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딜레마 : 생계 vs 존재
부모님 때문에 꾹 참고 있으나 참지 않았더라면, 벌써 사표를 냈을 것이고 사장 앞으로 걸어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모조리 말해버렸을 텐데.
-<변신>, 카프카
언젠가 기업을 탐방하는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유명 진행자가 회사에서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여러 부서를 떠들썩하게 휩쓸고 돌아 결국 대표의 자리에 도착했고 옆에 있던 구성원에게 호기롭게 질문했다. "어때요, 이 자리, 탐나지 않아요?"
답은 정해져 있으려니 하면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저기, 모르시는 게 있는 거 같은데... 대표도, 카메라도 모두 그를 향한다. 그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모든 직장인의 꿈은 퇴사입니다."
진행자는 어리둥절했지만 다른 이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대표까지도.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농담 같은 진심이 슬쩍 보인다. 어떻게 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취업하고 나면, 또 그토록 열렬하게 퇴사를 바란다는 것이 참 기묘한 현실이다.
어차피 퇴사가 선택사항에 없다면, 한 번쯤 구상해보는 플랜B가 있다. 특히 글쓰기나 창작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정해진 시간만 일을 하고 퇴근 후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생활. 이를테면 공무원 같은 안정적 직업으로 생계를 일단 해결하고 따로 시간을 내어 내 일을 하겠다는 상상이다.
성공한 경우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이내 알게 된다. 그것은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회사가 몸이 칼퇴하는 것을 허락할지라도 정신적으로도 그럴까. 설사 칼퇴를 한다 해도 영혼을 온전히 바치지 않는 직원을 몰라보거나 그냥 두는 회사는 없다. 그건 버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생각처럼 유니콘 같은 망상에 가깝다. 혹시 그런 곳이 있다면 아마 거기가 회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외치고 싶어진다. 카프카가 그랬잖아요!
카프카는 엄격했던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고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법학 박사였지만 고급관리의 길을 벗어나,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에 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일반 보험회사에 취업했지만, 1908년 보험재해공사로 옮긴다. 기업을 위험 등급으로 나누는 일을 감독하고 기업주들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며 노동자들이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고자 할 때 조언해 주었다.
겉으로 볼 때는 그저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공부하고 회사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틀 안에서 카프카는 방향을 정한다. 문학의 꿈과 먼 안락의 자리는 피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일로 생계를 해결한다. 카프카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고통받는 노동자의 모습이나 묘사들은 이런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작품은 기괴하고 어려운 외양을 띄고 있지만, 그 사이를 촘촘히 메우고 있는 섬세한 감수성이 엿보인다. 또한, 이런 일들이 어느 것 하나 빈 틈을 허용하지 않는, 강도 높은 고단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승소를 준비하는 일 그리고 이제까지 본 적 없던 문장을 품은 낯선 형식의 소설들. 카프카의 낮과 밤은 그렇게 달랐지만, 시계추는 어느 쪽으로든 기울지 않았다.
이렇게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를 반복했고, 새벽까지 불이 밝히고 글을 썼다. 카프카라고 해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고민이 없었을까.
사무실에서 아주 성가시고 참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내심 편합니다. 또 여기에서 저는 제가 필요한 것 이상의 수입을 얻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누굴 위해서? 저는 봉급의 사다리를 타고 계속 올라가겠지요. 무슨 목적일까요? 이 일은 제게 맞지도 않고, 보상으로 독립성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요?
-<그리고 네게 편지를 쓴다 : 카프카 투쟁의 기록> 중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어쩌면 지금의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 질문은 존재했다. 아마도 '회사'라는 역사가 시작된 시절부터가 아니었을까. 요즘 흔히 들을 법한 인터뷰처럼 보이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프카다.
그 역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직장생활'이라는 생계와 '이상'이라는 존재 사이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다. 당장 명쾌한 정답이나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가 멈추지 않은 것이 있다. 소설 처럼 수수께끼와도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성실함만은 놓치지 않았다.
<변신>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된 이후에도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그리고 직장에 대해 계속 걱정한다. 벌레가 되어서 제일 먼저 비상이 걸린 것은 회사였고, 지배인이 집까지 찾아오는 지경에 이른다. 벌레는, 그러니까 그레고르는 지배인에게 어필한다.
"지금 당장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만 바로 지금이야말로 이전의 실적을 기억하여 나중에 장애만 제거된다면 그만큼 더 열심히, 더욱 몰두하여 일하게 되리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사장님께 의무가 아주 많습니다. 지배인님도 잘 아시겠지만요. 다른 한 편으로 저는 부모님과 누이 걱정도 해야 합니다."
열렬히 떠들어보지만, 벌레의 웅얼거림이었을 뿐이다. 지배인은 첫 마디가 시작되기도 전에 몸을 돌려버리고 시선을 거둔 채 뒷걸음친다.
<심판>의 요제프 K 역시 자신이 무슨 이유로 기소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번번이 좌절당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죄가 있었기 때문에 체포된 것이 아니라 체포되었기 때문에 죄가 있는 것'이라는 주장에 '자유란 재판 중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맞선다.
<성>의 토지 측량사 K는 성 안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방인으로 배척당하면서도 끝까지 성문을 열어 실체를 확인하고 자신을 입증하려 한다. K는 말한다.
"내 결심은 확고하고, 혹시 거절의 회답이 온다고 해도 나는 내 결심을 실행해 볼 겁니다."
카프카의 일과 작업 사이의 태도에서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미지의 거대한 힘, 시스템과 같은 부조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의 소설은 블랙 유머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직장생활과 글쓰기,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길을 겪으면서 계속 질문하고 오히려 그렇게 풀어가는 과정들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으며 내면에서 이는 질문을 직접 살았다. 불안, 체념, 갈등, 머뭇거림 이 모든 것들을 작품의 연료가 되었다.
일류 지성은 상반된 두 개념을 동시에 머릿속에 품고도 그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는 능력이다.
-스콧 핏츠제럴드
카프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개념의 모순 속에서 피할 수도 변할 수도 없는 것들에 맞섰다. 카프카가 자신의 삶을 투쟁으로 바라본 것은 단순한 '퇴사'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직장은 아버지나 세간의 시선으로부터의 방어막이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도피처나 하나의 수단처럼 대한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에 몰입할 만큼이나, 그는 일에 있어서도 성실한 사람이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진실하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맡은 일의 중요성이나 난이도에 관해서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자신을 기만해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계속하기 전에 우선 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다.
- <행복의 정복> 중에서, 버트란드 러셀
카프카는 생계를 유지하는 삶의 질서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창작의 방을 지키는 투쟁을 계속해나갔다. 그것은 결코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도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병까지 얻어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직장생활과 의미 사이에서 고민하는 현대인들은 이미 백년전에 카프카의 예언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가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배인에게 어필하던 그레고르의 뒷말이 이어진다.
"저는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다시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 애쓸 것입니다."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K의 등을 떠밀지라도 그는 포기할 줄 모른다.
어서 가보세요. 저 편에서 어떤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여기서는 모든 것이 기회로 가득하니까요. 물론 어떤 기회들은 이용하기에는 너무 크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좌절을 맛보기도 해요, 그래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성> 중에서, 프란츠 카프카
*사진 : 카프카의 드로잉 중에서 (출처 :https://franz-kafka.eu/zi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