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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Oct 04. 2024

걸음마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 24가을

 "선생님, 유하 시인 별명이 0킬로그램의 요정이래요. 왜인지 아세요?"

 "몸무게가 100kg인가 보네요."

 "선생님은 바로 아네요? 저는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어요."

 지금은 디지털체중계가 흔한 시대라서 나처럼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분이 많을 것이다.

 기계식 체중계, 일명 목욕탕 체중계는 체중계의 바늘이 한바퀴 돌아 다시 0에 오면 100kg이었다.

 어릴 때 기계식 체중계를 사용했던 세대임에도 나는 0킬로그램의 뜻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벨 없는 기본 쇠봉을 들거리는 팔로 들어올리며 나는 PT선생님을 향해 멋쩍게 웃었다.


 나에게 2021년은 통증의 해였다.

 허리 디스크가 터지자 일상생활이 불편과 위태로움으로 뒤덮였다.

 누워도, 앉아도, 서서도 통증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의사선생님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절름발이가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절름발이는 싫었다.

 수술하지 않고 허리 디스크를 치료할 방법은 없는 지 열심히 찾았다.

 그렇게 찾아낸 해답은 '운동'이었다.

 

 나는 운동이 싫었다.

 싫은 이유는 명확했다.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운동을 잘 한 적이 없었다.

 체력장에서는 끝에서 일등을 다투었고,

 체육은 전체 교과 평균 점수를  늘 갉아 먹었다.

 고등학교 때 무용 선생님은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녀의 연예인이었다.

 유연성 없는 몸으로 삐걱거리는 나를 보며 무용 선생님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부모님은 밖에서 뛰어 놀 시간에 책상에 앉아서 책 한자라도 더 보는 게 낫다며 체육은 무시하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굳이 못하는 것에 노력하느니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1년은 내 몸의 비상사태였다.

 운동이 싫고좋고, 잘하고못하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헬스장 PT를 끊었다.

 그때 나의 각오는 자뭇 결연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임전무퇴의 각오로 운동한다!

 헬스장 비용만큼은 불법적인 일 빼고 무슨 일이라도 해서 마련한다!

 그런 나의 운동 목적은 걸음마였다.

 아프지 않게 걷기, 신호등 시간에 쫓기지 않고 걷기.

 그렇게 2022년 가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가을 나는 달리고 있다.


인생공부

유하


체중계의 바늘이 0을 가리키는 내 몸무게에 깜짝 놀라, 당장 시작한 벤치 프레스

하나 하나 늘려가는 바벨의 중량 덕분에

풍선 바람 나가듯, 빠지는 살도 살이지만,

신기하여라 그 무심한 쇳덩어리들이

손 시린 인생 공부를 시킨다


새로운 무거움을 접하며

비로소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전 단계의 무게에서, 깔짝깔짝 역기를 농락하던 난,

얼마나 초라한 비곗덩어리에 불과했던가

바벨을 하나하나 늘릴 때마다

나의 자만은 살이 빠지듯

내 몸을 서서히 빠져나간다


가령, 바벨을 늘리지 않고

그다음 단계의 무거움을 짐작하는 자들처럼,

살고 있는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듣는 귀가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이 들어 올리는

타성에 젖은 중량의 권위로

쉽게 잴 수 있다고 믿는 그들에게

새로운 중압감의 고통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일쯤이야

뻔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바벨을 하나씩 늘리다 보면,

세상에 뻔한 이야기란 없다

당장 올려놓은 낯선 쇳덩어리의 무게가 나를 압사시킬 듯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뻔한 것은,

조금만 무리하게 바벨의 무게를 늘려도

쉬 짓눌려버리는 우리 자신들이다

지금 보잘것없는 무게에도 쩔쩔맨다고 하여

그를 무지렁이라 비웃지 마라

새로운 무거움의 고통을 감수하며

하나, 하나, 바벨을 늘려나가는 자만이

결국 새로운 세계를 견딜 수 있으리니!

하나앗 둘......

하나아앗 두울......


*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덜컥 되고 나니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는 시행 착오 기간이 있었어요.

 브런치는 발행이라는 형식을 취하다 보니 주제도 명확해야 할 거 같고, 결말도 확실해야 할 거 같고 말이죠.

 하지만 제가 브런치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ing인지라 이것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시즌제를 생각해 냈답니다.

 봄, 가을은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를, 여름, 겨울은 '책을 읽는 중입니다'를 연재하며 꾸준히 소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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