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낳은 괴물, 나는 왜 그리 불안할까.

by 깨알쟁이

D-Day가 왔다. 2차 이식.

요즘 잠을 푹 자지 못해서 어젯밤엔 특별히 멜라토닌을 한 잔 마시고 잤는데, 역시나 5시에 한번 7시 반에 한번 깼다. 병원에 가려면 8시 반에만 일어나도 충분한데 아무래도 몸이 많이 긴장한 것 같다.


1차 이식 때를 돌이켜보면 기대와 설렘만 가득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외에 큰 이슈는 없었지만 나팔관조영술, 난자 채취, 자궁경을 거쳐 드디어 시험관의 꽃인 '배아 이식'을 한다는 생각에 도전 의식과 긍정적인 긴장감이 돌았던 것 같다. 그 단계까지 올라오기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순탄하게 올라왔다고 생각하며 모든 게 감사했다. 1차에 되는 건 정말 로또와도 같다고들 하지만 나는 뭔가 잘 될 것만 같았고 금방 졸업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1차 이식이 기대와는 달리 비임신으로 빠르게 종결이 되고 딱 1달 만에 2차 이식의 날이 밝았다. 한 달 동안 나는 멘탈 관리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 주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나보다 훨씬 심한 케이스(화학적 유산, 계류 유산 등 정말 많은 이슈들이 있다)들을 겪은 분들에 비하면 이식 실패는 내 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걱정인형이던 나는 모든 게 불안해졌다.


그 와중에 취업도 됐다. 근데 그것도 나에게는 또 하나의 불안한 포인트였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민폐 아니야? 임신 준비 중인데 무슨 취업?'

그 누군가들의 간접적인 의견들을 접하고 나니 미칠 것 같았다. 임신이 되었으면 싶다가도 빨리 되면 안 될 것 같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기괴하다고 느끼는데 어디에도 말하지 못해 괴로운 날들을 지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안도와 긴장도가 올라가 있었다. 그건 고스란히 수면의 양과 질로 나타났다. 약의 이뇨작용 때문도 있겠지만 새벽 3~4시만 되면 한 번씩 깨서 화장실에 가야 하여 통잠을 잘 수 없었다. 한동안 안 꾸던 꿈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전전전 직장 동료들이 나온다거나 유년 시절 나를 괴롭혔던 같은 반 친구들도 갑자기 등장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늘까지 왔다. 2차 이식날인 오늘은 그 불안과 긴장이 피크를 찍었다. 1시간 정도면 가는 병원에 1시간 반 전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보챘다. 정말 다행히도 병원 근처에 다다랐을 때 도착 예정 시간으로부터 15분이나 지연이 돼서 선견지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에 없던 성질머리로 남편을 들들 볶았다. 빨리 좀 일어나서 준비하라고 보채고, 준비할 시간도 모자란데 TV를 켜고 있는 남편을 째려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삼신할머니들께 드릴 사탕을 한참 동안 못 찾아서 짜증이 치솟기도 했다. 결국 찾게 된 사탕들은 책상에 두고 와서 드리지도 못했지만.


병원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늦지 않게 수술 상담실에 도착했는데, 주말이기도 하고 연휴 전날이기도 해서 사람이 역대급으로 많았다. 오죽하면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가운으로 갈아입는 탈의실에 들어갈 때 3명을 동시에 입장시켰다. 그리고 회복실에서도 침대에 거의 40분 이상 누워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 오만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자꾸 지난번과 비교하는 나를 발견했다. '지난번에는 조용했는데.. 지난번에는 빨리 들어갔는데..' 생각해 봤자 소용없는 것들인데 불안감은 점차 모든 것에 대한 불평으로 번졌다.


다행히 이식은 잘 마쳤다. 새로 바뀐 주치의 교수님도 시종일관 미소를 띠며 나를 안심하게 해 주셨고 지난번보다 좋은 배아를 좋은 상태에 이식하는 거라고 잘 될 거라고 (나만 믿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식을 진행해 주셨다. 슬의생 전미도 선생님 같은 우리 교수님은 순조롭게 이식을 잘 마치시며 나에게 도리어 수고하셨다고 해주셨다.


병원에 늦지 않게 잘 도착했고, 조금의 기다림은 있었지만 이식도 성공적으로 잘 받았다. 어떤 분들처럼 주사를 맞으러 설 연휴에 나올 일도 없고 연휴 지난 다음 주에 1차 피검사하러 내원하면 된다. 근데 여전히 나는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쩌지?'

'대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내 주변에서는 다 2~3번째 안에 됐는데 3번째도 안 되면?'

'3월부터 출근인데 병원 다닐 시간이 되려나? 어쩌지?'


그렇게 저녁까지 불안이 짜증과 불평이 된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다 결국 터져버렸다. 저녁으로 등갈비김치찜을 한다고 등갈비 뒷부분에 칼집을 내주다가 서러움이 폭발했다. 병원에 함께 다녀온 남편은 오후에 파마와 커트를 하러 미용실에 갔고, 로또를 사서 집에 복귀하는 일정이었는데 세차를 하고 온다는 것이다. 세차도 물론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혼자 장보고 등도 못 펴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배고픈 나는 생각 안 하고 본인 볼일 본다고 늦게 온다는 게 괜히 심술이 나고 서운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세차든 로또든 본인만의 일은 아닌데 말이다. 그 순간에는 '나는 저녁을 늦게 먹고 싶지 않아. 근데 네가 늦게 먹는다고 지금 나까지 늦어야겠니? 왜 너는 다 네 맘대로 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꺼이꺼이 요리하다가 울면서 훌쩍거리니 거실에 있던 남편이 와서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남편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 자신이 싫어져서 더 서러웠다. 자낳괴가 아니고 불낳괴같았다. 불안이 낳은 괴물. 그래도 한참을 소리 내서 울고 나니 조금 시원해졌다. 불안한 마음도 손을 써서 요리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 휘발된 것 같기도 했다. 오늘 밤 푹 자고 일어나 불안을 싹 다 보내버리고 싶다.


남은 2026년에 나는 시간관리도 체력관리도 아닌 불안 관리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상상하고 걱정하는 것에 97% 정도는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너무 많이 그려보고 떠올려보고 부정적인 축에 서서 시종일관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느덧 그런 사람이 되었다. 무시무시한 불안으로부터 잘 헤어 나올 수 있기를, 더 좋은 다른 감정이 나를 뒤덮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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