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 영향을 준 그 사람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그의 무엇을 알기에 안다고 하는 것일까?
흔히 말하는 그 사람의 외모나 스펙 같은 표면적인 정보가 가리어진다면, 혹은 그 조건이 사라진다면 무엇으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인가.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블라인드 테스트라도 한다면 뭘로 그를 식별해 낼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를 넘어서 혹시 흉측한 외양이라도 뒤집어쓴다면, 동화에 흔히 나오듯 괴물로 변하기라도 한다면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 나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그리하여 그 충격적인 소설의 첫 문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끔찍한 벌레 한 마리로 변해 있는 것을 침대 속에서 발견했다.
그럼 벌레가 된 나를 가족이라면 금방 알아볼까. 딱히 그렇지도 않다. 같이 산다고 해서 다 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여동생 그레테는 달랐다. 그는 그 벌레가 오빠라는 추측을 하면서 이것저것 테스트 해본다. 그레테가 시험해 본 방식은, 가장 단순한 것이었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누이동생은 오빠가 좋아하는 것을 시험해 보려고 여러 가지 음식을 골라 가지고 와서 그것을 낡은 신문지 위에 펴놨다. 오래되어 썩어가는 야채가 있는가 하면, 흰 소스가 주위에 말라붙은, 저녁 식사 때 먹다 남긴 뼈도 있었다. 건포도와 아몬드가 몇 알, 이틀 전에 그레고르가 맛이 없다고 한 치즈,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빵 한 조각, 버터를 바르고 소금을 뿌린 빵 이밖에 아마도 그레그르 전용으로 정해놓은 듯한 사발에다 물을 떠주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시작부터 암울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특유의 유머가 있다. 누이동생이 오빠가 먹던 상차림을 정성스레 가져온다면 자연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건 너무 확고한 믿음이고,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보다 더 한 낭비도 없다. 이건 테스트여야 한다. 벌레일까 오빠일까 사이의 망설임이 드러난다. 오빠가 좋아하던 것들 중에서 먹다 남은 것들, 버려져도 크게 손해 되지 않는 것들을 갖다 주지만 그릇만큼은 그레고르 전용으로 해준다.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다. 게다가, 먹는 데 쳐다보는 것은 아무리 벌레라 해도 좀 예의가 아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앞에서는 그레고르가 먹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급히 나가버렸다. 그리고 마음대로 즐겁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레고르에게 알리기 위해 밖에서 자물쇠까지 채웠다.
소설 속의 여동생과의 남다른 친밀함은 실제 카프카와 여동생 오틀라의 관계를 바라보게 한다. 카프카가 집에서 독립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고, 평생 편지를 주고받았던 오틀라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오빠보다 더 강하게 저항했다. 오틀라는 카프카의 여러 누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25세에 직업을 가졌고, 부모님의 집에서 벗어나기를 실행에 옮겼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흔하지 않게 혼자 보헤미아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자신의 삶을 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누이동생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했지만 오틀라는 스스로 원하는 상대를 찾았다. 카프카와는 이런 면모가 잘 통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그는 여동생의 이런 부분을 동경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뜻이 통했던 오틀라는 오빠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방을 마련해 주는 등 적극적으로 카프카를 도왔다.
연금술사 골목의 집을 마련해 주어 네가 지금보다는 나은 시간으로 인도해 주었기 때문이지.
-오틀라에게 보낸 카프카의 편지 중에서, 프라하 1917. 5.15
오틀라는 결혼하고 나서도 시댁의 농장을 경영하며 다른 이에게 기대지 않는 삶을 살았다. 1차 세계대전 전후 버니지아 울프와도 동시대를 살았던 오틀라는 이례적으로 자기만의 방을 마련했으며 사회적인 관습에서 벗어났다. 카프카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 강했으면서도 어떤 면에서 가장으로서의 삶에 연민도 있고, 또 어쨌건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감사를 완전히 져버릴 수 없었던 갈등도 있었던 듯하다. 여성이었음에도 오빠보다 더 먼저 과감하게 가부장제를 벗어난 것은 오틀라의 성격이나 기질의 차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막내라는 조건이 좀 더 모험을 시도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카프카는 그의 유언을 어겨 원고를 세상에 내보낸 막스 브로트와의 우정도 깊었지만, 가족 안에서도 깊은 내면을 보이고 의논할 수 있는 형제가 있었다. 평생을 고독하게 보냈고 외롭고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다정하고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