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럭셔리 스포츠카를 만든 이유
테슬라는 환경쟁이들이나 타는 찌질한 소형 자동차가 아니다
- 스캇 맥스웰 -
전기차는 오래된 발명품입니다.
혁신적인 최신 첨단 발명품이라는 현재의 이미지와 달리, 최초의 전기차는 무려 1835년에 탄생했습니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1885년에 발명됐으니, 그 역사는 오히려 내연기관보다도 오래된 겁니다. 하지만 1900년대 초 텍사스에서 다량의 원유 매장지 발굴로 석유 가격이 급락하고 내연기관의 대량생산체제가 갖춰지면서, 내연기관차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반면 전기차는 연료 효율과 충전 시간 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며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됐는데요.
누군가 패자에겐 영광 대신 치욕만 남는 법이라고 했던가요. 전기차는 ‘극단적 환경운동가들이나 타는 작고 약한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됐습니다. 배터리 성능의 한계로 오래 주행하지 못하며 많은 사람을 태우지 못했기에, 골프카트 같은 소형 단거리 이동수단으로만 쓰인 겁니다.
이런 이미지를 깨부순 것이 2008년 출시된 테슬라의 첫 제품 로드스터(Roadster)였습니다. 로드스터는 우리가 흔히 타는 세단이나 SUV가 아니었습니다. 무려 10만 9,000달러에 달하는 럭셔리 스포츠카였는데요.
놀라운 것은, 단번에 전기 모터로 내연기관에 필적하는 성능을 구현해냈다는 겁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4초가 채 걸리지 않았고, 최대 주행거리는 약 321km, 최고 속도는 시속 200km에 달했습니다.
자연히 로드스터는 출시된 즉시 뜨거운 화제가 됐다 전기차라고는 믿기지 않는 주행감각과 성능 덕에 로드스터는 ‘최우수 발명품상(Time)’, ‘가장 광고에 걸맞은 성과를 올린 새로운 자동차상(Forbes)’ 등 많은 상을 휩쓸게 됐습니다. 또 첫 제작된 100대의 로드스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지 클루니와 같은 유명인사들에게 먼저 판매됐고, 이들은 자진해서 로드스터의 홍보 대사로 나서주었습니다.
로드스터는 전기차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전기차는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이미지를 깨고, 누구나 선망하는 친환경 슈퍼카를 만들어보인 겁니다. 로드스터 이후, 일론 머스크는 프리미엄 세단인 모델 S($78,000~), 프리미엄 중대형 SUV 모델 X($83,000~), 보급형 세단 모델3($35,000~), 보급형 SUV 모델 Y($39,000~)를 순차적으로 계획해 내놓습니다. (S, E, X, Y라는 이름으로 연상되는 ‘SEXY’에서, 전기차 브랜딩에 대한 일론 머스크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로드스터 이후 차례로 출시되는 테슬라의 전기차들은 자연스레 섹시한 프리미엄 IT제품의 후광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테슬라가 Mass 타겟의 저렴한 보급형 세단으로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지금과 같이 애플에 비견되는 최첨단 프리미엄 IT 제품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테슬라와는 정반대로 보급형 모델로 시작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바로 현대자동차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현대차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택시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베이징시에 약 4만여 대의 택시용 엘란트라를 공급했고, 이는 베이징시 택시 전체 7만여 대 중 무려 절반을 넘는 수량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 소비자들의 머릿속엔 ‘현대차 = 택시’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습니다. 세상에 자기 돈으로 택시를 구매해서 운전해 다니고 싶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덕분에 일본차, 독일차와 같은 고급 수입차의 이미지는 물 건너 가게 됐고, 현대차는 저렴한 중국차들과 가격 경쟁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물론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기에, 테슬라가 보급형 모델로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현대차와 동일한 낭패를 봤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드스터라는 럭셔리 모델로의 시작은 전기차의 낡은 이미지 혁신에 있어 분명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테슬라가 첫 제품으로 럭셔리 스포츠카를 만든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렴한 가격의 세단이나 SUV를 만들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히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겠죠. 더 비싸고 성능도 뛰어난 럭셔리 제품은 만들 수 있는데, 저렴하고 낮은 성능의 대중품은 만들 능력이 없다니요?
테슬라가 로드스터의 개발을 시작한 2000년대 중반의 상황을 떠올려보죠. 테슬라는 지금과 같이 20조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이 아닌, 소규모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자동차를 대량으로 양산할 대규모 설비와 공장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거의 모든 제조과정을 기계가 아닌 수동 작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했기에, 대규모 물량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불가했습니다. 포드나 GM같은 전통 자동차 제조사들과 같이 대형 설비를 갖추고 수 십, 수 백 만대를 만들어 제품당 고정비를 낮추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누리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테슬라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판매한 로드스터는 총 2,500대에 불과했습니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드는 소량 생산 제품이 과연 저렴할 수 있을까요?
결론은 보급형 세단이든 럭셔리 스포츠카든 무엇을 만들든지 간에, 테슬라 첫 제품의 원가는 구조상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스포츠카의 가격으로 아반떼를 파는 것이 가능할까? 가격이 비싸다면, 그에 상응하는 디자인과 성능을 제공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테슬라의 첫 제품은 보급형 세단이 아닌 럭셔리 스포츠카가 된 겁니다. 결국 로드스터는 테슬라에게 가장 탁월한 선택이면서,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훗날 처음 로드스터를 만든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회상합니다.
혼다 시빅 전기차가 아무리 멋있든지 간에
그걸 10만 달러를 내고 살 사람은 없다.
- 일론 머스크 -
Reference
- 테슬라 공식 홈페이지
- Tesla Motors (찰스 모리스, 2015)
- 택시 3대중 2대는 현대차(국민일보,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