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몬드 카버의 카프카 헌정
카프카의 시계가 돌아간다. 프라하 황금소로 22번지 하숙방의 새벽엔 이제 불이 켜지지 않지만 누군가 시계를 걸어놓았다. 누군가의 시로 지어진 시계다.
카프카의 시계
- 레이몬드 카버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오로지 시계에만
의존해 판단하게 됩니다.
늘 손안에 쥐고 있는 그 시계
그러고는 흔들어댑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어하며
그걸 천천히 귓가로
가져가는 겁니다.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은 여유로운 사람일까, 쫓기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오로지 시계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어떨까. 카프카의 시계는 오로지 글 쓰는 시간을 향해 움직이는 나침반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를 둘러싼 주변이 어떻게 움직이든 그의 일상은 시계처럼 일정했다. 정해진 시간으로 초침이 딸깍 움직이면 반드시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했다.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책상에 앉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퇴근 후 하숙방에 돌아와 글을 썼던 카프카 못지않게 레이먼드 카버 역시 생계를 위해 여러 일들을 하고 비는 시간에 책상에 앉았다. 꼭 글을 쓰지 않아도 남보기에 그럴듯한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사회적 성공, 안락한 가정, 명예와 권력. 그들의 시계를 글쓰기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맞추었더라면 어느 분야든 인정받았을 것이다.
레이몬드 카버는 이른 결혼을 하고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했다. 단편소설을 주로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장편을 쓸만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미국 노동 계층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카프카가 소설의 인물들을 비현실적 세계로 몰아넣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미로 속에서 움직일 때 카버의 인물들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현실의 세계에서 담담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난 일개 제과쟁이에 지나지 않소. 결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한 때는 나도 지금과 같은 인간은 아니었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말이오. 하지만 나는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소. 그 결과 지금은 그저 평범한 제과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말씀이오. 물론 이런 얘길 한다고 내가 한 짓거리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알아요.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소.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레이몬드 카버
어린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어느 빵집에 예약해 둔 부부가 나중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이가 의식을 잃어 병원을 오가며 정신없는 부부는 케이크 예약을 잊어버리고, 영문을 모르는 빵집 주인은 그 집에 수시로 연락한다.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에서 아들 이름을 들은 부부는 깜짝 놀라고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부부는 빵집 주인을 찾아와 분노하고,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이 꺼내는 말이다.
빵집 주인의 이야기에는 빵 굽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노동자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을 하겠지만, 때로 그 기계적인 과정 속에서 사람은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어느 분야든 사람이 오랜 시간 일하는 기계처럼 보내다 보면, 변해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 빵집 주인은 스스로가 그렇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서 다행인지 모른다. 무심코 했던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사과를 하고 있는 부분이다.
카버 소설의 매력은 이런 방식에서 드러난다. 드라마틱하게 절규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점층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변해버린 어떤 것들에 서서히 빛을 비춘다. 그 빵집 주인이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을 깨운다. 카버 그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봤기 때문이다. 그 고단함과 피로를 아는 것이다.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도 일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갇혀버린 방 안에서 뭐라도 해야 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가정부가 그의 방에 쓸모없는 물건들을 가져다 놓는다. 살림살이 중 팔기도 써버리기도 애매한 것들이 주인 잃은 방에 쌓여간다. 자신의 방이 쓰레기더미로 채워져 가는 것을 보면서 그레고르는 어떻게 했을까.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픈 자화상이 보인다.
가정부는 시간과 기회가 될 때 물건들을 다시 가져가거나 한꺼번에 내다 버릴 생각인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그레고르가 그 잡동사니를 헤치고 들어가 움직여 놓지 않았더라면 물건들은 처음 던져졌던 그 자리에 마냥 놓여 있었을 터였다. 처음에는 기어 다닐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랬으나 나중에는 점점 재미가 나서 그랬다. 비록 그렇게 돌아다니고 나면 죽도록 피곤하고 슬퍼져 다시 여러 시간을 꼼짝달싹 못 했으면서도.
-<변신>, 카프카
슬픔을 잊는 방법은 잠시도 몸을 가만 두지 않는 것이다. 그건 성실이 몸에 밴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습성이기도 했지만,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덮어버리듯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불안을 잊기 위해서는 '죽도록 피곤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재미를 붙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몸이 아파져 나중에 꼼짝달싹 못 하더라도 다른 방법은 몰랐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슬픔이 그 자리에 고여있다.
레이먼드 카버는 카프카의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를 깊이 이해하고 존경했다. 카프카의 시계는 어디에선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천천히 귓가로 가져간다. 재깍재깍 초침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