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돌봄 신청 안 했어? 아직 자리 있다니까 얼른 신청해. 안 하면 너 엄청 힘들걸."
그때 언니들 말을 들었어야 했다. 오늘도 스마트 워치의 걸음 수는 14,000을 훌쩍 넘어 있었다. 나는 평소에 5천 보도 안 걷는 사람인데, 1만 4천 보가 웬 말. 욱신거리는 다리를 두드리고 주무르며 한숨을 폭 쉰다. 아이 초등학교는 집에서 10분 거리고,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게 그렇게 힘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하는 엄마도 아닌데 굳이 돌봄 교실에 아이를 맡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등교 첫날, “돌봄 안 가서 좋아!” 라며 와락 안기는 아이를 보며 스스로 잘했다고 여겼다. 12시 땡 하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엄마들을 신데렐라에 빗대어 애데렐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애데렐라 3주 차를 지나고 있는 지금, 돌봄 신청 안 하길 정말 잘한 걸까,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
아침 8시 30분, 8살 아이와 6살 아이를 붙잡고 집을 나선다. 초등학교 교문까지 셋이서 걸어간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초등학교인 만큼, 등교 길에도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 애도 저 아이들 틈에 끼어서 혼자서 등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싶다가도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조그마한 초1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애만 혼자 보낼 순 없지 하게 된다. 교문에서 8살 첫째를 들여보내고, 이제 6살 둘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어야 한다.
6살은 유치원 등원 차량을 이용하면 수월할 텐데, 우리 둘째는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상전이다. 차량을 태우려다 등원 거부 전쟁을 치를 게 너무 무서워서 6살 짜리도 직접 데려다 드린다. 초등학교에 언니를 데려다주고 나면 엄마 다리 아파 시전. 요것도 못 걸어서 어떡해. 씩씩하게 걸어야 키도 크고 튼튼해져. 어르고 달래다 안 되면 업어주면서 집까지 온다. 걸어가기에는 유치원이 멀어서 차로 데려다준다. 둘째를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다시 집에 오면, 왔다갔다만 했는데 어느 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집에 와서 어질러진 집 정리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이른 점심 먹고, 한숨 돌리면, 4교시 끝나고 방과후 컴퓨터 수업도 끝날 시각이다. 호다닥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향한다.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오후 간식을 먹이고,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게 하다가 방과후 피아노 수업으로 들여보낸다. 이러고 나면 이번엔 둘째 유치원 하원 시간. 다시 또 후다닥 차로 둘째를 데려오고, 방과후 수업이 끝난 첫째를 데려온다. 그러면 요즘 둘 다 푹 빠져있는 태권도에 데려다줄 시간. 태권도 학원이라도 차량을 이용할까 하다가, 역시나 10분 거리인데 차량비 3만 원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며 또 그냥 데려다준다. 데려다줬으니 1시간 뒤엔 또 데려와야 한다. 이렇게 오후 시간이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것으로 다 채워진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서, 동네 언니들이 왜 그렇게 나를 걱정했는지 백번 알 것만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라떼는 엄마 없이 그냥 혼자 학교 오가고, 동네에서 친구 만나면 놀다 들어가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이를 너무 과보호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 아이와 관련된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떠올리며 불안한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낫지, 한다.
요즘 핫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주인공이 막내 아이를 사고로 잃는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 엄마는 죽은 아이의 맨발을 만지며 “우리 아기 발이 이렇게 차서 어떡해.” 하고, 카메라는 자꾸만 그 작디작은 발을 클로즈업하는데, 그걸 보는 내 눈에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웬수 같은 상전이어도 우리 애들도 아직 저렇게 발이 작은데, 좀 더 커서 나만큼 큰 발로 성큼성큼 내 품을 벗어날 때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줘야지. 이렇게 힘들 날도 생각만큼 길지 않을 거야.
오늘도 동네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너 방학땐 어떡할래? 여름방학이 한 달 반이고, 겨울방학은 두 달이야.”
몰라, 언니. 방학 땐 그때의 내가 또 후회하면서 어떻게든 하겠지 뭐. 언니 있지. 나 초등학생 때 가정환경조사서 장래희망 쓰는 란에 “엄마”라고 적어서 낸 적이 있었어. 일 안 나가고 집에서 따뜻하게 맞아주면서 간식 챙겨주는 친구 엄마가 너무 좋아서. 그러고 보면 난 지금 장래희망을 이룬 거야. 힘들어도 내 꿈을 좀 더 누려 보려고. 내 딸은 장래희망란에 엄마라고 적진 않았으면 좋겠어. 힘들고 어렵고 불안할 때,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엄마를 의지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해. 지금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아이들이 비빌 단단한 언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견딜 만 해.
이런 말들을 꼴깍 삼키고, “걱정해줘서 고마워, 언니.” 했다. 매일 밤, 다리 아프다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1년일지도 모른다. 1만 4천 보를 걷고, 운전기사 신세를 면치 못할 지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 초1 엄마로 살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