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선물 같던 달콤한 착각

by 깨알쟁이

때로는 착각은 우리를 웃게 만든다. 착각이 진실이 아니고 그저 착각이었음을 느꼈을 때도 우리는 다른 모양으로 웃었다. 그래도 한 시간 동안은 진실인 줄 알고 기뻤다며 아쉽다고 말했다. 내심 몰래카메라이기를 아니 트루먼쇼 2026 in Seoul이기를 바랐지만 삶은 영화도 소설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며 다음을 기약하고 계획한다. 착각이 팩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1차 피검사가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 토요일에 임테기를 한번 했다가 단호박 한 줄을 보고 두려움만 쌓여 막상 오늘 아침에는 해보지 않았다. 처음이 아니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 현실을 맞닥뜨리고도 발걸음은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싫을 것 같아서 애써 피했다. 그리고 병원에 가는 것 말고 또 다른 외출의 목적을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호텔 라운지 가기!


사실 우리 부부는 호캉스나 여행을 그렇게 즐기지도 않고 호텔에서 밥을 먹기에는 비용에 비해 내가 너무 소식좌라 주로 집에서 해 먹거나 합리적인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굳이 호텔에 가고 싶었다. 가야만 했다.


지난 1차 이식 날의 연장선이다. 새로운 자극으로 상실감과 슬픈 마음을 잠시나마 모르는 척 덮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성수에 가서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팝업 매장들에 들렀고 처음으로 두쫀쿠도 사 먹었다. 좋지 않은 결과를 듣고 난 후 우울한 감정을 치유하기에 적당한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오늘은 그곳이 호텔 라운지가 되었을 뿐 이유는 같았다. 며칠 전 스레드에서 '하얏트에 가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썰이 도는 것을 보고 우리는 남산으로 향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그곳에 가서 정기를 받으면서 또 한 번의 좌절감을 혹시라도 느끼게 되면 바로 덮어버리고 싶어서였다.


병원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데에 40분 정도 소요되었고 그 사이에 병원 어플에 피검사 결과가 떴다. 지난번에는 hcg수치가 0.2 mIU/mL도 되지 않아 아예 몇 인지도 안 알려줬다. 그냥 <0.2라고만 나와서 '아, 1차에는 역시 힘들구나.'라고 깨달았다. 혹시나 싶어 병원에 문의드렸지만 역시나 결과는 음성, 비임신 수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수치가 몇 이든 일단 나오면 통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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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6이 나오고도 무려 한 시간 동안 나는 내가 1차 피검사에 양성으로 통과한 줄 알았다.

물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본 나의 착오이자 착각이었지만, 이 착각 속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간호사분들은 늘 1차 피검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HCG 수치 20 미만으로 나오시면 지금 쓰고 있는 약 바로 다 끊으시고, 다음 생리 2~3일 차에 내원해 주세요."

그래서 나는 1차 때 0.2 mIU/mL도 안 나왔다고 하길래 이걸 기준점으로 잡고, 간호사분들은 20을 기준점으로 잡길래 0.2=20? 그러면 100을 곱하는 건가? 100을 곱한 게 진짜 내 수치인가? 싶었다.. 하하하

앞뒤좌우 따지지 않고 나 혼자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고 논리를 짜낸 거다. 나만의 완벽한 오답노트로.

아무쪼록 그리하여 오늘의 수치 1.6에다가 나 혼자 100을 곱해서 내가 160이라는 1차 피검사 결과를 얻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좋아하면서 2차 더블링 잘 돼야 하는데.. 하면서 괜한 걱정을 앞서서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때, 이웃 블로거이자 같은 병원에서 최근에 1,2차 피검사를 통과한 분의 블로그에 다시 들어가 봤다. 그분의 수치와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웬걸, 그분의 수치는 나와 다르게 '178'이라고 되어 있었다. 음 나랑 계산 원리가 다른가? 같은 병원인데 원장님이 달라서 업데이트하는 사람도 다른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계속 꾸며갔다. 그만큼 이번 결과가 나에게는 많이 간절했으니까.


이제야 이상하다고 느꼈다. 행복한 착각, 희망회로를 돌린 지 한 시간 만이었다. 병원에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아 캡처해서 여쭤봤더니 "안녕하세요~ 1차 피검사 결과는 1.6으로 비임신 수치이십니다."라고 친절하게도 대답해 주셨다. 하하 바보야 100을 왜 곱하니 저기다가?


나 임신 아니래.

남편에게 머쓱하게 전했다. 혼자 뭐 한 거지? 남편이랑 같이 설레고 기뻐하고 기대했는데 한 시간 만에 환상이 깨졌다. 한편으로는 눈물이 안 나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좋은 거 즐기다가 알게 된 것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이라도 기뻐했던 게 어디냐며 우리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계획하게 되었다. 그렇게 착각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현실로 복귀하였다. 다시 임신준비생으로..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지만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함께 믿어준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그리고 스스로 착각한 탓에 기분 전환이 더 필요하다며 백화점 아이쇼핑하자고 어린애처럼 졸라댄 나를 묵묵히 데리고 다녀준 것도 높이 산다. 또한, 결론은 비임신으로 동일하지만 지난번보다 수치는 올랐으니 그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다음 3차 이식에 앞서 우리는 PGT검사를 진행하려고 한다. 교수님의 적극 권유이기도하고 우리 또한 동의했다. PGT 검사를 반드시 해야 하는 나이대에 아직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등급의 배아를 2번이나 반복하여 착상에 실패한다는 것이 본인도 의문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는 또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예정이다.


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서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임신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시험관을 했던 지인들은 대부분 2차 안에 되곤 했는데 문제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2차에도 안 되었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게 내 인생인걸, 어쩌겠어.. 취업도, 연애도, 작게 주어진 기회들도 절대 쉽게 내 손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항상 남들보다 오래 걸렸고 몇 배는 더 실패했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착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를 한없이 내려놓게 한 시간들이었다. 그 지난한 때를 잠시 잊었던 것 같다. 맞다, 나 매번 쉽게 얻지 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나의 실패를 경험하였지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찾는다. 착각은 애석하게도 틀림없고 변함없이 착각으로 끝났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 마음속에 함께 품고 있던 절실함을 느꼈고 그 마음을 경험해 봤기에 재도전에 있어서는 더욱 진솔하고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울지도 않았다! 뭐 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뭐!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



아가야, 너도 엄마 아빠처럼 느긋하구나?
괜찮아. 모두가 알레그로일 필요는 없어.
우리 가족은 이제부터 아다지오 패밀리야.
대신 건강하고 즐겁게만 와주라.
함께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 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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