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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에 모퉁이 돌이 닳았다

프라하성 작은 황금골목길

by 베리티

황금을 꿈꾸는 성이 있었다. 16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루돌프 2세는 연금술과 신비주의에 빠져들었다. 곧 금을 만들어보겠다는 이들이 몰려들었다. 황제에게 고용된 연금술사들은 프라하 성 내 작은 집들에 살면서 납을 금으로 바꾸는 실험을 계속했다. 뾰족한 성채 안에 지어진 그 집들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영원히 빛나는 영광을 위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렇게 '황금의 작은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쉬울 것 없는 넉넉한 이들이 그 길을 기웃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화처럼 작은 집, 작은 문, 작은 창으로 이어진 동네를 찾아든 그들은 세상의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한 작은 자들이었다. 프라하성 황금소로에 모여든 그들은 황제의 손에 올려진 눈부신 돌을 상상하며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비추어보았다. 말 그대로 일확천금의 꿈.


세월이 흘러 왕가의 영광도 저물었고 집의 주인들도 바뀌었지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황금소로의 작은 집들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고, 연금술사의 사연들은 신화나 전설처럼 그곳에 떠돌고 있다. 특히, 오래된 돌길이 그들의 구두 바닥을 기억하고 있었다. 울퉁불통 제 각각 모양인 사각의 패치워크 돌길이 중세 이 거리의 주인들을 새겼다. 1916년 이 동네의 22번지의 주인도 그랬다.


날마다 해질 무렵 같은 시간이면 성큼성큼 돌길을 걸어왔다. 조금은 지쳐있고 느슨하게 머뭇거리며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지났다. 스치는 마찰과 미세한 흔들림 사이 반복되는 일상의 진폭은 오히려 돌들 위로 내려앉으며 균형을 찾았다. 매일 비치는 노을빛처럼 일정하게 다가왔지만 누구도 그 사람처럼 이 길을 온 적은 없었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눈길에 의해 프라하 구시가 모퉁이의 돌들이 닳았다고 썼다.

중세에 돌길이 만들어진 것은 비가 왔을 대 진흙탕이 되는 것을 막고, 아스팔트가 없던 시절 마차의 행렬을 돕기 위해서였다. 마차의 무게에 움푹 꺼지는 것을 막도록 좀 더 견고하고 구하기 쉬운 돌을 사용한 것이다.

구두 바닥에 닿는 거칠고 까끌까끌한 질감은 그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과 닮은 것이었다. 빨리 달리기엔 불편했기에 오히려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붕 떠있는 구름 위의 세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땅에 닿은 현실의 감촉이었다. 낮 동안 겪었던 직무의 압박감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향해가는 발소리였다.


나의 동네에 있는 공원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어본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한 밤 중에는 미세한 알갱이들이 가로등에 반짝인다. 바쁜 약속이 있을 때에는 매끄러운 길을 찾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에는 까끌까끌한 돌길에 발을 디딘다. 산책자들이 느끼는 '부드러운 매혹(Soft Fasciantion)'이 있다. 공원이나 덜 복잡한 길을 걸을 때 다가오는 가벼운 집중의 상태. 가벼운 마음 방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때때로 시간을 해체하고 끊임없이 과거와 기억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발걸음의 일정한 리듬으로 산책자들은 더욱 깊은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 땅에 발을 딛고도 나만의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 걸을수록 나만의 시선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카프카의 발걸음이 멈춘다. 파스텔풍의 파란 벽이 있는 22번지 집. 어둠 속에서 창에 불이 들어오면 오래전 잊혔던 황금빛 기억도 돌아왔다. 황금보다 더 반짝이는 영원에 닿을 수 있다는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어도 그 빛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래된 소도시에 서 있다.
작고 밝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이,
그 집들의 다채로운 유리들이 쳐다본다.
눈발이 흩날리는 작은 광장을,
달빛이 밝은 광장에서 걸어간다.

조용히 한 남자가 눈을 맞으며 앞을 향해,
그 남자의 커다란 그림자를
바람이 그 작은 집들 위로 옮긴다.

-카프카 드로잉 시전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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