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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아르코에서 만난 카프카 씨

그들의 우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by 베리티

일요일 오후 해가 머리끝에 떠 있을 때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눈부신 나이라고들 했지만, 눈이 부시도록 강렬한 햇빛 속에 뚜렷이 보이는 건 없었다. 정면을 응시하면 눈이 멀 것 같았다. 잠시 눈을 감는다. 그늘이 필요했다. 짙은 그림자를 원했다. 언더그라운드. 그래서, 우리는 그 계단으로 깊이 내려갔다.

대학 시절 우연히 음악 잡지 끄트머리에서 모임 광고를 발견한 친구 때문이었다. 브릿팝에 정신없이 빠져들 무렵 그 음악감상회를 알게 되었고 돌아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면접'이라는 것도 보았다. 무슨 이유로 통과했는지는 모르지만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모임에 여성 멤버들이 별로 없었다. 모임 회장은 종종 내가 얘네들을 뽑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적어도 우리가 부끄럽지는 않은 회원이구나 싶어서 같이 웃었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의 클럽에서 한낮의 스피커는 크게 울렸다. 오래되어 낡은 나무테이블 위엔 각자 좋아하는 음료나 술이 놓였고, 손에는 각자 읽을 것들을 들고 있었다. LP플레이어 옆에는 음반이 가득 쌓였다.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음반을 가져왔고, 대강 손글씨로 휘갈겨 쓴 노트도 돌렸다.

주말이면 그 클럽엔 밴드들의 라이브가 열렸지만 낮 시간은 텅 비게 되었고 그 시간에 우리가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음감회라고 해서 음악 얘기만 할 리는 없다. 아니, 오히려 전문가 앞에서는 본업 얘기를 피하게 되듯 우리는 영화나, 책, 만화책 수다들을 실컷 늘어놓았다. 대부분 쓸데없는 얘기였지만 그중 몇몇은 꽤 진지하게 회지라는 것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중에 또 누군가는 평론가나 기자, 기획자가 되었다.

그냥 슬렁슬렁 놀러 다니던 모임이 후에 풍성한 얘깃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카페 살롱 문화에 대해서 읽었을 때 종종 그 음감회를 떠올리곤 한다. 모두가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사람은 타인을 거울처럼 들여다볼 수 있을 때 더 깊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언제부터 카프카는 고독의 대명사가 된 것일까. 그는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퇴근 후 글쓰기를 일과로 삼았지만 집과 직장만 오가며 홀로 고독에 잠겨 고뇌하는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생애를 보면 곧잘 친구, 주변 사람들이 등장한다. 약혼과 파혼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연애도 남부럽지 않게 했다. 무엇보다도 특히 유명한 우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카프카 사후 친구 막스 브로트가 그의 유언을 저버리고 소설을 출판한 이야기는 전설 같은 에피소드로 남았다.


카프카와 브로트의 첫 만남은 서로 다른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1902년 프라하의 독일 대학생 독서모임에서 카프카는 브로트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브로트는 쇼펜하우어에 대해 연설하다가 니체를 사기꾼 수준으로 깎아내렸다. 이를 듣던 카프카가 연설 후 브로트를 찾아가 의견을 펼친다. 브로트가 니체의 과도학 수사학과 공격적인 스타일을 비판했는데 이에 카프카는 유럽 사회의 안일한 도덕률에 비타협적인 정직성을 짚었다. 카프카가 쇼펜하우어의 평온 - 세속적 안락함 대신 니체의 고통스럽고 급진적인 철학을 옹호한 것은 후에 정신적 보헤미안의 삶을 살겠다는 예언처럼 들린다.


사람은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을 기억한다고 들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사람과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편안하고 반가운 일이지만,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생각으로 나를 깨 주는 사람을 잊지는 못한다.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고 싶다면, 나와 같은 사람만 만나서는 안 된다. 책을 도끼에 비유한 카프카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으로 머리 정수리 일격을 가해서 각성시켜주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카프카와 브로트의 만남은 시작부터 바로 각자의 세계관을 마주한 것이었고, 도끼처럼 그 차이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해서 그저 단순한 의견충돌이 아니라 20년이 넘도록 이어진 우정의 서막이 열렸다.


카프카와 브로트는 당대 지적 문학적 공동체인 '프라하클럽(Prager Kreis)'의 멤버였다. 그 시대 프라하에 거주하던 독일어를 쓰는 유대계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던 그들은 강연과 원고를 나누며 깊은 연대를 이루었다. 지금도 프라하에 있는 아르코 카페(Café Arco)에서 그들은 만나곤 했다.

살롱문화로 상징되는 파리의 거트루드 스타인의 카페에 헤밍워이나 피카소, 핏츠제럴드 같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것처럼 프라하의 아르코 카페가 그들의 교류를 이어주는 둥지가 되었다. 카프카는 작은 방에서 쓴 원고를 카페 아르코에서 프라하클럽의 친구들과 나누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읽어도 충격적인 카프카의 소설이 당대에는 얼마나 급진적으로 다가왔을까. 그 모임에서 그는 혼자만의 광기로 치닫는 것을 막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작품을 실험하고 다듬어나갔다. 어디에서건 새로운 생각은 억눌리기 쉽다.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내면서 위축되지도 않는 한편 비판을 수용하는 균형감을 갖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무도 없는 고립 속에서만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 <변신>에서도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을지언정 집을 탈출하거나 가족을 등지지 않는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닐 뿐이다. 카프카 연구자들은 카프카의 다정함을 놓치지 않는다.


카프카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계속 자신을 여는, 그러면서 계속 자신에게 다른 방식의 삶을 허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카프카에 따르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구원은 타인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 <카프카와 가족, 아버지의 집에서 낯설게 살기>, 오선민


실크 모자를 쓰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카프카 씨가 카페 아르코에서 친구들과 토론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어쩐지 방에서 혼자 책상에 앉은 모습보다 조금은 편안해진다.

아버지에게도, 여동생에게도, 연인에게도 편지를 부지런히 쓰던 카프카. 어두운 밤 불 밝힌 방에서 길어 올린 원고를 보여주는 카프카.


언제나 그는 세상의 바다를 향해 편지 담긴 병을 띄워서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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