕질은 뭔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응원인 것이다. 친구가 가게를 열었다고 해보자. 문제가 생겨서 얼마 안 가 망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팔아준만큼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 친구를 좋아하니까, 내 시간을 써서 방문하고 내 돈을 들여서 친구의 새 출발을 응원하며 할 수 있는 한 팔아주는 것이다.


팬카페 활동은 대개 그런 순수한 응원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같이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서로가 서로의 장작이 되어줘서 더 활활 타오르는 것일 뿐.


무엇이든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멋지다


지금 QWER을 좋아하게 되고 나서 비로소 깨닫게 됐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나는 지난 몇 년 간 하루하루를 그저 바쁘게 쳇바퀴 돌 듯 살아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잃은 상태였다. 일이 많을 때는 새벽까지 일을 하면서, 분명히 정신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 뭐 하나 이룬 건 없는 기분이었다. 실적도 좋고 제품도 잘 팔리는데, '이건 내가 해낸 거야!' 하는 성취감은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인생을 너무도 열심히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야말로 길을 잃은 상태였다. 이렇게 살고 계속 같은 회사에서 버티다가 운 좋으면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최고겠다, 정도가 내가 품은 꿈이었다.


그러다 QWER에 입덕한 직후, QWER 컨셉에 영향을 줬다는 인기 만화 <최애의 아이>를 다시 보다가 다음 대사가 가슴에 날아와 푹 꽂혀버렸다.


대원씨아이는 어서 빨리 13권을 내놓도록 하자...


내가 꿈을 좇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을 때
나는 꿈을 좇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던 거야.

<최애의 아이> 4권, 36p


이 대사의 무게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 장면의 배경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어려서부터 아이돌이 꿈이었던 인물이 있다. 열심히 꿈을 향해 달려가던 중 어머니가 자신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과로를 하다가 병상에 눕게 됐다. 결국 자기가 동생 둘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이 되어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돈을 벌게 됐고, 돌아보니 이미 23살이 되어 아이돌이라는 꿈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늦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장면을 다시 보고 문득 심각한 위기감이 들었다. 이대로 살다가 10년 후에 지금 회사에서 관리직이 되어 이 대사를 읊조리고 있을 내가 그려졌다. 평범하게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꿈이 없는 무료한 삶을 하루하루 쳇바퀴 굴러가듯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고,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뜨거운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이러니 해보일 수 있지만, 'QWER을 작정하고 좋아하고 덕질해 보자'였다.


나는 평생 살면서 무언가에 진심으로 뜨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운 좋게 타고났거나 부모님께서 주어주신 좋은 환경적 이점들 덕에 무탈하게 자랐다. 크게 욕심 내는 성격도 아니고, 무언가를 깊이 파고는 드는 성미도 아니라 큰 족적을 남기지도 않았다. 가늘고 길게 살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지금은 안정적이고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근데 이 대사를 보고 나니 더 늦기 전에 꿈을 꿔봐야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으로, 나를 뜨겁게 하는 열정의 대상을 찾아 제대로 '디깅'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렇게 '디깅'을 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는 '업(業)'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몇 년 동안 묵혔던 도전들을 하나씩 꺼내서 해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불씨가 되어준 게 바로 QWER이다.


작가명의 기원. 참고로 이미지는 미드저니로 만들었다.


QWER 팬카페 얘기하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애초에, QWER의 꿈을 응원하면서 내 꿈도 찾아가는 나의 이야기다.


모든 게, 이제 시작인 바위게


QWER의 팬덤명은 '바위게'다.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에 나오는 몬스터의 이름이라고 한다. 쵸단과 마젠타가 게임을 좋아하는 스트리머이고, 히나도 게임을 즐겨하고, 팀명 자체도 LOL의 스킬 키를 딴 QWER이기 때문에 팬들과 함께한 라이브 방송에서 정한 이름이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나도 바위게지만 정식 바위게가 아니었다.


팬카페 최종 등급인 '바위게'가 되기 위한 조건인 게시글 50개, 댓글 200개, 방문 수 200회 중 댓글과 방문 수는 아득히 넘었지만, 가입한 지 4주가 되지 않아 등업 신청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월 10일 금요일에 등업 게시판에 신청을 하고 나서야, 정식 바위게가 될 수 있었다.



QWER 덕질에 있어 최초의 이정표는 달성한 셈이다. 그렇지만 덕질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제 어디 가서 조금 더 당당하게 '나 바위게야!'라고 외출 수 있어 뿌듯할 뿐.


QWER의 이번 앨범 수록곡 중 <지구정복>이라는 노래가 있다. 멤버들은 인터뷰에서 항상 자신들의 꿈이 <지구정복>, 즉 빌보드라는 점을 강조한다. 나는 이들이 진짜 지구정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응원할 작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내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멤버들이 꿈을 이루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볼 뿐이다.


QWER의 팬인 바위게로서도, 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모든 것이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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