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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lbi Nov 14. 2020

주말의 아침


주말 아침은 대게 이렇다. 이른 아침, 6시나 7시쯤 문을 따고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깨 철수를 맞는다. 누운 자리 그대로 눈만 뜨고 “돼지”, “왔어?”, “회식했어?”와 같은 한두 마디로 그의 분위기를 살핀다. 지난밤 그에게 별일이 없었기를, 행여 술 취한 사람이 시비나 걸지 않았기를, 사람들이 그에게 친절했기를 바란다. 어떤 날 그는 외투도 벗기 전에 침대맡에 서서 여전히 반쯤 잠결인 내게 지난밤에 대해 들려준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누가 너무 취했었다, 네가 좋아하는 모델이 왔었다…. 또 어떤 날은 클럽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꺼내 자랑한다. 그것들은 어느 파티의 포스터이기도 하고, 누군가 떨어트리고 간 반지이기도 하고, 클럽에서 맞춘 티셔츠이기도 하다. 그러고는 별일이 없으면 나는 다시 까무룩 잠이 들고, 철수는 샤워를 한 다음 부엌 식탁에 앉아 맥주와 편의점 햄버거 따위를 먹으며 한동안 핸드폰을 만진다. 그리고 오전 10시가 다 돼 다시 눈이 떠졌을 땐 옆에 그가 잠들어 있다. 휴대폰과 에어팟 한쪽이 그의 머리맡에 아무렇게나 뒹군다.


이상적인 아침이라면 나는 그즈음 일어나 세탁기를 돌릴 것이다. 세탁물은 언제나 있고, 주말 오전에 빨래를 하면 더욱 주말 기분이 난다. 잠이 얕은 철수는 작은 기척에도 깨기 때문에 몇 시간 동안은 살살 걸어 다닌다. 그리고 철수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부엌에 앉아 핸드폰을 본다. 먼저 철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켜고 그가 지난밤에 찍은 것들을 넘겨본다. 어두운 클럽 안, 함께 일하는 직원들, 아무개 DJ 공연 영상, 팔을 공중으로 쳐든 사람들, 그리고 회식 자리 고깃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얼굴들…. 나는 그중 철수가 집에 오는 길에 찍은 것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가 오늘은 청화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왔는지, 폴리텍을 지나서 좁은 골목 지름길로 왔는지, 그가 올린 사진을 보며 그의 동선을 따라간다. 동이 트기 시작한 거리, 건물과 간판, 그림자들, 벽의 낙서, 이상하게 난 길가의 풀, 오토바이… 그런 것들을 보며 걸어왔구나?


하릴없이 집안을 서성이다 보면 빨래가 끝난다. 빨래를 널고, 설거지가 쌓였으면 설거지를 하고, 되는대로 집안을 정리한다. 그러다가 중간중간 살그머니 방에 들어가 자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제멋대로 엉긴 머리칼, 가늘게 감은 두 눈, 볼과 베개 사이에 기도하듯 포갠 두 손, 그리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얄쌍한 발은 양말을 신고 있다. 웃음이 난다. 추우면 양말부터 찾아 신는 버릇, 철수는 샤워를 다 하고 새 양말을 꺼내 신는다. 잠옷 바지 밑단도 반드시 양말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 폼을 보면 난 항상 웃음이 난다.


방안은 커튼을 쳐 놔 어둑하지만, 문 틈새로 약간의 빛줄기만 들어와도 금세 밝아진다. 밖에서는 이따금씩 소음이 들려온다. 집은 어느 정도 정돈이 됐고, 이제 그가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잠이 얕은 그는 곧 일어날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곯아떨어진 얼굴을 보면 밤새 일한 고단함도, 앞날에 대한 염려도, 먹고 살 걱정도 뒷전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한 아침이다.


2019. 0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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