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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Sep 06. 2023

아이를 따라 느리게 걷기

나는 성질이 좀 급한 편이다. 속 터지는 걸 못 참는달까. 그래서 아이들과 어디를 갈 때도 "아이고, 빨리 와." 를 입에 달고 다닌다. 빨리빨리 민족의 충실한 일원이다. 그런데 어제 책 《취향육아》에서 이런 부분을 읽었다.



사실 아이는 느리게 걷기의 대가였다. 익숙한 곳에서는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길가에 늘어선 이름 모를 자동차들을 보느라 시속 1mm의 속도로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나는 무료함에 하품이 나고 목이 말랐다. 그 유명한 쾰른 대성당을 등지고 앉아 길섶의 하수 시스템을 유심히 보는 아이를 끌어내 성당의 역사를 읊어주고도 싶었다. (...) 육아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혹시 어른의 보폭과 성미를 아이에게 보채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본다. 아이는 이방의 땅에 갑자기 떨어진 여행자다. 불과 며칠, 몇 달, 몇 해 전 밀쳐지듯 여기에 왔다. 위대한 존재가 되기 위해, 부모가 바라는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지어진 대로 '살아내기 위해' 무수한 적응을 겪어내고 있다.



이 문장들을 읽고 나서 생각했다.



맞아, 아이의 걸음은 느릴 수밖에 없지. 일단 다리가 엄청 짧잖아? 발도 작음.



게다가 아이가 급할 일이 무어야. 의무라는 게 없는 나이. 곧 저녁 먹을 시간이라는 게 뭐가 중요해. 지금 나는 배가 안 고픈데. 엄마나 빨리 먹이고 빨리 재우고 싶어 안달이지.



생각해보면 아이만큼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존재도 없네.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아이들. 카르페 디엠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존재들이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네. 왠지 경이롭다.



그래서 아이가 걷는 속도대로 걷도록 재촉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속에선 '어유, 빨리 가자, 엄마 육퇴하고 싶다!' 라며 외쳐 댔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백조마냥 겉으로는 느긋한 척 하면서.


그랬더니 아이는 편안해 보였다. 그제야 아이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제 시간을 살아가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나 어느 다른 누구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건 얼마나 용기 있으면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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