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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케인 Apr 29. 2021

법의 복잡성과 오컴의 면도날.

약 3800여 년 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가 최초의 법전을 만들어낸 이래로 인간 사회는 발전을 거듭하며 그 복잡성을 더해갔다. 법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을 말해준다. 따라서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법 또한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법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범죄의 규정과 처벌의 경우, 사회가 복잡해지는 만큼이나 범죄의 종류와 방식 또한 고도화되고 다양해졌기에 각각의 범죄를 규정하고 처벌 방식을 정하는 것으로 법전은 그 두께를 늘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법전이 두꺼워진다고 한들 책 안에 현실을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나 법과 현실에는 격차가 있기 마련이며, 그 격차는 역설적이게도 법전이 두꺼워지는 만큼 커지게 된다. 쌓아놓은 블록이 많을수록 그것을 수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수정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을 수정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세스는 빨라지지 않았고, 따라서 법을 수정하는 동안에도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소개된 붉은 여왕의 이야기처럼,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된다. 특히나 기술과 사회의 발전 속도가 이전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 현대사회는 이런 현상에 더욱 취약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과 실제 사회의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으며, 정치적 프로세스는 이를 따라잡기에 너무나도 느리다. 


따라서 우리는 법을 기존의 방식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즉, 기존의 법이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었다면, 이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어야만 한다. 사회를 정밀하게 묘사하여 격차를 좁히려 하는 것보다, 격차가 발생할 여지를 제거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방식이다.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에 무언가를 빼서 해결하는 것보다 더해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https://neurosciencenews.com/subtraction-cognition-18195/) 이런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설명할 때에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리이다. 논리는 간단할수록 명확하고 진실에 가까워진다. 이처럼 법 또한 불필요한 요소가 많을수록 현상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법은 가장 간결한 언어로 존재하여야 하며, 사회 모든 요소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살인을 저지른 자는 징역 몇 년, 사기죄는 징역 몇 년, 이런 식으로 처벌의 수위를 하나하나 정해놓아서는 안된다. 대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자는 그 피해의 200%를 보상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어떠한 범죄 피해에도 적용될 수 있고 처벌도 유동적으로 가할 수 있어야만 피해자들 또한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처럼 살인은 징역 2년, 사기죄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이런 식으로 법적으로 처벌을 정량화한다면 수치의 객관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실질적으로 받은 피해보다 가해자가 적은 처벌을 받게 되는 순간 법은 그 의미를 잃게 되며 더 이상 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없게 된다. 


법조계는 오랫동안 두꺼운 법전을 밥벌이 삼으며 그 불필요한 복잡함을 자신들의 권위와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것은 권위도 자랑도 아니며 오히려 사회를 퇴보시키는 원인이다. 법전은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논리적이며 빈틈이 없어지고, 그 언어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울수록 생산적이고 두려운 법이다. 어떤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툭하면 무슨무슨 특별법을 만들어서 법 조항을 누더기처럼 기워버리는 행태는 멈추어야 한다. 그 대신, 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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