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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방을 얻어야겠어

앨리스 먼로,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카프카의 하숙방

by 베리티

"아무래도 작업실을 얻어야겠어요."


어느 날 가족이 이런 말을 꺼낸다면 어떨까. 갑자기 위트 넘치는 소설가 커트 보니것의 말이 떠오른다. '만약 부모에게 상처 주려거든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것이 좋다.' 그 정도의 충격까지는 아니겠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들리지는 않을는지.


내가 듣기에도 허황된 소리였다. 구태여 작업실을 얻어야 할 까닭이 뭔가. 집이 있지 않은가. 쾌적하고 널찍하고 식당과 집이 있지 않은가.

-앨리스 먼로, <작업실> 중에서


누가 봐도 그럴만한 작품을 내놓은 -그러니까 수상을 한다거나 유명하다거나 하지 않은 이상 그냥 무명의 누군가가 작업실을 갖는다는 선언을 받아들일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일찍부터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를 넘어 또 하나의 산이 기다리고 있다. 노벨상까지 수상한 캐나다의 소설가 앨리스 먼로 역시 그랬다. 멀쩡한 집을 놔두고 굳이 작업실을 가져야겠느냐는 무언의 시선을 견디며, 어렵게 겨우겨우 마련한 공간으로 와서도 무수한 방해들을 마주해야 했다. 먼로의 단편에는 1960년대 작업실을 얻으려는 어느 여성의 고군분투가 그대로 담겨있다.


아무리 내가 쓴 글이지만 침묵한 공간과 저를 드러내 보일 미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건 글들이 스스로 한다. 같잖은 요구처럼 들리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친절을 베푼답시고 내게 건네는 걱정 어린 다정한 목소리가 그 침묵의 공간을 다 차지해 버린다. 참 대단하다, 좋겠다, 이야, 흥미롭다 등등 찬사도 참 가지가지다.

- 앨리스 먼로, <작업실> 중에서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 역시 'Monk's House'라는 작은 오두막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집의 방을 작업실로 쓰려고 했지만, 전망과 골목의 소음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남편이자 글쓰기 동반자였던 레너드의 도움으로 정원 끝에 작은 방을 마련했다. '사과나무가 있고 교회의 긴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에 자리한 작고 독립된 글쓰기 오두막. 표현이 멋져서 한참 시선이 머무는 문장이다. 울프는 이곳에서 외부의 방해 없이 의식의 흐름을 자유롭게 펼쳐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의 여러 작품을 썼다. 특히 잠금장치(a lock on the door)에 대해서 '방에 잠금장치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힘을 의미한다'라고 적었다. 잠금장치라는 것은 외부와의 차단을 뜻하는 물리적 환경일 것이다. 내면의 무언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잡음으로 채워지는 자리를 의식적으로 비워둬야 한다.


잡안에서 잡아끄는 온갖 일들에서 해방되는 것은 여성 작가들의 오랜 과제였다. 막상 작업실을 가진다 해도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수만 가지 방해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또 다른 형태의 집안일이 있었다. 카프카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원하는 출세라는 산을 마주해야 했다. 유대인 예식을 고집했던 보수적이고 엄격한 카프카의 아버지는 남부 보헤미아 지방을 떠나 프라하로 이주하는데, 이는 반유대주를 피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상인으로 출세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였다. 아버지의 계획 안에는 당연히 아들의 장래문제도 포함되었다. 카프카는 사업 성공에 전력 투구하는 가정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

카프카와 친밀하고 각별했던 여동생 오틀라는 세를 얻어 카프카가 지낼 방을 마련했다. 연금술사 골목에서 보낸 몇 달은 카프카가 가장 활발하게 작품을 썼던 시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골목의 사람들이 말하듯 고개를 들어라.
- 오틀라에게 보내는 카프카의 편지, 1917.4.22

카프카의 표현대로 연금술사 골목의 그 방은 '손바닥만 한' 공간이었고, '벼랑제비집'으로 불리기도 했다. 낮은 문들로 이어진 집들이 었지만, 사람까지 작은 것은 아니었다. 골목 너머 기다리고 있는 자신만의 성을 향해 언젠 고개를 들고 다닐 것이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들은 그 집을 알고 있다. 그 방의 여름을 기억한다.


내 마음에 새워진 집
내 침묵의 성당
매일 아침 꿈속에서 되찾았다가
매일 저녁 버리네
새벽으로 덮어있는 집
내 젊은 시절의 바람에 얼려있는 집

- 피에르 장 주브, <여름의 추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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