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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Sep 26. 2024

조금 이상해도 괜찮아

댄 애리얼리의  <상식밖의 경제학>,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

"한국의 밤은 정말 환상적이군요!"


모니터에 수상쩍은 사람이 서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서울디지털포럼이었고, 각 분야 연사들이 온종일 토론하는 행사였다. 나는 그때 SBS에서 포럼의 하이라이트를 정리하는 작업 중이었다.  

한국의 밤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찬사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그 눈동자에 혜성이 날아든 것처럼 빛이 돌았다. 밤새 한국인의 N차 술문화를 경험했고 가라오케 이야기까지 했다. 스몰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술은 깨고 온 것일까. 궁금해지다가 그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행동경제학자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듀크대 댄 애리얼리 교수이다. 포럼 행사 같은 좀처럼 풀어지기 어려운 자리에서 그는 좀 자유로워 보였다. 이런 행사에서 밤새 술에 취하든 무엇을 하든 깔끔하게 일만 하고 빠져서 박수받으면 그만이다. 굳이 그런 모습을 보여서 시선을 받아야 득이 될 것 없어 보이는데 왜?

그는 나사 풀린 사람 같기도 하고, 어딘가 괴짜다운 면모가 있었다. 술 안 취해도 취한 듯 말하는 그런 사람인 것일까. 호기심이 들었다. 그의 저서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상식밖의 경제학 : 원제 Predictably Irrational - 원제가 더 재미있다!>


그 책을 덮고서 아쉬웠다. 미리 읽었더라면 그때 사인이라도 받을 걸.

(내가 좋아하는 몇몇 경제학자들이 있는데, 당장 댄 애리얼리를 추가했다. 가장 윗자리는 케인즈가 차지하고 있다. 언젠가 철저한 시장방임주의 교수님과 방송 준비하다가 그 때문에 곤란해진 적도 있었다. 이것도 차츰 써보려 한다)


이상한 그의 면모는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아이들이 그에게 와서 장난을 친다.


 “사탕 주면 안 잡아먹지!”
고백하건대 예전에 가끔 짓궂게 이렇게 응대해 준 적도 있었다.
“그럼 잡아먹어봐라”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나온 것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식밖의 경제학> 중에서, 댄 애리얼리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며 실험할 때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한국의 술을 떠올릴 때 눈빛에 돌던 반짝임. 악동 같은 웃음. 책에서도 그 표정이 떠올랐다. 뻔한 실험은 하지 않는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웠다고 하지만 읽다 보면 특유의 유머에 웃음 짓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에 사람을 멍하게도 한다.

새 남자친구와 예전 남자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녀에게 댄 애리얼리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식이다.

"자넨 사랑하는 친구를 정말 놓치고 싶은가, 아니면 먼 훗날 원래 남자친구를 더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지 몰라서, 그 애매한 가능성 때문에 그러는 건가?"


언제나 더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 너무도 빈번한 우리의 실수에 대한 흥미로운 지적이다. (어쩐지 닥터 하우스가 좀 떠오르기도 하고,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도 생각난다.) 댄 교수는 수많은 선택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단호함에 대해서 강조한다. 그에 대한 예시도 흥미로운데, 영화를 인용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드 버틀러가 스칼렛 오하라를 떠나려고 할 때, 그녀는 그에게 매달리며 간청한다.
“난 어디로 가라고요? 난 어떡하라고요?”
스칼렛의 행동을 참을 만큼 참았던 레트는 말한다.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

-<상식 밖의 경제학> 중에서, 댄 애리얼리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

이 부분을 읽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영화를 그토록 많은 이들이 언급했건만, 이 대사에 감동한 사람은 처음 봤다.  댄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단호함.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위해서 그렇지 않은 것들에 문을 닫아야 한다. 쓸데없는 것들이 허비하느라,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한다. 부디 선하겠다는 핑계로 단호함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댄 교수에게 배운다. 흥미로운 진짜 이론들은 접어두고 이 에피소드들만 꺼내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까지 하지만, 이 책이 그만큼 재미있다는 뜻이다. 그의 유쾌함과 유머 때문에 나는 댄 애리얼리가 큰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EBS의 <위대한 수업 : Great Mind>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 <총균쇠>, <사피엔스>의 저자 같은 엄청난 석학들이 강의를 한다. 이 제작팀의 섭외력은 놀라움의 연속인데, 그중에 물론 댄 애리얼리 교수도 있다. 강의에서 그는 반쪽 수염만 기른 채로 등장한다. 워낙 괴짜이시니 패션일까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상처의 흔적이다. 고교 시절 입은 전신 화상 때문에 한쪽은 수염이 자라지 않는다.


그 비극은 고3시절, 밤에 하는 전통 행사에 참여하다가 폭발사고를 당한다. 피부의 70%가 불에 탔고 병원에서 3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화상 입은 피부에서 거즈를 붙이고 떼내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어떻게 하면 덜 아플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린 학생이지만 그는 분명히 거즈를 빨리 떼어내면 덜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긴 경험을 이야기하며, 천천히 살살 떼어내는 것이 훨씬 안 아프다고 했다.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한 시간 내로 거즈를 빨리 떼어내는 것. 그리고 천천히 살살 두 시간에 걸쳐 떼어내는 것. 어느 쪽이 덜 아플까? 그것이 당시의 그의 연구 과제였고 마침내 실험을 통해 댄은 증명해 냈다.

그의 발견은 두 가지. 하나는 통증 감각에서 중요한 것은 '지속 시간'이 아니라 '강도'라는 사실. 그리고 또 하나는 간호사들이 그렇듯 많은 경험으로 사람들이 종종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표준경제학은 인간을 이성적 판단을 하는 존재로 전제한다. 하지만 의사결정에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비이성적 행동은 우발적이거나 막연하지 않다. 그것은 체계적이며 예측가능하다. 이 것이 <상식밖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제이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경험들이 그를 행동경제학자로 이끌었다. 약간은 기이한 지금의 모습은 그가 고통을 통과한 시간이 드러난 것이기도 했다. 그의 이론도 흥미롭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더 끌린다면 아주 얇은 책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이 있다.


그의 화상 에피소드가 널리 알려지다 보니, 가끔 연락을 받는다. 그날 전화를 한 것은 심각한 화상을 당한 아이의 어머니 앨리스였다. 그는 댄 교수에게 아이를 위로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는 고민한다.

그것은 어떤 일인가. 댄 교수는 이틀 동안 아이에게 해 줄 말을 찾으며 기억을 더듬다가 많이 울었다고 썼다. 기억에 남을 만큼 오랜만에 크게 울었다고 했다. 고통이 너무 지겨워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했던 그날들을 다시 더듬고 그 모습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다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나는 앞으로 그의 삶이 쉽지 않을 것이며 회복도 느리겠지만,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기술 발전으로 인류의 삶은 나아졌고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오늘날 직장은 우리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새롭고 유연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 중에서, 댄 애리얼리


그는 병실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병원 주변에서 들리던 소음에 대해 알고 싶었다고 했다. 그 불규칙한 소음은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것에 집중하게 했다.

화상 당한 아이를 만난다는 것은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했던 비극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경험이 되었다.

'동기란 무기력함을 극복할 때, 아주 미미할지라도 삶을 제어하는 능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때에 자라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만나면서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 같다고 썼다. 읽으면서 그가 그토록 훌륭한 학자가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겪은 삶으로 그는 자신의 일을 찾은 것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훌륭한 사상가이듯 그 역시 그렇다.


그리고 그의 괴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글도 좋다.

미국 쇼핑몰 자포스의 핵심 가치를 소개한다. '즐거움, 그리고 약간의 괴상함을 추구하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탁월한 사람들의 일면에 보이는 그 '괴상함'을 좋아한다.


오늘날 경제활동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관점에 대해서도 말한다.

동기를 통해 관리를 저해하지 않고도 직장 구조를 바꾸지 않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던 스미스. 분업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면 동기를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마르크스. 요즘 같으면 과연, 어느 쪽이 더 필요할까.

댄 애리얼리는 연대감을 말하며 잊을 수 없는 결말을 남긴다.


‘그토록 많은 시인이 노래했던 것, 그토록 많은 사상가가 외쳤던 진리, 나는 생애 처음으로 그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이 열망할 수 있는 궁극의 목적이 사랑과 의미의 연대감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가장 큰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며, 사랑 속에 구원이 있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 중에서, 댄 애리얼리

Eddie higgins - Beautifl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S_11NDkyw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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