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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an 26. 2024

책 밖에 길이 있다.

이제는 책을 덮고 세상에 나가야 할 때


책 속에 길이 있다.

흔하게 쓰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통하는 건 딱 20대가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30대부터는 사회에서 직접 부딪히며 책에서 배운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거든요. 책이 지도라면 길은 세상 속에 있다는 말이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10대에는 육체가 자라고 20대에는 정신이 자라며 30대에는 사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고 40대에야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10대에는 정신없이 뛰고 구르며 체력을 쌓고 20대에 공부를 하며 사고의 지평을 넓혔으면 좋았겠지만, 한국 교육의 현실은 그렇지 않죠. 10대에는 입시공부, 20대는 취업 준비에 열을 쏟다 그만 몸이 고장 나 버리는 것 같지 않나요? 저를 포함해 30대 친구를 여럿이 몸 어디 한두 군데가 고장 나고 있거든요.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로마인의 성장단계에 따르면 삶의 가치관은 20대에 정립되는 것입니다. 배움이 실제로 적용되는지 검증하려면 현실에 부딪혀야 합니다. 자연스레 30대가 되면 시행착오가 많아지고 생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저도 30살이 넘어서는 부쩍 세상이 배운 것과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10대에 학교에서 정직하게 살라고 배웠습니다.

20대에 앞으로도 정직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30대가 되어보니 정직하게 사는 게 손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럼에도 정직하고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에서 늘 내 가치관만 앞세우고 뻣뻣하게 굴 수는 없으니 유연하게 상황에 맞추면서도 가치관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거짓말하고 허세 부리고 헛소리하는 사람들 꼴 보기 싫습니다. 그런데 누가 거짓을 말하고 실적을 부풀리고 은근슬쩍 기만하는지 알려면 내가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럴싸한 말 속에서 거짓을 가려내야 하고 백 마디 헛소리 중에서 쓸만한 한 가지를 건져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사회에서는 예의 바르게 웃으면서 다가와 곁눈질로 내 약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심해서 속내라도 들키면 조리돌림 당하는 건 기본이고, 험담 한 번으로 평판이 끝장날 때도 있습니다.

도박판에 앉은 것처럼 내 패는 숨기면서 상대의 패를 까야 하는 순간도 오죠.


그런 순간에 '정직하고 선량하게 살겠다'는 20대의 다짐을 기억하면서도 나를 지키고 일이 성사되게 하려면 유연하고 요령 있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책 밖의 지식, 선배들의 노하우나 스스로의 직감과 판단력에 기댈 수밖에 없죠.


책 속에 길이 있던 시절은 30살을 기점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책을 덮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언어와 문자로 전달할 수 없는 지식을 배울 때입니다.


그저 책읽는 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의 유년기가 영원히 끝나버렸다는 것을 이렇게 받아들여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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