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의 폴 오스터로부터
"걷는 건 좋아하는데 혼자는 잘 안 나가게 돼."
창가의 햇살이 나른해진 오후 찻잔을 빙빙 돌리며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는 눈이 똥그래지며 달려든다. 바로 다른 친구가 법정에서 선고라도 내리듯 선언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본격적인 대화라는 것은 지금부터가 시작일까. 그 친구의 논리가 이어진다. "그건 걷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지. 걷는 걸 좋아한다는 건 그냥 아무 목적 없이 누가 있든 없든 그냥 나가는 거야. 걷는 게 좋으니까 목적지도 없이 나가는 거라구."
우리는 그날 진정한 걷기 그러니까 산책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 친구의 의견에 가까웠지만, 지나고 보니 혼자서는 잘 안 나간다는 친구는 아마도 같이 걷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뒤로 우리는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서울의 오래된 거리를 돌아다니곤 했다. 딱히 어디까지 정해놓지 않은 길을 찾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러 차를 마셨다. 좋은 시간들이지만, 그렇게 약속을 맞추는 일이 예전 같지는 않다. 약속을 정하기 보다 틈틈이 혼자 걷게 되는 일이 많다.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또 다음 산책을 기다린다. 온전히 떠오르는 생각을 좇아 그 흐름을 놓아두며 따라가는 걸음의 재미를 아는 사람들이 좋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문장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는 날엔 더욱 그렇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역시 산책의 고수였다. 그는 산책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한 모든 문학에 대한 관심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느닷없이 하나의 지붕, 자갈 위에 반사되는 태양의 빛, 길의 내음이 어떤 특별한 기쁨을 주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걸음을 멈춘 것은, 나보고 붙잡으러 오라고 유혹하는 데도 아무리 내가 보려고 해도 발견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내가 보고 있는 것의 건너편에 숨겨두고 있는 성싶어서 이기도 했다.
-<스완네 집 쪽으로> 중에서, 마르셀 프루스트
'아무런 관련도 없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머문다. 아무 목적 없이 나간다고 친구들과 떠들었던 말들과 연결이 된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발견해 달라는 길의 언어가 쓰여있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고 걸어갔었는지를.
밤산책에 대한 폴 오스터의 문장들이 있다. 브루클린에서 뿌리를 두고 활동하는 작가지만 그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머물던 시절이 있었다.
더블린은 대도시가 아니어서, 길눈을 익히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산책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돌아단고 싶은 충동이 나를 사로잡곤 했다. 열흘쯤 지나자 더블린 시내의 거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 더블린 지도가 그려졌다. 그 후 몇 년 동안 잠들기 전에 눈을 감을 때마다 더블린 시내가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졸음이 밀려와 의식이 반쯤 흐릿해질 때면 나는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가 그 시내의 거리를 지나가곤 했다. 거기서 뭔가 중요한 일이 나한테 일어났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아마 뭔가 굉장한 일, 내 깊은 내면과의 멋진 상봉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나는 어둠 속을 들여다보고, 난생처음으로 나 자신을 본 것 같다.
-<빵 굽는 타자기> 중에서, 폴 오스터
구글맵이 널리 퍼지기 전, 여행을 갈 때 종이지도를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가까운 동네를 세세하게 보려고 할 땐 직접 손으로 지도를 그렸다.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지도였지만 내 발로 이어진 세계였으므로 선 하나를 더 그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충동적이라고 표현한 오스터의 산책에 관심이 간다. 예측할 수 없는 충동에 맡기는 선택 속에서 떠도는 발걸음. 게다가 몇 년이 지나도 더블린의 시내가 떠올랐다고 하니 그 장소 그 시간 속의 밤산책은 분명 무언가를 그에게 남긴 것이다. 세상이 모르는 사이에 그 중요한 일이 나한테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고,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보았다고 썼다. 누구에게나 그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프루스트의 말처럼 '아무리 보려고 해도 지나치고 마는' 일상을 살아간다.
1916년 프라하성의 황금골목길을 걷던 카프카의 산책이 궁금해진다. 22번지 파란 벽에 작은 문이 있던 그 집까지 돌아오던 그 길. 그곳에서 그는 <시골의사>와 같은 몇몇 단편을 썼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잠깐 베를린에 살았던 때를 빼고는 거의 평생을 같은 지역에서 여러 하숙방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노동재해보험협회에서 일하면서 저녁이면 22번지의 불을 밝혔다. 퇴근 후에 새로운 하루가 다시 열렸다.
예전에 연금술사 골목의 손바닥만 한 집에서는 거의 새벽 3시 반까지 앉아있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어.
-오틀라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