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당연하고,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렇다. 일을 해도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고 공부를 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뭔가를 배워도 그때뿐이라서 그런 걸까. 능력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결국 나를 탓해야 하는 거겠지만, 쉽게 받아들이다가도 가끔 화가 난다. 그리고 화가 나면 내가 아닌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탓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옆 사람을 탓하고, 그 윗사람을 탓하고, 그의 소속단체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법을 탓하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가다보면 내가 너무 초라해져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 같다. 무력감은 덤으로 따라온다. 결론은 아무것도 아닌데다 능력도 없는, 초라하고 무력한 나만 남는다.
마음 가는대로 기분 좋게 차려입고도 가라앉는 날이 있다. 차려입기는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입었는데 옷 속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부조화를 느낄 때가 있다.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간다. 예뻤던 옷차림이 서서히 잿빛으로 물드는 기분이다. 아무리 인상해도 최저임금은 최저일 뿐이고 당장 커피 한 잔 사서 마시는 것도 고민되는 마당에 옷이 예쁜 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지는 것이다. 어쩌다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기분 좋은 식사를 해도 돌아오는 카드결제일이면 그 식사의 기쁨이 후회로 변해버린다. 내가 입을 수 있는 가장 멋진 옷을 입고 가장 볼품없어지는 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